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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표정한 한국인이 정겹다>
 책 <무표정한 한국인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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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떠나서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던가. 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우리의 문화가 얼마나 괜찮은지 잘 모르고 지낸다. 떠나고 나서야 우리나라가 좋은 곳이었다는 걸 깨닫는 이가 참 많다.

몇 년 전 외국에서 일 년 넘게 생활했던 나는 언제나 한국의 밤 문화가 그리웠다. 해질 무렵이면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고,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하나 없는 영국의 밤. 한국이었으면 쉽게 나가 맛있는 것도 사먹고 친구도 만날 수 있었던 저녁은 심심한 플랫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감자칩을 먹는 지루한 일상으로 대체되었다.

<무표정한 한국인이 정겹다>는 나와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글로 옮긴 책이다. 다른 유학 생활 체험기와는 달리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한 여성이 미국에서 주부로 살면서 쓴 책이라 독특하다.

많은 사람이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미국이라는 나라로 떠나지만 실제 그곳의 생활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오징어, 김치, 된장 냄새에 혐오감을 느끼는 미국인들과 토종 한국인이 함께 생활하는 게 쉬울 리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우리 아이들은 아침에 밥을 먹지 않는다. 입에 밥 냄새가 배기 때문이다. 미국 아이들 입에선 치즈 냄새가 나지만 그것을 느끼는 건 밥을 먹는 우리 아이들뿐이다. 치즈 냄새랑 마늘 냄새가 싸우면 여기선 당연히 치즈 냄새가 마늘 냄새를 누른다. 결국 아이들은 마늘 냄새가 안 나는 빵이나 시리얼을 먹고 학교에 간다."

어찌 보면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온몸에 밴 자신의 문화를 모두 던져 버리고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딸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가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놀리는 바람에 아이가 풀이 죽어 지내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서로 다른 문화의 사람이 얼마나 어울려 지내기에 힘든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지은이 또한 나처럼 한국의 밤 문화를 그리워 한다. 6년 만에 한국에 들어오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노래방을 가고 밤에 거리를 쏘다니며 노는 일이었다고 하니, 그동안 얼마나 지루한 미국의 밤을 보냈을까 싶다.

우편물을 체크하러 갈 때나 쓰레기를 버릴 때에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미국 사회. 지은이는 심지어 팁이나 봉사료가 붙지 않는 한국의 음식값마저도 정이 간다. 우리나라 많은 사람이 교육 때문에 외국으로 나간다고 하는데, 저자는 그런 사람들을 말리고 싶다고 전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 방과 후 스포츠 센터에 들리도록 하는 일 등 한국에서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 미국에서는 모두 부모가 해야 할 몫이다. 한국처럼 학원 차량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도 없다. 우리처럼 걸어서 5Km 내에 슈퍼며, 학원이며 음식점 등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가 없는 미국 생활은 집안에 갇혀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문화가 그리웠던 저자는 6년 만에 인천 공항에 발을 딛자마자 묘한 편안함을 느낀다. 눈에 익은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는 고백도 있다. 미국 사람들은 매너 좋고 친절하다. 그러나 단지 '나이스'할 뿐이다. 그들에게는 우리처럼 살가운 정이 없다.

"그들의 문화 속에는 '나도 네게 폐를 주지 않을 테니 너도 내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친절한 사람에겐 호의를 보이며 관심까지 보이게 되는 우리 문화에 익숙한 나에겐 그곳 사람들의 친절은 어쩐지 진짜 같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에게 실없이 웃음을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진솔해 보인다."

책을 읽다 보면 정작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 채 무심코 지나치는 문화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안전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밤 문화도 그렇고 표정은 무표정하지만 타인에게 정이 많은 마음씨도 그렇다. 이 땅을 떠나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일 것이다.

요즘은 조기 유학이다, 기러기 아빠다 하여 어린 자녀를 일찌감치 외국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아이에게 외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도록 한다. 이런 풍조에 대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과연 이런 교육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더 큰물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도록 하는 취지는 좋지만 자칫 우리 것을 체험하고 간직할 기회가 자녀에게 영영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쓴 글처럼, 미국에서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참 불편하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 있을 때는 '절대 고마워하지 않는' 한국 문화는 타국에서 볼 수 없는 좋은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외국에서 살다 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또 가고 싶지 않냐? 차라리 외국에 눌러앉는 게 낫지 않냐?' 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 곤란하다. 영어권 국가가 갖고 있는 최대 장점인 '유창한 영어 습득'과 그 문화의 체험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다시 가고 싶다.

그러나 내가 속한 이 사회의 수많은 좋은 점을 모두 포기하고 외국에 나가 오랜 기간 사는 것은 결심이 서지 않는다. 내 고향의 맛있는 음식과 정겨운 친구와 가족들, 편안히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등 내가 버리지 못할 많은 것들이 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국 7년 반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 책에 쓴 내용이 이미 추억이 되겠지만, 그녀가 경험한 미국 문화와 한국 사회에 대한 비교는 글로 남아 기억될 것이다. 이 책이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무표정한 한국인이 정겹다

양문실 지음, 다할미디어(2007)


태그:#미국,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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