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모 어린이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영어 몰입 교육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 듣기 평가 점수 높아져영어로 수학, 과학 등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영어 몰입(沒入) 교육이 초등학생의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8월부터 6 개월간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강유선 교수 팀이 서울 광남초등학교 4학년 322 명을 대상으로 영어 몰입 교육 효과를 연구한 결과, 이 같이 드러났다고 1일 밝혔다.강 교수 팀은 "영어 몰입 교육을 실시하기 전과 후의 영어 듣기 평가 점수를 조사한 결과, 평균 점수가 44.24 점(50 점 만점)에서 46.36 점으로 2 점 이상 올랐다."고 밝혔다. 또 영어 몰입 교육을 한 과목의 퀴즈를 본 결과, 수학 10.07 점(11 점 만점), 사회 7.21 점(8 점 만점) 등 높은 평균을 보여, 어린이들이 영어로 다른 과목의 주요 개념 및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이 짧은 기사를 접했을 때, 속으로 "교육청이 이제 와서 요렇게 밝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구결과는 지난 2월에 이미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밝히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게 뭔가"라고 투덜거렸습니다. 사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니 해가 뜨네, 그러니 일출의 원인은 기상?
광남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몰입교육을 하니, 영어 듣기평가 점수가 평균 2점 올랐다고 합니다. 영어몰입교육의 효과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영어 듣기평가 점수가 오른 건 맞지만, 원어민으로부터 한 학기 동안 받았던 영어몰입교육하고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이게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연구보고서 <내용언어 통합학습에 기반한 영어교육의 적합성 및 효과성에 관한 연구>에 실린 내용입니다. 연구팀이 듣기평가 점수 향상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검토한 결과입니다.
이건 마치 아침마다 눈 뜨는 것과 해 뜨는 것의 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보통 아침에 기상하면 해가 떠있습니다. 그래서 기상과 일출이 관계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해가 뜬 건 내가 눈 뜬 게 원인이야'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상과 일출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연구보고서는 "초등학생들의 경우 CLIL 교육 이후 영어 성취도가 그 이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 영어능력 향상이 CLIL의 영향이라고 결론 지을 수 없다"라고 매듭짓습니다. 성적이 올랐지만 영어몰입교육 때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영어몰입교육을 받아도 영어듣기 능력이 향상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른 기술과 비교하지 않은 신기술이 획기적인가? 영어로 사회 수업을 받아도 사회 성적이 좋다고 합니다. 수학의 퀴즈 점수가 11점 만점에 평균 10.07점, 사회는 8점 만점에 7.21점이라고 언급합니다.
하지만 이 퀴즈는 원어민이 낸 겁니다. 영어로 수학을 가르친 원어민이 자기 수업 시간에 낸 퀴즈 점수입니다. 여기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성적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좀더 엄격하게 본다면, 우리말로 수학을 배운 다른 학생들의 점수와 비교해야 합니다. 예컨대, 이 학생들이 11점 만점에 10.5점이라면, 원어민 교사의 영어몰입교육은 좋은 성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어로 수학을 배운 학생들의 경우에는 영어몰입교육 전과 후의 점수를 봐야 합니다. 예컨대 영어몰입교육 전의 점수가 10.2점인데, 받은 후의 점수가 10.07점이라면 역시 좋은 점수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퀴즈 점수 하나만 가지고는 영어몰입교육의 효과를 논할 수 없습니다. 마치 다른 기술과 비교하지 않은 신기술을 획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의 비전이 "학생에게 행복을, 학부모에게 감동을, 교사에게 보람을 주는 세계 일류 서울교육"인데, 당사자만 이야기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과 비슷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뭐하는 곳일까?서울시교육청의 정책연구는 광남 초등학교 이외에 고등학교 1곳에서도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영어몰입교육을 받아도 영어능력이나 교과목 성적(사회 성적)이 좋아진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보다 못합니다.
더구나 영어몰입교육을 좋아할수록 사회 성적이 낮은 결과도 있습니다. 연구보고서는 결론 부분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학생들의 CLIL에 대한 태도가 교과목 성취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CLIL을 선호한 학생일수록 교과목 성취도는 낮아졌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이유로 연구결과가 4개월 동안 공개되지 않았다고 추정됩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용역을 의뢰하여 작년 8월부터 올 2월까지 수행한 3천만원짜리 연구보고서는 그동안 묻혀있었습니다. 작년 8월 경에 연구를 실시한다고 밝혔던 모습와 비교됩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조금 밝힙니다. 만약 효과있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서울시교육청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까지 나서서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지난 주말부터 서울시교육청과 연관된 소식들이 쏟아집니다. 183만명의 고1․2․3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된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 문제가 모 방송국 PD에 의해 학원으로 사전 유출되는 일이 폭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문제출제기관은 서울시교육청으로, PD에게 시험 전날 문제지를 전달한 바 있습니다. 일제고사를 전국에서 제일 먼저 부활시켜 시험지 앞과 학원으로 학생들을 끌고 가더니, 급기야는 문제유출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금요일인 3일에는 <서울시교육청 부조리행위 신고 포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합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공무원의 비리 사실을 신고하면 최대 3천만원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고 있는데, 교육청의 최고 수장이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와중에 이런 조례를 내놓습니다.
그동안의 '맑은 서울교육' 정책으로는 부족해서 이러나 봅니다. 하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이치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요. 도대체 서울시교육청은 뭐하는 곳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기사가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