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의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놀랜 강' 모두
시집 <대학일기>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등을 펴낸 공광규 시인이 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수상자로 뽑혔다. 수상작은 '놀랜 강' 외 9편이며, 심사위원은 신경림(위원장, 시인), 유안진(시인), 임헌영(문학평론가), 유성호(문학평론가).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대표 박영우)는 지난 달 끝자락 글쓴이와 만난 자리에서 "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 부문 대상 수상자로 시인 공광규(49)씨를 선정했다"며 "지난 2006년 처음 문학상을 제정하여 그동안 제1회 이재무, 제2회 안도현, 제3회 박라연 시인에게 시상했다"고 밝혔다. 부상은 1천만 원.
수상 소식을 들은 그날 안국역 근처에서 글쓴이와 만난 공광규 시인은 "우선 기쁘다. 특히 어릴 때부터 윤동주 시인의 시를 죄다 찾아 읽으며, 마음속으로 크게 존경하고 있었던 선생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이어서 더욱 기쁘다"며 "윤동주 선생의 시정신과 항일운동을 주춧돌로 삼아 더욱 열심히 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시인은 정치와 시, 시와 사회의 벽을 상상력으로 깨부수어야
"'놀랜 강'은 2MB의 4대강 살리기를 빙자한 대운하 정책에 한반도에 있는 모든 강들이 놀라 파랗게 질려 있다는 뜻입니다. 제 졸시에서도 나와 있듯이 '강은 수천 리 화선지'로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4대강 살리기는 4대강 죽이기라는 것을 똑똑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1986년 <동서문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그동안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등 5권의 시집을 펴낸 공광규 시인. "양생의 삶을 산다는 것은 재미있게 산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공 시인은 "구체적 생활이나 전망이 없는 관념과 말놀이만 무성한 시는 감동을 유발하지 못한다"고 못 박는다.
"불화와 불륜의 시대에 시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글쓴이가 묻자 공 시인은 "시는 개인과 사회에 적절한 꿈과 희망의 언어를 불어넣고 실현하도록 충동질해야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시인은 정치와 시, 시와 사회 사이의 벽을 상상력으로 깨부수어 사회정치적 상상력과 문학성, 시성이 조화되는 형상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쓴이가 "그렇다면 시인 모두가 정치시, 사회시 만을 써야 하는가"라고 묻자 "그런 말은 아니다. 사회현실과의 호흡을 통해 현재 인간 삶의 조건을 건실하게 할 수 있는 균형 있는 상상력을 시에 발휘하자는 것"이라며 "이는 시를 쓰거나 시 공부를 하면서 역사의식, 사회의식, 정치의식의 지진아라는 조롱을 받지 말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족, 민중, 쉬운 시 버리지 않을 것'
"윤동주는 민족 현실의 슬픔을 맑고 아름다운 감성으로 읊다가 너무 이른 나이인 스물아홉에 죽은 시인입니다. 얇은 어린이 전집용 <윤동주>(2005) 평전을 쓰느라 그의 일생을 세심하게 훑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습작기에 정지용 시인에게 빠졌으며, 말수가 적고,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상 소감 '몇 토막'
시인 공광규는 '민족, 민중, 쉬운 시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수상 소감에서 "저는 종교와 술 마시는 것을 빼고는 많은 부분이 윤동주와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동질감과 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며 "윤동주 '서시'의 내용처럼 저에게 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주어진 길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문학의 길에 대해 "우선 민족문학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문학의 편협성을 지적하지만, 분단이 정치에 악용되고, 국민이 남북 경색에 불안해하고, 국론 분열의 시작이 분단이라는 점에서 통일은 여전히 중요한 우리의 과제"라며 "윤동주 시인 당시에는 민족해방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민족통일이고, 세계 정치와 자본, 문화로부터 주체성 확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어 "분단은 분명히 우리의 양생을 방해한다. 이것이 세계문학이고 문학이 여기에 기여를 해야 한다"라며 "민중문학도 마찬가지이다. 민중문학은 한물 간 미학이 아니다. 이 개념은 비교적 민주적 정권 아래서 느슨하게 생각해도 되겠다는 느낌을 갖기도 했지만,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에 편입되고 민중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고 곱씹는다.
그는 또 "민중문학은 정치경제적 횡포로 인권이 훼손되고, 실업자와 빈곤층이 늘고, 중산층이 얇아지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문학적 실천 방법"이라며 "사회가 혼탁할 때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책상이나 카페가 아니라 현장과 거리와 광장에서, 중심이 아니라 소외의 구역에서 우리의 일상과 정신이 담긴 시를 갈고 닦을 것"이라며 "민족의 수난기에 청년의 삶을 살다가 비운에 갔던 윤동주의 맑고 깨끗한 영혼에 항상 저를 비추어보면서, 민족민중 현실과 여기에 처한 인간 존재에 충실한 시를 쉽게 써보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덧붙였다.
윤동주 시비 제막식, 성악의 밤 등 다채
"민족 사랑과 인류평화를 실천한 윤동주시인의 숭고한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인왕산 기슭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고 시비 제막식을 갖고자 합니다. 이와 더불어 제13회 윤동주국제페스티벌을 아래와 같이 개최하오니 부디 왕림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 '인사말' 몇 토막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는 오는 11일 오후 5시 서울 인사동 천도교 수운회관에 열리는 윤동주상 시상식과 함께 '제13회 윤동주 국제페스티벌' 행사를 펼친다. 윤동주 시비 제막식과 한·미·중·일 국제 심포지엄, 윤동주 영혼을 기리는 성악의 밤이 그것. 주관은 종로구문화관광협의회, 후원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보훈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날 오전 10시 인왕산 청운공원에서 열리는 '윤동주 시비 제막식'은 평화를 그리는 얼굴 전시회와 시극공연, 학생 백일장, 시낭송대회가 펼쳐진다. 같은 날 오후 3시에는 '한·미·중·일 국제 심포지엄'이 천도교 대교당에서 열리며, 오후 5시에는 시상식에 이어 '윤동주 영혼을 기리는 성악의 밤'이 이어진다.
윤동주기념사업회 박영우(계간 <서시> 대표) 대표는 "이번 행사에서는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화상'이란 시를 썼던 100년 된 윤동주 생가 우물목판을 최초로 공개한다"며 "이번 행사는 종로구와 윤동주 시의 만남으로 문화관광예술산업을 윤동주 시와 일체화시키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종로구 문화관광협의회 윤종복 사무국장은 이번 행사에 대해 "민족시인 윤동주가 이제서야 종로에 안착된 것 같다"라며 "문화관광은 특정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가 윤동주를 종로에 모신 것도 전통을 관광 상품화하자는 종로 인프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9 제4회 윤동주상 특별문학상 부문에는 최연홍(67. 전 위스콘신대 교수) 시인의 '금강산 온정리에서' 외 6편이 뽑혔고, 젊은작가상 부문에는 이근화(33) 시인의 '우아한 침의 세계' 외 4편이 뽑혔다.
시인 공광규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청양에서 성장했으며, 1986년 <동서문학>, 1987년 <실천문학>에 현장시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대학 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가 있으며, 시론집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시 창작 수업> 등이 있다. 지금 <불교문예> 주간이자, 한국작가회의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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