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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들의 행복한 유언> 표지
<바보들의 행복한 유언> 표지 ⓒ 조호진
"몇 년 전, 아내에게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아들과 딸, 누님들과 아내 앞으로 공개 유언장을 썼기 때문이다. 타박하는 아내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유언이란 것을 쓰고 나니 많은 이로움이 생겼다.

살아오는 동안 내가 잘못했던 주변 사람들 얼굴도 하나씩 떠오르고 고마운 사람도 떠올랐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좀 더 깊은 고민도 해보게 되었다. 유언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남기는 말이기도 하지만 젊어서 미리 하는 유언은 남은 생의 이정표가 되어 준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의 유언관이다. 가족과 형제에게 유언장을 미리 밝힌 바 있는 그에게 유언은 죽음에 이르러서 남기는 말이 아니라 '살아갈 날의 지향점이자 삶의 나침반'이다.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인생을 건 그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유언장'을 써볼 것을 권한다.

사랑을 실천한 '바보'들이 남긴 것은?

사랑을 실천한 '바보'들이 유언을 남겼다. 욕망과 오욕의 세상에서도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바보들의 삶과 유언은 세상의 혼탁에 취한 이들에겐 부끄러움이자 감동이며 궁극적으론 삶의 나침반이다.

<바보들의 행복한 유언>(김정민-노지민/ 북로그컴퍼니)은 바보들의 유언을 통해 행복한 삶과 죽음의 길로 안내한다. 이 책에는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오드리 햅번 등 세상을 사랑한 39명의 유언과 삶이 담겨 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김수환 추기경, '너무 슬퍼하지 마라.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유언과 함께 500만 추모인파를 불러온 노무현 전 대통령, 케냐와 소말리아에서 38년간 의료봉사 하던 중 이슬람 무장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지면서도 "용서해요"라는 유언을 남긴 레오넬라 수녀, 10억이 넘는 인세와 예금통장을 북한 어린이에게 보내라면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듯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긴 동화작가 권정생. 

특별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삶을 남긴 이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제6대 WHO 사무총장에 선출된 3년 동안 인류의 건강을 위해 일하다 뇌경색으로 숨진 이종욱 박사는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는 가치관을 온전히 실현했으며, 뮤지컬 <렌트>와 <틱틱붐> 등을 만든 천재 음악가 조너선 라슨은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다"는 자신의 노랫말처럼 열정을 쏟으며 살다가 36세에 요절했다. 

역경과 모험에 도전한 인물들은 감동과 용기를 준다. 불가촉천민(달리트) 출신으로 '인도 헌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빔라로 람지 암베드카르,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미국의 여성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헬렌 켈러의 위대한 동행자 앤 설리번, 자신의 미술관과 작품을 마산시에 기증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라이브 음악만을 고집했던 베를린과 뮌헨 필하모니관현악단 음악감독 세르주 첼리비다케,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 등의 메시지는 어떤 문학작품보다 감동과 울림을 준다.

'자선의 여왕' 브룩 에스터 여사와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재산 320억 원으로 '청계재단'을 만들었지만 찬사보다는 의구심이 더 크다. 정치적 측근들로 구성된 재단 이사진 등을 살펴본 상당수 국민들은 기부의 순수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 등의 재산기부 또한 마찬가지다. 이 나라에서 기부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라 정치적 위기탈출용 '쇼'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바보들의 행복한 유언>이 한 인물을 통해 기부의 참뜻을 설명한다. '자선의 여왕'으로 불리는 브룩 애스터 여사는 "돈은 비료와 같아서 여기저기 뿌려줘야 한다"는 지론대로 남편 빈센트 에스터가 남긴 유산 2억 달러(1800억원)를 문화, 환경, 자선단체 등에 기부했다. 105세의 일기로 박애의 삶을 마친 그의 시신은 대학병원에 기증됐고, 카네기홀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뉴욕의 명소 곳곳에는 조기가 걸렸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확실한 일인데도 나는 죽지 않는다는 무의식상의 신념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다"는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지적처럼 이 시대의 불행은 죽음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데 있다. 추모의 발길을 가로막고 부수는 무례한 권력과 영생할 것으로 착각한 자본의 패악함이 마구 질주하는 이 시대는 그래서 불행하다.

도적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게 죽음이다. 죽음이 그대의 문을 두드리면 무슨 말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행복한 유언을 남긴 바보들을 통해  웰다잉(Well-dying) 없는 웰빙(Well-being)은 존재치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잘 살아야 잘 죽고, 잘 죽어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과연 그런가?


바보들의 행복한 유언 - 김수환, 노무현 등 세상을 사랑한 39인의 따스한 가르침

김정민.노지민 지음, 북로그컴퍼니(2009)


#유언#기부#바보#청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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