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을지로3가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승강장에 설치된 커다란 티비 화면에 나오는 광고를 보고 있었다. 예상한 대로 별로 볼 만한 건 없었고, 그저 항상 똑같은 소주 광고뿐이어서 거의 흥미를 잃어가던 차에 한국 정부에서 만든 공익광고가 나왔다.
잠깐 컴퓨터 소리를 다 죽이고 시청해주셨으면 한다. 지하철에서 처음으로 이 광고를 접하게 될 많은 사람들처럼 무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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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나온 공익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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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티아스 슈페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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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반응?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금방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한국 정부에서 자국인들이 무례한 행동을 하는 걸 계속 보여주고, 그 순간마다 매번 화면에 크고 굵게 영어로 "KOREAN"이라는 단어가 뜨는 광고를 만든 것이다.
제일 기분이 나빴던 것은 한국인 직장인이 외국인 관광객을 밀친 다음 걸어가버릴 때 나오는 "KOREAN"이란 단어를 보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지도를 든 남자와 실수로 부딪힌 것이 아니다. 그러고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다시 한번 돌려서 살펴보자. 뻔뻔하게도 뒤돌아 서서 자기가 밀어버린 가엾은 남자를 "그래서, 뭐 불만 있냐?" 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몇번을 되돌려보아도 대체 이 광고가 뭘 말하고자 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다가오는 것은 "Korean"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아주 부정적이구나 하는 정도.
음량을 높이면 여기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처음 해설을 대충 적어보면 이렇다: "우리는 변했지만, 더 변해야 한다". 그 모든 실수들을 이런 전제에서 보여주기 시작하는 듯 하다.
만약 지금 이 모든 것이 그저 터무니 없고 이상하게 보인다면, 그건 바로 이상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왜 그렇게 애매하게 광고를 만들어 놓고 소리도 안 나오는 전철역 방송에 내보내는 걸까? 그리고 만약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여전히 생뚱맞고 무척 어색하다.
이 영상에서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을 나쁘게 대하는 광경을 보고, 나오는 말은 전부 다 한국말인 가운데(많은 외국인들에겐 이해하기 힘든), 화면에선 그런 행동에 뒤이어 눈부시게 "Korean"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면, 외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여기에 덧붙여 한국말을 조금 읽을 수 있는 외국인들에겐, 그런 나쁜 행동들 끝에 나오는 "Korean"임을 자랑스러워 하란 말을 보고 더 이상하단 생각이 들 것이다. 한국말을 진짜 잘하지 않는 이상(그리고 이 어지러운 영상을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상) 정부가 시민들을 동원하여 모두 인종차별을 하고 자랑스러워하라는 광고로 보일 수도 있다. 끔찍하다.
물론 이 작품을 보고 다른 의문들도 생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선택한 공식 홍보 색상이 파란색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언제부터 한국 스포츠 팬들이 경기에서 파란 셔츠를 입기 시작했지?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땐, 빨간 색이 한국이었고 파란색은 일본이었는데.
또 마지막에 잘생긴 중동인에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차가 끊긴 버스 터미널에 앉아 있는 건지 아니면 공항인지? "못된" 한국인들에게 추방당하는 모습인 걸까?
어쨌든 이것을 본 후에 제일 묻고 싶은 질문은 '정말 이런 걸 만들어야 했느냐?'라는 것이다.
상상해 보자. 독일 베를린에 여행을 갔다가 지하철역에서 야구 방망이를 들고 군화를 신은 스킨헤드 세 명이 어두운 피부의 시민을 폭행하는 광경을 보여주며 명랑하게 이런 해설이 나오는 공익광고를 보는 장면을….
'우리는 1936년 이래로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더 변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마티아스 슈페히트 기자는 독일에서 태어나 10여 년 전 첫 방한한 후 거의 매년 한국에 오다가 2006년 서울로 이주했다. 독일 유러피안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 학위를 2008년엔 연세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 후 서울에서 '스텔렌스 인터내셔널(www.stelence.co.kr)'을 설립하여 유럽 라이프스타일 제품 등을 수입판매 중이다. 최근 한국에서의 경험을 쓰기 시작한 개인 블로그는 http://underneaththewater.tistory.co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