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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당지(서울 종로구 와룡동)는 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춘당대 앞에 있는 연못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 춘당지 춘당지(서울 종로구 와룡동)는 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춘당대 앞에 있는 연못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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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되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극우 보수단체와 구청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며칠 뒤. 마음이 너무나 쓰리고 아파 창덕궁 춘당지로 향했다. 나그네가 창덕궁 춘당지로 가는 까닭은 한때 그곳에 권농장이라는 논이 있었고, 그 논에서 어진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그해 풍흉을 살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한 뒤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가 오리농법으로 무공해 농사를 지으며 풍흉을 살피려 했다. 이는 고인이 퇴임한 뒤에도 우리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무공해 쌀을 먹이며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을 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근데, 어질지 못한 임금이 정권을 잡으면서 그 작은 희망조차 마구 짓밟아 버렸다.  

연초록빛 물결을 또르르 말고 있는 춘당지. 춘당지에 앉아 권농장을 떠올리며, 이 세상을 다시 한번 곰곰이 들여다본다. 한 나라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고 했던가. '고소영', '강부자'를 등에 엎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억지로 밀어붙인 2MB 정권이 들어서면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지난해에도 그랬고, 검찰 강압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올해도 그렇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시끄럽다. 핵 문제로 꽁꽁 얼어붙은 남북문제가 그렇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분향소 강제 철거가 그렇다. 4대강 살리기, 한나라당 단독 국회 개원, 비정규직법 기습 상정, 미디어법 등등... 시끄럽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   

이 자리는 옛날 '권농장'이라는 제법 넓은 논이 있어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한해 풍흉을 살펴보던 곳이었다
▲ 춘당지 이 자리는 옛날 '권농장'이라는 제법 넓은 논이 있어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한해 풍흉을 살펴보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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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당지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귀룽나무뿐만 아니라 눈에 확 띠는 나무들이 있다. 백송이다
▲ 춘당지 춘당지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귀룽나무뿐만 아니라 눈에 확 띠는 나무들이 있다. 백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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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춘당지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09년 일제가 권농장 내농포(內農圃, 임금과 왕비가 각각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 안에 둔 논과 뽕밭)에 속한 11개 논에 판 큰 연못이다
▲ 춘당지 대 춘당지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09년 일제가 권농장 내농포(內農圃, 임금과 왕비가 각각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 안에 둔 논과 뽕밭)에 속한 11개 논에 판 큰 연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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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당지 보금자리 삼아 살고 있는 오리, 원앙, 물고기가 부럽다

시끄럽지 않고 고요하기만 한 춘당지를 바라보고 있어도 하수구가 막힌 것처럼 마음이 콱 막힌다. 이런 세상에 살 바에야 차라리 모든 것 내 던지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잊고 싶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2MB 정권이 벌이는 정치놀음을 보면 당장 떠나고 싶지만 가족과 직장은 어떡할 것인가.

아니, 꼭 내 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현실도피는 정답이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겹고 어려워도 그 세상이 제멋대로 그냥 흘러가게 놔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촛불로도 안 되면 온몸으로라도 이 얄궂은 세상과 싸워 이겨야 하지 않겠는가. 열 번 지면 열 한번 일어서서 숨 깔딱거리는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하지 않겠는가. 

저만치 춘당지에 제 그림자를 포옥 담그고 있는 자그마한 섬. 그 주변에 오리인지 암 원앙인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주욱 나아가다가 가끔씩 날개를 푸다닥거리며 동그란 물방울을 따갑게 쏟아지는 햇살에 톡톡톡 굴린다. 그 아래 물속에서는 어른 팔뚝만한 금붕어와 잉어들이 은빛 비늘을 번득이며 줄지어 헤엄치고 있다.
  
춘당지를 보금자리로 삼아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오리, 원앙, 물고기. 차라리 오리, 원앙, 물고기로 태어났더라면 이 세상 험한 꼴을 모르고나 살 텐데... 나 원 참, 국민을 믿어야 할 대통령이 경찰을 믿고 있는 세상이라니. "대학진학률이 높아 취업률이 낮다"(3일 원주정보공업고 간담회)고 말하는 대통령을 국가 원수라고 모시고 있다니.

일제는 왕실 권위와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이 연못을 판 뒤 일본식 정원으로 바꾼 것은 물론 열대식물을 주로 심은 식물원과 동물원까지 만들었다
▲ 춘당지 일제는 왕실 권위와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이 연못을 판 뒤 일본식 정원으로 바꾼 것은 물론 열대식물을 주로 심은 식물원과 동물원까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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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이곳에 수많은 벚나무를 일본에서 들여와 심었으며, 궁궐을 아예 유원지로 만들어 버렸다
▲ 춘당지 일제는 이곳에 수많은 벚나무를 일본에서 들여와 심었으며, 궁궐을 아예 유원지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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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당지는 그 뒤 1986년 창경궁 복원공사 때 우리의 전통 조경법으로 다시 고쳐 옛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 춘당지 춘당지는 그 뒤 1986년 창경궁 복원공사 때 우리의 전통 조경법으로 다시 고쳐 옛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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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권위와 민족혼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판 연못

첫 사랑 그 여자 치렁치렁한 머리칼처럼 수양버들이 길게 드리워져 있는 춘당지. 춘당지(서울 종로구 와룡동)는 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춘당대 앞에 있는 연못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자리는 옛날 '권농장'이라는 제법 넓은 논이 있어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한해 풍흉을 살펴보던 곳이었다. 

춘당지 표지판에 따르면 예전에 만든 소 춘당지는 창덕궁 쪽 절벽인 춘당대와 짝을 이룬 연못이었으나 지금은 담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대 춘당지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09년 일제가 권농장 내농포(內農圃, 임금과 왕비가 각각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 안에 둔 논과 뽕밭)에 속한 11개 논에 판 큰 연못이다. 

그때 일제는 왕실 권위와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이 연못을 판 뒤 일본식 정원으로 바꾼 것은 물론 열대식물을 주로 심은 식물원과 동물원까지 만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일제는 이곳에 수많은 벚나무를 일본에서 들여와 심었으며, 궁궐을 아예 유원지로 만들어 버렸다. 한때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잘못 불리워지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춘당지는 그 뒤 1986년 창경궁 복원공사 때 우리의 전통 조경법으로 다시 고쳐 옛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춘당지는 예전에 만든 소 춘당지와 일제가 억지로 만든 대 춘당지를 이어놓은 것이다. 대춘당지에 있는 섬은 1984년에 만들었으며, 춘당지 주변에 있었던 벚나무는 모두 베어냈다.

지금 춘당지 주변에는 우리나라 자생 수종인 귀룽나무가 민족혼을 상징하듯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춘당지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귀룽나무뿐만 아니라 눈에 확 띠는 나무들이 있다. 백송이다. 백송은 처음부터 껍질이 하얀 것이 아니다. 어릴 때는 초록색이 들어간 푸른빛이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흰 얼룩무늬가 많아진다.

백송 표지판에 따르면 백송의 고향은 중국 베이징 부근이다. 백송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은 조선시대 때 중국에 사신으로 간 관리들이 귀국할 때 솔방울을 가져와 심은 것이 여기저기 퍼졌다. 이곳 춘당지 주변에 여러 그루 자라고 있는 백송도 아마 그때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백송은 생장이 매우 느리고 번식이 어렵다고 한다.

그 주변에 오리인지 암 원앙인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주욱 나아가다가 가끔씩 날개를 푸다닥거리며 동그란 물방울을 따갑게 쏟아지는 햇살에 톡톡톡 굴린다
▲ 춘당지 그 주변에 오리인지 암 원앙인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주욱 나아가다가 가끔씩 날개를 푸다닥거리며 동그란 물방울을 따갑게 쏟아지는 햇살에 톡톡톡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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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래 물속에서는 어른 팔뚝만한 금붕어와 잉어들이 은빛 비늘을 번득이며 줄지어 헤엄치고 있다
▲ 춘당지 그 아래 물속에서는 어른 팔뚝만한 금붕어와 잉어들이 은빛 비늘을 번득이며 줄지어 헤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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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당지는 예전에 만든 소 춘당지와 일제가 억지로 만든 대 춘당지를 이어놓은 것이다
▲ 춘당지 춘당지는 예전에 만든 소 춘당지와 일제가 억지로 만든 대 춘당지를 이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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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대통령 얼굴 춘당지에 물결치다

아픈 역사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 특히 일제가 우리 문화유산 곳곳에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살까지 덜덜 떨릴 정도다. 왜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그렇게 많이 당했겠는가. 입 바른 관리나 국민이 내는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고 제멋대로 국정을 휘두른 무능한 임금이 일제에게 빈틈을 많이 보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픈 역사가 서린 춘당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오늘따라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대통령이 그립다.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그런 대통령,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몸 기꺼이 바친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립다. 그래. 나그네가 알고 있는 스님 중 한 분은 '그리움이 너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것이 그 사람 얼굴로 보인다'고 하셨다.

그래서일까. 오도카니 세운 무릎 아래 저 홀로 노랗게 피어난 한 송이 민들레가 노 대통령 미소 짓는 얼굴로 다가온다. 그 곁에 하얀 솜사탕처럼 보푸라진 민들레 홀씨들이 동그란 얼굴을 내밀며 '날 좀 하늘로 날려 줘, 날 꺾어 입 바람으로 살짝 불어주기만 하면 돼' 하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동그란 민들레 홀씨 하나 꺾어 춘당지를 에워싸고 있는 숲 속 하늘로 훅 분다. 하얀 날개를 편 민들레 홀씨들이 푸르른 하늘로 솟아올라 너훌너훌 춤을 춘다. 나그네 머리 위에서 잠시 맴돌다 마침내 무한자유를 찾아 저만치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들. 그 홀씨들이 나그네에게 '아이 좋아 아이 좋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만 같다.

그때, 나그네 눈이 잠시 착시를 일으켰을까. 갑자기 춘당지 한가운데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 커다랗게 비친다. 이게 웬일일까. 눈을 한번 비비고 다시 한번 바라보자 어느새 고 노무현 대통령 얼굴은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작은 섬 그림자 하나 포옥 빠져 있다. 아뿔싸! 눈을 비비지나 말 것을.

나라 안팎이 너무 시끄럽다. 날이 갈수록 먹고 살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자 마음까지 어두워진다. 이런 때는 어진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짓다가 흉작이 되면 백성들 살림살이를 걱정했다는 창경궁 춘당지로 가자. 가서 어진 임금이 베푸는 너그러운 마음처럼 잔잔한 호수를 오래 바라보며, 내 마음에 민주주의 수호라는 촛불 하나 다시 켜자.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안국역 4번 출구-경희대 시내 한방병원 방향-창경궁-춘당지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춘당지, #권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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