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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이 성묘를 떠났을 때 이야기다. 우리 가족은 예년처럼 성묘를 무사히 마치고 내려왔지만, 그 해는 유난히도 크게 벌어진 주변의 공사 때문에 돌아오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고, 우리들은 저 멀리 걷고 있는 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걷는 것에 지쳐 서로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 놓았고, 이야기 하는데 정신이 팔린 우리들은 그만 아버지의 뒤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길이 엇갈린 우리 형제와 아버지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서로 전화로 만나기로 했지만, 이미 엇갈려 버린 길에서 다시 만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우리는 공사장의 소음 때문에 대화가 쉽지 않던 그 상황에서 각자 산을 벗어나서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그때부터 걷고 또 걷고, 그리고 강 건너 멀리 보이는 도로에 도달하기 위해서 바지를 걷어붙이고 그곳을 건너가는 '생쑈'를 벌인 결과 무사히 터미널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리가 도착하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타나셨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찾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가 결국 포기하고 나왔던 것이었다. 나는 이 사건을 되새기면서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성격과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게 물과 기름처럼 융화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씁쓸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되돌아보면서 웃음이 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처럼 나의 아버지와 같은 가부장적 성향을 가진 남성들에 대하여 <남자, 그들의 이야기>의 저자인 스티브 비덜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자들은 보통 침묵이라는 전통적으로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요구에 순응해서 서로서로 고립된 채 개인적인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우리에 갇혀서 죽자 사자 일만 하는 노예가 되어 경제적, 문화적 요구에 발목이 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설령 남자들이 자기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자기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나누지 않는다. 남자들은 고통을 혼자서 감내한다."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이 그의 말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아버지와 우리들의 대화는 잘 통하지 않았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지만, 끝내 우리들을 걱정해서 끝까지 우리들을 찾아 되돌아갔던 그의 모습에서 가족을 사랑하지만 표현하는데 인색한 과거의 남성상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남자들의 문제를 안타깝게 여긴 저자는 우리에게 새로운 남성상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오랜 가정상담을 통해서 가족 간의 문제점을 찾아나갔던 저자 스티브 비덜프는 21세기에 들어와서의 올바른 남성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 내렸다.

 

"훌륭한 남자가 되는 자질들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남자들에게 믿음직함, 사랑을 추구하는 불굴의 능력, 공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인 행동, 고난의 때를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관대한 마음을 요구하는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질들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이며, 과거에도 그랬지만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한 남자가 평생 동안의 기나긴 여정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이다. "

 

저자는 위의 정의를 통해서 바람직한 남성상의 자질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의 남성들은 가부장적이고 고립된 남성상을 벗어나서 가족들에게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남성이 되는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책의 여러 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바람직한 남성상이란 무엇인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책 속에는 다양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지각에 대한 두려움보다 딸의 미소를 더 보고 싶어서 과감히 지각하기로 결정한 남성도 있으며, 남학교의 더럽고, 폭력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연 교사도 있었으며, 진정한 스포츠는 승리의 집착이 아닌 구성원들의 모든 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을 깨달은 남성도 있었다.

 

그리고 비록 젊은 날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고 그런 아버지에게서 정을 느끼지 못했던 아들이지만, 치매에 걸려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함께 생활해나가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한 남성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은 변하고 있는 남성다움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남성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 책을 보고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비록 그가 우리 형제들에게 표현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의 사건을 기억케 하여 그가 우리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나중의 나의 아이들에게는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 속에 아로새겨 실천할 것임을 약속한다.

 

나는 오늘부터 아버지가 좋아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해야겠다. 예전부터 장종훈 선수를 보면서 한화를 응원해 왔지만 아버지와의 대화를 조금 더 해나가기 위해서 롯데를 응원해야겠다. 이제껏 항상 한화와 롯데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 찾아오면 우리는 서로의 응원팀을 위해서 대립의 칼날을 세웠지만 이제부터 나는 롯데를 응원할 것이다.

 

오늘 한화 Vs. 롯데의 경기가 벌어진다. 한화의 8연패가 걸려있는 중요한 경기이고, 한화의 에이스 류현진이 등판하는 경기이지만, 오늘은 아버지와 같이 롯데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버지와 내가 서로 가까워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남자, 그들의 이야기

스티브 비덜프 엮음, 박미낭 옮김, GenBook(젠북)(2009)


#남자, 그들의 이야기#스티브 비덜프#젠북#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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