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다녀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모처럼 '친박' 의원 30여명과 얼굴을 마주했다. 7일 김학송 의원의 생일축하를 겸한 오찬에서다. 김 의원은 음력으로 윤달 5월 15일이 생일로, 19년만에 생일이 돌아온다.
이날 오찬은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열렸다. 박 전 대표와 친박진영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도 조우했다. 박 전 대표와 김 의원이 사석에서 만난 건 지난 달 22일 이성헌 의원의 생일 이후 처음이다.
두 사람은 '원내대표 추대 무산' 소동 이후 사이가 다소 서먹했다. 이 때문에 이날도 주위에서 부지런히 농담을 건네며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앙금을 풀어주려 노력했다고 한다. 자리도 나란히 앉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긴장감은 여전했다.
의원들, "두 분 맞춘 듯 같은 색 옷차림" 분위기 띄웠지만이날 식사자리에선 박 전 대표의 화사한 옷이 화제에 올랐다. 박 전 대표는 딱딱한 정장에서 벗어나 주름이 많이 잡힌 라이트 브라운색의 블라우스에 카키색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박 전 대표가 모처럼 밝은 옷차림을 하자, 김무성 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 달 이성헌 의원의 생일잔치 때 자신이 박 전 대표의 드레스가 멋지다고 한 말을 두고 일부 누리꾼이 '숙녀에게는 구두나 핸드백을 칭찬해야지 옷이 아름답다고 하는 건 결례'라고 지적해 곤혹스러웠다는 얘기를 소개해 의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는 후문이다.
주변에선 의원들이 두사람에게 우스갯말을 하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한 중진 의원은 이날 박 전 대표의 블라우스와 김 의원의 재킷 색깔이 비슷한 점을 들어 "두 분이 오늘 마치 맞춘 듯이 옷을 입고 오셨다"고 인사를 건넸다.
김학송 의원도 "요즘 박 전 대표와 김무성 의원의 관계가 소원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닌 걸로 안다. 모두가 안심하도록 한마디 해달라"며 김무성 의원에게 건배사를 권하기도 했다.
김무성 의원 "훌륭한 대통령 만들기 위해 내 역할 할 것" 뼈 있는 한마디언뜻 보기엔 화기애애했지만, 이날 오간 대화를 뜯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모임 막바지에 김학송 의원의 "한마디 해달라"는 권유에 김무성 의원이 한 말을 보면 그렇다.
마지못해 입을 연 김 의원은 "과거의 대통령들이 임기가 끝난 후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우리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김 의원은 "(박 전 대표도) 단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 앞으로 훌륭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내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를 향해 지금의 '침묵 정치'로는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에둘러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계파 의원들에게는 '친박진영도 이제까지의 '수수방관' 자세에서 벗어나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어색한 관계 풀려" - "박 전 대표에게 할 말은 하겠다는 뜻"이날 김 의원의 말에 계파 의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훌륭한 대통령이 되는 데 일조하겠다는 뜻 아니겠느냐", "오늘 보니 두 분의 (어색한) 관계가 이제 풀려가는 것 같다"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또 다른 의원은 "김 의원이 앞으로 박 전 대표에게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이날 건배사를 통해 "19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생일을 축하드린다"며 김학송 의원에게 축하의 뜻을 전했다. 김 의원이 "19년 뒤의 77세 생일에도 초대하겠으니 와달라"고 답례하자, 박 전 대표도 웃으며 "그러겠다"고 화답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