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산책을 나서는 뒷동산인데 오늘은 며칠 만에 나섰습니다. 오락가락하는 장마와 후덥지근한 무더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잠깐 돌아오는 산책길에서도 삐질삐질 흐르는 땀 때문에 자꾸만 게을러지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 나선 산책길엔 어느새 피어났는지 곱고 예쁜 꽃들이 방실방실 피어나 반겨주었습니다. 원추리 꽃도 흐드러진 다른 꽃들도 고운 얼굴로 벙긋 웃으며 무더위에 짜증내지 말고 잘 이기라고 격려라도 해주는 것 같은 표정입니다.
아직 6월의 마지막 날인데 벌써 코스모스가 피어났는가 하면 때늦은 장미꽃들도 무더기로 피어나 아직도 내 계절이라고 억지라도 부리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런가 하면 비좁은 열무 텃밭에 피어난 자줏빛 도라지꽃이 여간 정갈한 모습이 아닙니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심심 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로 반실만 되누나
에헤요 데헤요 에헤야
어여라 난다 디여라
저기 저산 밑에 도라지가 한들한들
도라지꽃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경기민요 도라지 타령 한 구절이 소록소록 생각납니다. 저렇게 청초해 보이는 꽃을 두고 참 구성진 곡을 붙였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민요지요.
도라지 밭 근처에는 할머니 한 분이 쌍둥이 손녀를 안고 나왔습니다. 첫 손자를 보고 두 번째로 낳은 아기들인데 쌍둥이여서 구청으로부터 양육보조금이 나온다 합니다. 그런데 소문에 들으니 부자구인 강남에선 많은 보조금이 나온다는데 가난한 동네라 보조금도 적은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열무가 많이 자랐으니 조금 뽑아 줄 테니 열무김치 담가먹으라고 아기를 아내에게 맡기려 합니다. 당장 열무를 뽑아 주겠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웃 할머니는 그렇게 하라고 맞장구를 치고요. 아내와 내가 이제 산책 나가는 길이라며 극구 사양하고 돌아서니 산책 마치고 돌아올 때 꼭 이쪽으로 오라고 당부를 합니다.
어느 연립주택 2층 방범창틀에는 홀로 피어난 이름 모를 꽃 한송이가 쇠창살 사이로 빼꼼하게 얼굴을 내민 모습이 참으로 애잔합니다. 그 아래 풀밭을 뒤덮은 호박덩굴과 이파리는 그동안 내린 비에 무성하기 짝이 없고요. 그런데 두 송이 호박꽃은 아직 수줍음을 많이 타는 모습이네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무궁화도 꽃을 피웠네요, 빨간 겹접시꽃 사이에서 피어나 눈길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접시꽃은 본래 홑꽃만 있는 줄 알았는데 겹꽃도 많이 피어난 모습이 훨씬 화사한 모습입니다.
며칠 만에 돌아본 정다운 우리 동네 강북구 미아동 산동네와 공원길 산책에서는 곱고 예쁜 꽃들과 함께 정이 넘치는 할머니를 만나 흐뭇한 마음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할머니가 뽑아 주시려고 했던 열무는 마음만 받아 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