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가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에 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가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에 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선생님, 우리나라엔 왜 '멀쩡한' 사람이 없어요?"


요즘 들어 신문과 TV 뉴스를 즐겨 본다는 한 아이가 수업 시간에 던진 질문입니다. 내용인즉슨 국세청장과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관련 내용을 관심을 갖고 지켜본 모양입니다.

여태껏 TV만 켰다 하면 개그 프로그램이나 축구, 야구 등 스포츠 경기만 봐 왔는데, 관심도 없었던 선거나 재판 결과,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낯설어했던 고위 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도 그 나름 재미가 있더랍니다.

질문을 받은 순간, 뭐라 답해야 하나 싶어 당황했습니다. 늘 그래왔듯 가장 안전한(?) 답변인 "일부 고위 공직자들의 문제일 것"이라며 두루뭉수리 넘기려 했습니다. 답변을 하려다 보면 외려 그들을 두둔하는 듯한 궁색한 변명으로 흐르거나, 그게 아니라면 우리 사회가 마치 부패의 온상인 양 왜곡돼 전달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느 국회의원과 시도 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등 고위 공직자에서 굴지의 기업인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높은 분들의 재판 결과도 지켜봤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범죄에 연루돼 있더라고요. 마치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다 저래야 하나 싶을 정도로요."
"....."

청산유수로 이어진 그 아이의 '시사 분석'에 기성세대로서 뜨끔했지만, 구구절절 옳은 얘기뿐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주식 투자는 국민 모두의 재테크 '스포츠'가 되었고, 부동산 투기는 돈깨나 있는 사람들의 필수 이력일 정도입니다. 자녀의 학군 배정을 위한 위장 전입 정도는 아예 흠결조차 될 수 없는 부모의 '애틋한' 자녀 사랑법일 뿐입니다.

아직 '순진한' 그 아이는 인사청문회가 고위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의 흠결을 찾아내 창피를 주고 사과하게 만드는 모습에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애초 내정하기 전에 웬만한 검증 절차는 거쳤을 텐데, 인사권자가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무자격자'를 청문회에 올릴 수 있는가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인사청문회에 천거되고, 자격을 검증해야 할 담당 국회의원들조차 존경을 표하는 그런 인사청문회를 만나볼 수는 없는 걸까요? 그렇게 되면 '야당의 근거 없는 정치 공세'라는 낡은 레코드판 돌아가는 소리도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을까요?"
"....."

적어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백년하청이지 싶다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기실 인사권자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흠결 투성이의 고위 공직자 임명을 '당당하게' 강행하는 건 그 정도쯤은 국민들이 양해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국민들도 하나마나한 인사청문회를 지겹도록 봐왔고, '적당히 구린' 인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위 공직자가 된 경우를 익히 겪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보다 국민 개개인조차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을 것이라며 남에게도, 또 자신에게도 '하해와 같이' 관대해진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시나브로 훼손돼 가고 있으며, 학교의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빠르게 전염되고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꿈과 이상을 말해주어야 할 교사들조차 더 이상 '정의'를 입에 담지 않습니다. 그럴 자신도, 용기도 없으려니와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린' 아이들에게 교과서 속의 '바른생활'은 그저 '공자 왈 맹자 왈'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를 수십 차례 바꿔 찍고 교육과정과 학사일정을 백날 손본다 해도, 아이들이 신문과 TV, 인터넷 등 여러 매체들을 접하면서 알게 되고 몸에 밴 우리 사회의 왜곡된 '삶의 공식'은 쉽사리 바꿔질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도덕과 사회 과목을 열심히 가르치고 시험 성적을 올려준다고 해서, 아이들이 도덕적, 사회적 인간으로 길러지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저 계량화된 점수 높은 '우등생'이 될 뿐입니다.

나이답지 않게 신문 사설이나 뉴스, 인사청문회 등을 즐겨보게 되었다는 아이를 두고 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좋은 습관이라며 격려는 해주었지만, 그를 통해 알게 된 우리 사회의 치부들이 아직은 순수한 그 아이의 눈에 어떻게 각인될지가 적이 두렵습니다. '그 정도'의 도덕적 흠결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보란듯 고위 공직자로 임명되는 모습을 보면서, 미래 세대의 아이들이 우리나라는 원래 그렇다면서 거대한 트라우마가 되어 사회 전체의 '품격'을 스스로 낮춰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래도 그 아이는 '놀라운'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얻게 된 '교훈'이 있다며, 우리 사회에는 소통이 불가능에 가까운,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또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비록 부정적인 사고방식일지언정 주관과 소신이 뚜렷하게 정립돼 가고 있는 듯해 교사로서 듬직해보였습니다.

"재작년이었던가요? 아빠랑 엄마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화 나눈 걸 들은 적 있는데요. 도덕적이고 무능한 사람과 도덕적 흠결은 있지만 유능한 사람 중 누구를 찍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였어요. 그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특히 비리 공직자들의 재판과 최근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유능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만약 그래도 '유능'하다면 그건 자신과 '그들만의 리그'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것을요."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인사청문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