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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하고 왔는데, 사람들이 있네요. 그것도 이렇게 많이. 기분이 짠합니다."

"밤새 조문객들이 오죠. 자원봉사자들도 밤을 샙니다. 늦은 밤이거나 새벽에도 오고요."

 

27일 밤 10시경 김해 봉하마을에서 만난 조문객과 자원봉사자들이 한 말이다. 이날 오후 경남 함안에 머물렀던 기자는 저녁에 김해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늦은 시간에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기간이 끝난 뒤 봉하마을의 밤 분위기가 궁금했다. 국민장 기간에는 밤을 새워 줄을 서서 조문했고, 국민장 기간 뒤에는 낮에도 조문객이 많이 찾아오고 있었다. 밤에 조문하러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이날 밤 9시30분경 마을에서 1km 가량 떨어져 있는 공단 앞을 지나니 멀리 마을의 가로등 불빛이 보였다. 도로에는 걸어오는 사람들이 몇 명이 보이기도 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주차장 주변에는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멀리 봉화산에는 등산로를 따라 설치해 놓은 가로등이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이 임시 안치되어 있는 정토원을 밤에도 찾는 사람들이 있어 등산로에 임시로 불을 켜 놓은 것이다.

 

분향소 주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방명록에 기록을 남기는 사람, 분향소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사람, 마을회관 외벽에 붙어 있는 대형 초상화 앞에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다. 목에 '자원봉사'라고 적힌 목걸이를 찬 사람들도 보였다.

 

 

이날 저녁에 받은 방명록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역을 살펴보니 김해와 부산은 물론, 광주, 안산, 여수, 울산에서 사람들이 찾았다. 자원봉사자한테 물어보니 여러 장의 방명록을 들추더니 "이 부분은 밤에 온 분들이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밤에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가족이거나 연인 사이가 많았다. 여자 친구와 함께 온 배일용(28․김해)씨는 "오늘 처음 왔다, 그동안 와서 조문하고 싶었지만 바쁘기도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사 왔다"면서 "미쳐 꽃을 준비해 오지 못해 분향하지 못하다가 향을 피워 놓으면 된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한 뒤 절을 두 번 했다"고 말했다. 기분을 묻자 그는 "짠하다"고 말했다.

 

마을 주차장 맞은편에 있는 노사모 사무실에도 밤새 불을 밝혀 놓았다. 이 곳은 이전에 주민들이 농기구를 보관하기 위해 사용하던 공간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진 등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문객들이 쓴 '추모의 글'은 이제 더 이상 붙일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이곳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수사에 대한 국정조사 및 공개청문회 청원 천만인 서명운동'을 받고 있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서명을 한 상태다. 자원봉사자 이세호(46)씨는 "서명해 달라고 하면 거의 다 응한다"면서 "꼭 국정조사를 하도록 해 달라고 특별히 당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노사모 사무실은 24시간 운영되며, 밤새 조문객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문을 열어 놓지 않을 수가 없다"면서 "평일에도 밤새도록 문을 열어 놓고, 항상 자원봉사자들이 조문객을 맞고 있다"고 밝혔다.

 

밤에 온 조문객들은 마을 공사장 가림막에 써 놓은 각종 '추모의 글'을 읽어보기도 했다.

 

한 조문객은 "낮에 오려고 하다가 너무 덥고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해서 일부러 밤에 왔다"면서 "밤이라서 그런지 기분이 묘하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적어 놓은 글을 읽어보니 찡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혼자 왔다고 한 김문성(37․성남)씨에게 "어떤 인연이 있어 이 밤에, 그것도 멀리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이 나라의 국민인 것이 인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명록에 주소는 성남이라고 적었지만 실제는 유럽에서 왔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유가 봉하마을에 오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밤이라 그런지 여기에는 모기가 많네요"라며 "분향소에 조문하고, 조문객들이 적어 놓은 글도 읽어 보았으며, 정토원에 가서 조문도 했다"고 말했다.

 

박경주씨를 비롯한 7명은 이날 오후 6시부터 1박2일로 이곳에 자원봉사하러 와 있었다. 박씨는 "밤에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보니 더 고맙기도 하고, 분위기가 더 애틋한 것 같다"면서 "누가 오라고 해서, 가자고 해서 여기에 온 게 아니라 그야말로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서 자발적으로 오시는 분들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봉하마을에서 만난 신미희(전 청와대 행정관)씨는 "밤에도 조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이 더 대단한 것 같다"면서 "몇명의 자원봉사자는 거의 매일 밤에 와서 자원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한 달이 지난 봉하마을. 낮이나 밤이나 고인을 찾는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다.

 


태그:#노무현, #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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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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