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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병풍산 숲길에 핀 여름꽃. 해바라기 같기도 하지만...
 담양 병풍산 숲길에 핀 여름꽃. 해바라기 같기도 하지만...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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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없다. 아침이면 잠이 덜 깬 채 집에서 나와 통근열차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하루 종일 뭘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바쁘게 지내다 기진맥진할 때쯤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그런 일상에 몸과 마음이 지쳐만 간다. 쳇바퀴 도는 일상에 회의감도 든다.

그렇게 월요일을 시작했는데 벌써 일요일. 시간 참 빠르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6월을 시작한 게 불과 며칠 전 같은데 이제 6월도 막바지에 왔다. 올 한 해도 벌써 반환점을 돌고 있다. 정말 빠르게만 돌아가는 세상이다.

휴일만 되면 몸과 마음이 느슨해진다. 때로는 모든 걸 잊고 늦잠도 자면서 뒹굴고 싶을 때가 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훌쩍 떠나 혼자만의 여유를 갖고 싶을 때도 있다. 모처럼 아이들과 떨어져 단 둘이만 밖으로 나갈 기회가 생겼다. 얼마만의 나들이인지 기억조차 없을 정도다.

어디로 갈까? 아이들을 놔두고 멀리 가기는 왠지 부담스럽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재골로 간다. 한재골은 어릴 적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선산이 있는 곳이다. 부모님을 따라 땔감을 장만했던 곳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소풍의 추억이 어린 곳이기도 하다.

광주 근교에서 물 맑고 풍광 좋기로 소문 난 한재골에는 벌써부터 피서객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몸에 튜브를 끼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오후 늦게부터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을 겨냥해 펼쳐놓은 과수원 앞 좌판의 햇복숭아도 탐스럽게 생겼다.

숲길과 여름꽃 그리고...
 숲길과 여름꽃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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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럽게 구부러진 병풍산 숲길.
 예스럽게 구부러진 병풍산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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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계곡가 식당에서 여유 있는 점심을 즐겼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적함인데 포기하긴 왠지 서운하다. 식당에서 가까운 임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본다. 잡풀을 중앙선 삼아 두 갈래로 나뉜 길이 아름답다. 길은 반듯하기도 하고 S자로 구부러지기도 했다. 호젓한 숲길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왼편으로는 병풍산이 우뚝 솟아있다. 펼쳐놓은 병풍처럼 생긴 바위가 정상에 늘어서 있다. 오른 쪽으로는 담양 한재벌이 한눈에 펼쳐진다. 맑은 날씨가 아닌 탓에 평소 볼 수 있는 광주시내와 영산강 물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운치는 더 있다. 길섶에 핀 노랑꽃 무리가 시선을 빼앗아간다.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예쁘게 생겼다.

해바라기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국화 비슷하게 생긴 것도 같다. 국화과의 벌개미취인가? 정확히 모르겠다. 짙은 밤색 꽃망울에 노랑 꽃잎이 아름답다. 꽃망울에 내려앉은 벌이 동그란 원을 그리며 꽃가루를 열심히 물어 나르고 있다.

병풍산 숲길에서 만난 꽃들.
 병풍산 숲길에서 만난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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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걸음 더 옮기니 개망초가 군데군데 피었다. 길가에 무리지어 자라는 개망초는 꽃이라기 보다 잡초에 가깝다. 생명력이 무지 강하다. 옛날 들판에서 뽑아도 뽑아도 또 자라난다고 해서 '개 망나니 같은 풀'이라 이름 붙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산기슭에는 칡넝쿨이 이리저리 엉켜 있다. 그 위로는 자귀나무가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밤이면 잎이 하나로 오므라들어 '합환목'이라 이름 붙은 콩과식물이다. 길섶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름 모를 풀들도 정겹다. 여름에도 이렇게 많은 꽃들이 피고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숲길은 여전히 한적하다.
 숲길은 여전히 한적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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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여전히 한가롭다. 더 넓어지지도, 좁아지지도 않고 그 폭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과 중간 부분에 시멘트 포장길이 조금 있을 뿐, 인공의 냄새도 거의 없다. 비포장 길이 대부분이다. 그 길이 예스럽다. 오랜만에 접하는 비포장 길을 발바닥이 제일 반긴다.

산바람도 상쾌하다. 날씨는 후텁지근해도 간혹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트이게 해준다.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오랜만에 같이 걸어 보는 데이트도 정겹다. 그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오지다.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할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오붓함이다.

그 사이 작은아이로부터 몇 차례 전화가 왔다. 언제쯤 되돌아오는지 묻는다. 숲길을 따라 끝까지 가고 싶은 마음을 접고 만남재에서 발길을 돌린다. 가까운 시일 안에 아이들이랑 같이 오기로 하고서.

걸음의 방향을 바꿔 돌아오는 길. 로또에 당첨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별히 계획하지 않았던 숲길 산책이 그런 느낌을 선사한다. 횡재라도 한 것처럼…. 역시 여행은 멀리 있지 않는 모양이다. 목적지도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길 위에 선 것만으로도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니….

일요일 오후 담양 병풍산 숲길.
 일요일 오후 담양 병풍산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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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병풍산 숲길. 건너편에 삼각형으로 솟은 산은 불태산이다.
 담양 병풍산 숲길. 건너편에 삼각형으로 솟은 산은 불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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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숲길, #병풍산,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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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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