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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상 앞에 컵촛불을 올렸습니다
▲ 기원이 담겼습니다 성모상 앞에 컵촛불을 올렸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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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같이 한강둔치 걷기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습관처럼 성당 마당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평일이라 마당은 텅 비었고 관리인 아저씨가 수돗가에서 대걸레를 빨고 있습니다. 성모상 앞에 누군가가 컵촛불을 올리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내가 친형님처럼 따르는 어르신입니다. 나도 컵촛불 하나를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성당 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작은 진열장에 천 원짜리 한 장을 넣고 컵초 하나를 꺼냈습니다. 빨강 파랑 노랑 등등의 컵초가 오늘따라 아주 색상이 선명하면서 예쁩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노랑색 컵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먼저 기도를 마친 어르신이 은행나무 그늘이 풍성하게 드리워진 긴 의자에 앉아서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옆에 와 앉으라는 손짓을 하면서 유순하게 웃습니다.

"또 걷기운동 했나 보네."
"네."
"난 촛불기도 하러 나왔지."

셋돈으로 백수 아들 뒷바라지 하는 부모

또 아들이 다녀간 모양입니다. 아들은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벌써 삼 년째 놀고 있습니다. 어르신 부부는 한창 나이인 오십 초반에 노후를 생각하고 돈이 모자라 빚까지 얻어 어렵게 장만해 둔 다가구 이층 주택에서 나오는 세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백수가 되자 그 셋돈을 나누어 쓰게 되었습니다. 말이 나누어 쓰는 거지 셋돈 거의가 아들네로 들어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네의 생활비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사교육비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교육비가 비싸다고 합니다. 학원을 몇 군 데 보내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사교육비가 가계를 흔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부모가 버팀목 노릇을 제대로 못하니까 수입이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신 사교육비를 대는 것은 우리네 정서로 보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생활비에 사교육비까지 대다 보니까 힘에 부치시나 봅니다. 한 눈에도 어르신의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오늘따라 기운이 없어 보이고 많이 수척해졌습니다. 늘 단정하던 뽀글퍼머 머리가 풀릴 대로 풀려서 요즘 유행하는 물결무늬 머리가 되었습니다. 퍼머를 다시 할 시기가 지나도 한참이나 지난 것입니다.

"손자들 공부 잘하죠?"
"그럼. 그 애들한테 돈이 얼마가 들어가는데. 학원을 두 군 데씩이나 다닌다는데."

"요즘은 그렇게들 키우나 봐요."
"우리 아들 어렸을 때는 학원 안 보냈어. 어려운 시절이라 잘 먹이지도 못하는 데 학원을 어떻게 보내. 그래두 공부 잘했지. 그 시절 아들애 모습을 생각하면 막 가슴이 아파. 내가 좀 힘들더라도 생활비며 지 자식들 학원비까지 죄다 부담하고 있는 건 그래서라구. 근데 아들애는 그런 내 마음을 하나도 몰라. 글쎄 어제는 와서 유럽여행이 가고 싶다는 거야." 

물론 어르신은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간 모아 두었던 돈도 모두 바닥났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들애는 어르신 부부의 생명줄인 이층 주택을 팔자고 나왔답니다. 아이들이 방을 하나씩 달라고 하니까 살고 있는 전세인 아파트도 늘려가고 조그맣게 사업을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어르신은 뒷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고 칠십 후반인 남편이 벌컥 분개하며 호통을 쳤습니다.

"그건 내 피땀으로 산 거야. 손 대면 안 돼!"   

어르신은 막말로 아들이 노동이라도 할 생각은 않고 빈둥거리며 주택에서 나오는 셋돈 거의를 꼬박꼬박 가져가는 것이 못마땅하다 못해 미울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호통 한마디에 고개를 푹 떨구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현관을 나서는 모습을 보니까 그만 서러워지면서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답니다.

어르신은 남편 모르게 아들애의 바지주머니에 새로 나온 오만 원 지폐 두 장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더 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줄 것은 없고 아 어쩌나 하는 사이에 복도를 걸어가던 아들애의 초라한 모습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습니다. 어르신은 그날 저녁밥을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집 애들은 손 안 내밀지?"

"딸아이도 툭하면 와서는 남편 월급이 적다고 손을 내민다구. 왜 주택에서 나오는 셋돈 오빠만 주냐는 거지. 차 몰고 수영 다니고 친구들이랑 찜질방 다니고 그러면서 말야. 어쩌면 내 속을 몰라도 그렇게 모르나 몰라. 난 마트장 보던 거 재래시장 보고 영감 보약도 일 년에 세 번 짓던 거 한 번으로 줄였는데 말야. 참 그 집은 애들이 손 안내밀지?" 

내가 어르신의 집안 사정을 알듯이 어르신 역시 우리 집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부모 자식간에 서로 손 안내밀고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요…."
"나도 자식들이 손 안내밀 때가 있었지. 그런데 순간이야. 자꾸 세상이 변하잖아. 누군 백수가 되고 싶어 백수가 되나. 자넨 이런 경우 겪어보지 않아서 몰라. 아무래도 지금 사는 아파트를 팔고 그 주택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 해결책일 거 같아. 아파트 매매가 더 빠르니까 말야." 

"여기서 오래 사셨는데…."
"일층을 써야겠어. 셋돈 들어오던 게 얼마 줄겄지. 그래도 마당이 좀 있으니까 봉숭아도 심고 채송화도 심고 그렇게 살다보면 속상한 일 죄다 잊겠지." 

이런 때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냥 어르신의 주름진 손을 잡았습니다. 내가 혼기를 놓쳐 골드미스가 된 딸애 걱정을 하면서 속상해 할 때 어르신이 내 손을 가만히 잡아줄 때처럼 그렇게 잡았습니다.

"근데 말야 부모 등골 빼먹는 자식이 있네 어쩌네 하는 말이 남의 말인줄 알고 살았었는데 나쁘게 말하면 내가 그짝이 난 거지. 좋게 말하면 내가 아들에게 힘을 주는 거고, 힘을. 좋게 생각해야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말야."

어르신은 가슴속에서 뭉클거리는 속상함을 누르느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어르신의 말을 듣고나니 잠시 헷갈렸습니다. 아들이 등골을 빼 먹는 것일까 어르신이 빼 주는 것일까. 어느 쪽으로 생각을 하든 어르신 처지가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아무말도 안 했습니다.

"부자가 아니라 바르게 살라고 기도했지"

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 텅빈 성당 마당입니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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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르신의 아들은 행복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년의 나이에 부모가 든든한 경제적 버팀목인 경우는 그리 흔치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르신 역시 행복한 분입니다. 노후에도 자식이 바라는 대로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신은 바싹 마른 빈 껍데기로 남을지언정 무엇이든 자식이 바라는 대로 해줄 때가 제일 기쁘고도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나니까 어르신이 더욱 존경스러워 보이면서 답답하던 내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에게는 그런 생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도움도 되지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성모상 앞에 컵촛불을 올리고 있습니다. 어르신도 나도 그 경건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어르신에게 나직하게 물었습니다.
   
"형님, 아까 아들 부자되게 해달라고 기도 하셨어요?"
"아니. 난 한 번도 부자되게 해달라고 기도 한 적 없어. 그저 남에게 해 안주고 바르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지.

어떻게 지금같은 처지에서도 그런 기도가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만 부끄러워졌습니다. 나는 자식들이 돈도 많이 벌고 품고 있는 꿈대로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돌아보니 어르신은 조금전과 달리 흐뭇해 하는 눈으로 컵촛불을 올리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태그:#컵 촛불, #기도, #백수, #부모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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