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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낚시' 인가?  오래되어서 이름도 가물가물하지만, 뭐 그런 잡지가 있었다오.  친구 사무실에 갔다니, 그 잡지가 있더이다. 펼쳐 읽다가 한 페이지를 다 읽지 못하고, "별 시덥잖은 소리하고 자빠져 있구만!", 그러고는 홱하니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랬는데, 지금 내가 그런 잡지에 나오는 엣세이 같은 걸 쓰려고 하다니, 격세지감이로소고.

각설하구. 일전에 한국에서 친척 한 분이 내가 있는 호주로 놀러오신 적이 있지라. 남자 분이었으니, 당연지사 코스는 배 낚시이었소. 내가 배가 있으니, 남자분들이 여기 오시면 배 낚시가 최고의 접대이지요.

나로서는 아주 좋은 일이우. 나 또한 낚시를 같이 즐기면 되고, 또 돈도 별로 안들거든요.  손님으로서도 대만족이우. 한국에서는 타보지도 못한 배도 타고 낚시도 하지, 경치 좋은 데에 가서 놀지, 또 물고기 잡으면 회 떠먹지. 그런 야생 생활들이 남자 손님들을 뿅가게 하는 모양이더이다.

그 친척분도 여기 있는 동안 나와 같이 배 낚시 가는 것이 가장 즐거우신 모양이었소. "배 낚시 언제 갈기여?" 매일 조르시는 게 일이었으니깐요.

내 배에서 다른 배를 찍은 것이구만요.
▲ 배낚시 내 배에서 다른 배를 찍은 것이구만요.
ⓒ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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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겨울. 낚시가 잘 되는 계절이었고, 내가 잘 가는 포인트로 배를 몰았다오. 낚시를 시작하자마자 입질이 있었고 나는 이미 몇 마리를 건지고 있었지요. 양동이 하나에 바닷물을 떠놓고, 거기다가 잡은 고기를 담아 두었소.

그 친척분의 낚시대에도 입질이 있었다오. 그러나 그 분은 고기를 하나도 못 건지고, 계속 미끼만 잃어버리고 있었수.

"미끼를 잘 못 끼시는 모양이구랴, 이리 주소, 내가 끼어 드릴테이니."

그 분의 낚시대를 받아다가는 미끼를 끼어드렸어라. 낚시에는 여러가지 기술이 있지만, 미끼를 어떯게 끼느냐도 중요하지요.  사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소.  배 밑을 보니까, 고기가 우글우글 해요. 마침, 물때가 잘 맞아서, 모래 섬 주위로 고기들이 떼로 몰려든 것이었지요.

그러나, 어떻합니까? 그 분이 고기를 못 잡고 울상이니, 미끼를 끼어드려 한 마리라도 잡게 해드려야 행복하실테니깐.

그 후로도, 나는 계속 고기를 건지고 있었어요. 미끼를 끼어서 집어 넣자 말자, 5초 정도면 입질이 오고, 탁 채면 고기가 낚시에 걸립니다. 그러면, 조심 스럽게 물에서 건져 올리는 작업이지요. 사실, 낚시가 잘 될 때에는 같은 동작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이 잘하는 낚시법입니다. 그렇게 해야 시간 절약하면서 고기를 많이 건져 올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에이 씨x"

낚시에 열중하다가, 그 소리에 옆을 보니, 그 분이 낚시대를 배에다가 탁하니 던져 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그러세요?"

그 분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습니다.

"미끼만 따먹히고 고기는 하나도 안 잡히네."
"그렇다고, 욕을 하시면 됩니까? 낚시는 인내라고 하는데."
"자네는 잘 낚는데, 나는 이게 뭔가? 나는 이제 고만 할란다."

혼자서 크크흐 웃음이 났습니다. 사실 쫑따구 나실만도 하겠지요. 미끼만 계속 집어 넣다 보니, 고기 밥만 먹여주고 있구나 그런 심사가 나신 겝니다.

고기가 계속 잡혀서, 나는 낚시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듭디다. '연애질과 낚시질은 참 비슷하구나.'

뜨는 해를 바라보며 낚시하는 맛은 일품이지요. 호주 우리집 근처에서 찍었다오.
▲ 새벽 바다 낚시 뜨는 해를 바라보며 낚시하는 맛은 일품이지요. 호주 우리집 근처에서 찍었다오.
ⓒ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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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는 채는 순간이 참 중요합니다. 고기가 미끼를 무는 순간, 너무 빨리 채면 입에 걸리지 않아서 고기를 놓칩니다. 한편, 너무 늦게 채면, 미끼를 이미 따먹고 고기는 도망가 버린 후이지요.

너무 빠르지고 않게, 너무 느리지고 않게 낚시대를 채야 하는데, 그것이 초보자에게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감이 올려면, 몇 해는 낚시로 단련이 되어야 하거든요. 마치 무술 수련과도 비슷한 겁니다.

아마도 0.01초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해요. 그 순간을 말로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것은 서부 영화에서 총잡이들이 벌이는 활극과도 같은 것이에요. 권총으로 사람을 맞히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 물체도 맞히기 어려운데, 움직이는 상대를, 더군다나 나도 땅에 뒹굴면서 맞힌다는 것이 무지하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무술과 마찬가지로, 서부의 총잡이들도 사격 연습을 피나게 합니다. 그것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 될 수 있기에, 목숨 걸고 배우고 닦지요. 그 결과, 그들은 조준사격이 아니라, 지향사격으로도 상대를 맞힐 수 있어요. 서부 영화를 보면, 권총을 벼락 같이 뽑아서 상대의 손에 들린 권총을 맞추고는 항복을 받아내지 않아요?

낚시도 마찬가지이라우. 물 속은 보이지 않고, 물 속에서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내게 전달되는 것은 낚시대로 전해 오는 약간의 진동뿐입니다. 그 진동으로서 상황을 판단하여 채는 순간을 결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오랜 수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시원해 보이지요?
▲ 호주 해변의 어떤 연인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시원해 보이지요?
ⓒ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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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여자를 물고기에 비견하면, 페미들이 벌떼 처럼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만, 페미니즘이란 사회변화를 위한 이데올로기이므로, 현상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고로, 남자가 여자를 낚는 것이 연애이었으니, 낚시와 연애를 연관시키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보아지우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할 수는 있을 것 같소. 여자가 남자를 낚는 경우도 있으니깐두루.

하여튼, 상대가 나에게 호감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너무 일찍 채면, 무슨 소리 듣갔소?

"별꼴 다 보겠네."

무식한 연애 교과서들이 하는 조언은 이런 것이우

"무조건 도장 부터 찍어라!"

그런 조언만 듣다가는 성희롱 또는 성추행범으로 몰리기 십상이우다.

너무 늦게 채면, 무슨 소리가 나오겠슴메?

"벼엉신~   남자가 그렇게 패기가 없어서야."

그래서, 상대를 채는 시기가 중요합니다. 분위기도 잘 파악해야겠지요?  길 걷다 말고, 생뚱 맞게, 아닌 밤에 홍두깨식으로,

"사랑하오. 내 마음을 받아주오!"

그러다가는 산통 다 깨집니다. 낚시에서도, 마친가지입니다. 고기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 낚시의 기본이거든요.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낚시도 잘한다라는 보장은 없지만, 무엇이든 하나에 통하면 다른 것에도 통할 가능성이 많지요. 어느 한 분야에서 박사가 되면, 다른 분야의 논문이라도 그것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겁니다.

"어느 순간, 낚시대를 채면 좋은가?" - 낚시꾼들의 숙제라오

"어느 순간 상대를 채면 좋은가?" - 연애하는 사람들의 숙제이지요. 

이중잣대를 비판할 때,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이중잣대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구 말구요. 허나,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로맨스'와 '불륜'은 동일한 사안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입니다. 왜 전혀 다를까? 주관적 해석이어서 그런가?

아닐 수도 있어요. 똑같은 시점, 똑같은 장소, 똑같은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안이라도, 극미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비록 아주 작으나, 해석에서는 아주 커다란 차이로 결과할 수도 있습니다. 낚시를 하면서,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0.01초  그 짧디 짧은 순간이 고기를 낚느냐 놓치느냐를 결정합니다.  0.01초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동일한 시간, 동일한 사안으로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그 차이는 크지요.

연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연애 감정 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 없을 겁니다. 그 복잡한 상호작용에서 키스의 타이밍을 어느 순간 잡느냐?  따귀를 맞을 수도 있으니, 선택을 잘해야겠지요? 

눈 귀 코 맛 느낌의 오감을 바탕으로 뇌가 판단하고, 그것을 손으로 전달하여, 그 순간 낚시대를 챈다 ... 0.01초 차이가 나지 않을만큼 정확하게 ...

낚시'꾼'되기 어렵지요? 후후 


태그:#호주,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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