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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과 덕소(지금은 국수역까지 개통되었다)를 잇는 중앙선 전철. 사람의 진을 쏙 빼놓는 배차 시간으로 악명 높지만 통학을 위해 나는 중앙선을 퍽이나 많이 탔다. 그게 무슨 특별한 것이라도 되겠냐만, 지금부터 나는 어떤 동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심층적인 르포 기사도, 학술적인 공간 탐구 보고서도 아니다. 그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너지고 읽어버린 후에 끝내 사라지는 것들에 보내는 나의 기록문 내지는 작은 위로일 것이다.

폭력, 그것이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올 때

그렇다. 문제는 너무 일상적이란 것에 있다. 중앙선을 타고 창밖을 바라보면 도농역에 도착할 즈음 마주하는 풍경이 있다. 놀이공원의 모노레일처럼 번화한 도시를 관통하여 달리는 전철은 처참하게 철거된 도농 3개통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스쳐 지나간다.

어이, 저기 한 동네가 깡그리 무너졌어, 하고 손가락을 가리키며 지적해주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 모습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승객들이 핸드폰 문자에 여념이 없거나 시험 대비 프린트에 파묻혀 있거나 삶의 고단함에 지쳐 창밖의 풍경을 바라볼 여력이 없어서일 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철거된 동네의 모습이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신문에서, 텔레비전에서 철거민과 철거된 마을을 접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철저히 매체 속의 '타인'임과 동시에 '익명'의 누군가가 겪는 사례처럼 다가온다. 매스 미디어로부터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점점 폭력에 무감각해진다. 백린탄이 흩날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그렇고, 다섯 명의 철거민이 화마에 숨진 용산 참사도 그렇다.

이러한 매체의 폭력과 현대인의 부실한 윤리 의식은 이미 프랑스의 혁명적 영화감독 고다르와 오스트리아의 불편한 영화 찍기로 소문이 자자한 미카엘 하네케가 영화를 통해 고발한 바 있다.

중앙선 열차가 옆으로 지나가는 철거 현장
 중앙선 열차가 옆으로 지나가는 철거 현장
ⓒ 이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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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창 너머의 철거 현장을 마주하는 승객들의 감정은 거의 비정하기까지 하다. 되레 잘 조성된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공사 현장이나 공장 단지를 보듯 눈살을 찌푸린다. 그들의 불편함은 전철이 대형 마트와 호화 스포츠 센터가 공존하는 주상복합 단지와 근사한 그림이 그려진 아파트로 돌아와서야 해소된다.

한쪽에선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투쟁의 문구를 붕괴된 건물 벽에 절박하게 남기고 있고, 한쪽에선 쇼핑 카트와 수영장을 오가며 웰빙과 미용이라는 선진 문화를 즐기고 있다. 극단적이고도 이질적인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휴일을 맞아 카메라를 들고 철거 현장을 찾아갔을 때 내 기분은 호기심보다 착잡함이 앞섰다. 대통령의 사죄와 관계자들의 처벌이 선행되어야 할 용산 참사 현장은 아직도 용역 깡패들의 행패와 경찰들의 폭력 진압이 만연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농역과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여 도농 3개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권리를 짓밟는 권리는 없다. (이 선언에서 말한)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는 없다. 누구에게도, 어떤 나라에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권리는 없다." - 세계 인권 선언 제30조

동네의 초입에선 노인들이 평상 위에 앉아 장기를 두고 있었다. 평범한 풍경이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기야 용산 참사 역시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나지 않았나. 서울이란 도시에서 가장 상권이 발달되어 있다는 용산에서 누가 그런 참변이 일어날 줄 알았겠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햇볕은 은근히 따가워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언덕을 지나서야 나는 제대로 현장을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전철에서도 볼 수 있었던 투쟁의 문구가 공사장 방음벽 위에 쓰여 있었다.

"이곳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다"
"주거권을 쟁취하자! 투쟁!"


방음벽과 울타리로 가려놓긴 했으나 설핏 철거된 주택이니 건물의 모습이 보였다. 길을 따라 걸으니 주민들이 선전하듯 스프레이로 남긴 문구와 그래피티가 벽에 많았는데, 낙서 바로 위에 걸린 순복음교회의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여러분을 초대한다는 교회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주변의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철거 현장을 가리는 방음벽에 구호가 쓰여 있다
 철거 현장을 가리는 방음벽에 구호가 쓰여 있다
ⓒ 이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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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접어 올라가니 본격적인 철거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느 철거 현장이 그렇듯 폭격을 당한 것 마냥 마을은 풍비박산이 되어 있었다. 단독주택은 담벼락과 터를 제외하고 깡그리 무너졌으며 빌라나 저층 아파트의 창문은 대부분 공허하게 뚫려 있었다. 철근은 벌어진 상처 사이로 보이는 뼈마디처럼 참혹하게 벌어져 있었고 철거의 잔재인 시멘트와 벽돌 조각들을 대강 가리려는 심산에선지 그 위로는 검은 망이 덮여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나리 덩굴과 목련 나무를 제외하고 철거된 도농동에서 멀쩡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당연히 주민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유령 마을이 된 이곳을 혼령처럼 나만 홀로 떠돌고 있던 것이었다.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미는 내게 한 사내가 멀리서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고 있었다. 용역 직원인 줄 알고 내심 긴장했으나 다가와 해코지를 하진 않았다.

창문이 모두 깨져 휑한 빌라의 모습 뒤로 아파트 건설 현장이 보인다
 창문이 모두 깨져 휑한 빌라의 모습 뒤로 아파트 건설 현장이 보인다
ⓒ 이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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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현장 주변에서 만난 아이가 육교 계단에 앉아 놀고 있다. 나이를 물어보며 친한 시늉을 하니 옆에 있던 어른이 낯선 사람과 얘기하지 말라며 아이에게 경고를 했다
 철거 현장 주변에서 만난 아이가 육교 계단에 앉아 놀고 있다. 나이를 물어보며 친한 시늉을 하니 옆에 있던 어른이 낯선 사람과 얘기하지 말라며 아이에게 경고를 했다
ⓒ 이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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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거된 집 안으로도 살짝 들어가 보았다. 대체적으로 실내의 풍경은 비슷했다. 주거가 불가능할 정도로 엉망이 된 상태에서 급히 떠나느라 집기 따위를 모두 챙기지 못한 듯했다. 식기는 물론이고 가구나 장난감도 지저분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화장실 거울에 부착된 스티커나 개인적인 낙서와 같이 철거 현장 속에 남아 있는 일상적인 흔적들은 보는 사람도 안타까운데 당사자들은 마음이 어떠했을까. 방에 뒹구는 큰 용량의 담금 소주병들이 그러한 심리를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도농 3개통을 둘러보는 데에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실 철거된 지역이 광범위하게 넓진 않다. 빌라로 올라가 주변을 훑어보니 철거 현장의 앞에는 중앙선 열차가 지나가고 뒤로는 롯데 아파트가, 양옆으로는 새로 축조 중인 아파트 공사 현장과 주상복합 단지가 버티고 있었다. 뉴타운 속의 섬이랄까, 도농 3개통은 고층 건물이라는 대한민국 건설 미학의 새로운 제물이었다.

터만 남은 철거 현장에 가구와 장난감들이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다
 터만 남은 철거 현장에 가구와 장난감들이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다
ⓒ 이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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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외곽을 따라 걸으니 오래 전부터 있던 공장과 그 주변의 허름하기 짝이 없는 상가로 나왔다. 그 인근에선 기계 같은 간격으로 땡,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유치원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인형이 미끄럼틀에 장식되어 있고 원어민 강사가 영어를 가르치는 요즘의 유치원과는 너무도 다른 영세 유치원이었다.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에 유치원 대문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어쩐지 이상한 위화감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흔히들 데자뷰라고 하는 기시감. 꿈에설까,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과 실제로 마주했을 때 느끼는 초조하고도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설마,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유치원 앞마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건물의 낡은 간판을 보고야 말았다. 서일대학부설 흥학 유치원. 1994년에 내가 1년간 다녔던 유치원 바로 그곳이었다.

그 시절 유치원 버스를 타고 공장 주변의 골목으로 들어가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있었으나 정확히 이곳이었던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토록 깨끗하고 세련되었던(사실 그때만 해도 ㄴ시의 유일한 유치원이었다) 유치원의 앞마당엔 잡초와 들풀이 정돈되지 않은 채 너저분히 자라고 있었고 여자 아이들과 자주 올라가 노래를 부르곤 했던 정글짐에는 붉게 녹이 슬어 있었다. 같은 곳이라곤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유치원의 모습은 변해 있었다.

유치원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지하에서 남루한 차림의 한 사내가 올라와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철거 현장을 보러 왔습니다, 하고 설명하기도 뭐해서 우물쭈물 있다가 여기 유치원 다니던 사람인데요, 하고 솔직하고도 황당한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그러자 그는 정말 이상한 사람 다 본다,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치원 이제 안 해요."
"다른 곳으로 옮겼나요?"
"아뇨. 제가 알기론 완전히 정리했다던데."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슬쩍 유치원 교실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사내의 말대로 교실의 책상과 의자, 각종 시설들은 대강 정리된 채로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예전의 기억을 되찾은 환자처럼 나는 그곳이 진정 내가 다니던 유치원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 교실 구석에서 친구들과 나무 블록을 쌓으며 놀았는데, 성탄절이면 산타클로스(원장 선생님이 분장한)로부터 선물을 받기 위해 아이들과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는데, 하는 기억들이 공간을 보자 새록새록 피어났다. 그런데 예전의 기억과는 달리 지금의 유치원은 너무도 협소했으며 따뜻한 불빛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유치원에 책상과 시설물들만 대강 쌓여 있다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유치원에 책상과 시설물들만 대강 쌓여 있다
ⓒ 이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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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듯 아무 말도 없자 사내는 툴툴거리며 지하로 다시 내려갔다. 지하실에는 간헐적으로 땡, 하는 공 소리와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흥학 권투 체육관'이란 간판을 보니 유치원의 강당이었던 지하 공간을 체육관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내가 떠나자 나는 천천히 유치원을 둘러보고 시작했다. 벽에는 원장으로 보이는 남자와 어린 아이들이 어울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액자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주변에는 교육 자료로 쓰였던 동화라든가 참고 서적이 잔뜩 쌓여 있었는데, 원생 기록부에서 내 이름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15년 전의 기록이 여태 남아있을 턱이 없었다.

유치원 교실에 걸려 있던 사진. 원장 선생님의 얼굴까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유치원 교실에 걸려 있던 사진. 원장 선생님의 얼굴까진 기억이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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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학 유치원이 언제 문을 닫았는지는 몰라도 대체적으로 유치원 내부의 시설은 94년 그대로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좋게 말하면) 고전적이었고, (곧이 말하면) 낙후했다. 페인트칠은 대부분 벗겨졌으며 벽은 곰팡이로 가득했고 화장실에는 병원에서나 날 법한 소독약 냄새로 지독했다. 계단을 올라 옥상에 다다를 즈음에는 아련한 추억들이 뻥 뚫린 마음을 관통하여 멀리 날아간 기분이 들었다. 유치원 바로 옆에는 롯데캐슬 아파트가 있었고 깔끔하게 마련된 공원에선 젊은 남녀가 배드민턴을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니 새집을 줄테니 헌집을 달라던 옛날 노래가 생각난다. 재테크와 뉴타운이라는 명목으로 이웃의 집을 빼앗는 행태를 '창조적 파괴'라고 생각하는 현 정권이 어처구니가 없고도 무서울 뿐이다
 이 모습을 보니 새집을 줄테니 헌집을 달라던 옛날 노래가 생각난다. 재테크와 뉴타운이라는 명목으로 이웃의 집을 빼앗는 행태를 '창조적 파괴'라고 생각하는 현 정권이 어처구니가 없고도 무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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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철거민이 될 수 있습니다

철거 현장을 돌아다니다 고풍스런 단독 주택 한 채가 눈에 들어와 들어가 보았다. 현관에 정면으로 폭탄이 떨어진 듯 건물의 앞면이 붕괴된 그 집 계단에는 오래 전 조선일보 신문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신문에는 의미심장하게도 '이명박 대통령, 저탄소 녹색성장 사업 박차 가하다'라는 맥락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집 주인은 과연 그 글을 읽으면서 자신이 철거민이 될 것이란 상상을 했을까. 그는 어쩌면 조선일보 구독자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스 기사가 급격히 우회전을 하면 승객들은 왼쪽으로 몸이 쏠린다는 말처럼 그는 지금 주거권, 생존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가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국가인권위가 발행하는 간행물 <인권>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불길한 악담이 아니라 삶 속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조금만 더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우리는 누구나 철거민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국토를 전부 공사 현장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 자가 대통령으로 있는 지금 이 사회 속에서 그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태그:#도농,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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