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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전설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향수에 깊이 취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있어 전설이란 하나의 추억거리이자, 되돌아 갈 수 없는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옛날을 추억하며 남들이 감히 하지 못했을 만한 에피소드를 전설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항상 어르신들은 이야기한다. "아 내가 젊었을 땐 말이야"라는 추임새와 함께…….

 

어르신들로부터 시작하는 레퍼토리의 대부분은 후덕한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르신들이 하는 이야기에 대하여 차마 의문을 제기하지는 못하면서도 웃음으로 받아넘길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런 어르신들의 억지스런 과거사들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전설의 개념이 아닐까?

 

그 때문에 나는 1954년에 출간되었다는 이 책. 스티븐 킹이 자신을 있게 한 책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이 책.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에서 옛날의 훈훈한 이미지와 그 속에 들어있는 어떤 알 수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의 기대는 힘없이 무너졌다. 여유를 가지면서 책장을 넘기려는 나에게 저자 리처드 매드슨은 "속았지?"라고 놀리는 것처럼 긴박한 상황을 연출하였다. 이 책의 주인공인 로버트 네빌은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가는 인물인 동시에 매일 오후 6시 30분만 다가오면 그를 둘러싸는 흡혈귀들에게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마침 책의 시작부터 흡혈귀들의 공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용감한 전설인 로버트 네빌은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그들에 맞서 투쟁을 벌여나갔다. 흡혈귀들이 싫어하는 마늘, 말뚝, 십자가, 햇빛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그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으며, 그는 왜 그것들이 흡혈귀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하여 조사했다. 그리고 조사결과 그는 흡혈귀 바이러스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햇빛에 노출되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홀로 외롭게 싸워나가던 그에게 처음에는 강아지가 나타났고, 다음에는 한 여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랜 시간 혼자 있었던 그에게 반려동물인 강아지는 그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지만, 불행하게도 강아지는 네빌에게 마음을 열자마자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만난 정상적인 생명체였던 루스라는 한 여인에게 그는 마음을 차츰 열어나간다. 아마도 이 둘 사이의 만남 사이에 강아지를 위치시킨 것은 주인공의 외로움에 대한 슬픔을 한 층 더 끌어올리려는 저자의 의도였으리라.

 

어찌되었건 그는 루스에게 마음을 열었지만, 그녀가 흡혈귀라는 일말의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루스를 검사하였고, 그녀가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뿌리째 흔들리면서 네빌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전개된다.

 

흡혈귀였던 루스도 역시 그를 사랑하게 되어 그에게 멀리 떠나라는 당부를 남기지만, 네빌은 그녀의 바람에 응하지 않은 채, '옛 종족 최후의 생존자'가 되고 만다. 네빌은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바이러스의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난 변종의 흡혈귀들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네빌이 고립되어 있는 동안 그 흡혈귀들은 이 세상을 차지하고 있는 다수의 새로운 종족으로 격상되었던 것이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그러한 깨달음은 그들의 표정에 나타난 감정과 오버랩 되었다. 경외, 두려움, 형언할 수 없는 공포. 그렇다. 그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천벌이었다. 자신들이 끼고 살아가야 하는 질병보다도 더 흉측한 존재였던 것이다."

(221쪽)

 

네빌은 마지막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네빌은 한순간에 고립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롭게 자리를 차지한 이들에 의하여 별종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종족은 네빌을 죽였다.

 

죽음을 맞게 되면서 '나는 전설이다'를 외치는 네빌의 마지막을 보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제일 먼저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몇 년 전 "NO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는 내용을 가진 광고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NO열풍이 잠시 불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열풍은 곧 사라져 버렸다.

 

지금의 현실에서 남들이 전부 찬성하는 주장을 혼자서 반대한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네빌처럼 별종으로 취급받고, 그것도 부족해서 어쩌면 사회에서 매장당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따' 당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서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가야 한다는 우울한 상황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로버트 네빌이 되든지 아니면 로버트 네빌이 되길 거부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버트 네빌이 되고 싶다면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에 맞서서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고, 로버트 네빌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아! 나는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어야 겠구나'라는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양쪽을 바라보면서 로버트 네빌이 남긴 마지막 유언인 '이제 나는 전설이야' 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다름을 외치며 저항해간 위대한 남자의 이야기 '나는 전설이다.' 아니면 고립된 생활에서 새로운 시대의 조류를 파악하지 못한 채 희생당한 어리석은 남자의 이야기 '나는 전설이다.'

 

과연, 여러분의 선택은 어느 쪽인가? 로버트 네빌의 전설은 어떤 전설인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2005)


태그:#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황금가지,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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