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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에서 교과부가 학습부진아 낙인만 찍어놓고 제대로 된 대책이나 후속계획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학습부진아 실태를 중심으로 부진아정책의 문제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일제고사가 오히려 부진아 만드는 거 아니야?

우리반 00이는 진단평가에서 부진아 판별을 받았는데 공부시간에는 발표도 잘하고 6월달 학업성취도 평가도 잘 봤어요. 오히려 00이는 부진아도 아닌데 이해력도 낮고 못따라오고 있어요.

서울 남부에 있는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의 하소연입니다. 선생님이나 학생들이나 "대체 부진아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대체 어떤 아이들이 부진아일까요?

교과부에서 2008년에 정리한 부진아개념입니다.
 교과부에서 2008년에 정리한 부진아개념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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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초등학교 3학년때 시험을 봐서 걸리면 기초부진아고, 3월 시험에 걸리면 교과부진아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 자르듯이 구분이 되는 것일까요?

사실 기초부진아면 거의 100% 교과부진으로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국어를 못하면 수학도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요즘 수학은 사고력을 강조해서 문장제가 많고, 낱말 뜻과 맥락을 모르면 풀기가 어렵습니다.

진단평가 교과가 많아지는 것도 현장의 반발이 많았습니다. 국어, 수학은 내용연계성을 조금 이해한다 하더라도 사회나 과학은 이전학년 내용과 연관성이 깊지 않다는 것입니다. 암기할 내용이 아니라 체험하고 실험하면서 체득해야 할 내용이라 지필시험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초등 영어는 목적 자체가 놀이중심이고 흥미를 가지게 한다면서 지필평가를 보니 교육과정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교과목이 많아지니 결국 부진아숫자도 늘어나고, 5개 과목다 부진아인 경우도 생깁니다. 특히 다문화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 아동중에서는 일주일내내 부진아교실만 다녀야 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교과부가 학문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부진아 개념조차 합의를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부진아를 만들어내는 건 아닌가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부진아, 문제는 가난?

개념은 그렇다쳐도 학교현장에서 학습부진아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모임에서는 부진아실태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실태조사를 하였습니다. 결과를 보니 부진아가 거의 없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어떤 학교는 아주 비슷한 규모 학교에 비해 매우 많았습니다. 교과부에서 학교나 개인별로 분석한 자료는 없기 때문에 학교에 근무하는 분들을 통해 실태를 알아보았습니다.

이 중 부진아 숫자가 비교적 많은 한 학교(<표1>)를 집중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3월에 4-6학년까지 5개 교과 진단평가를 보고 나서 교과별로 부진아를 집계하고 있습니다. 계는 교과별로 중복된 학생까지 포함한 것이라 실제 학생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3월에 4-6학년까지 5개 교과 진단평가를 보고 나서 교과별로 부진아를 집계하고 있습니다. 계는 교과별로 중복된 학생까지 포함한 것이라 실제 학생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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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도시에 있는 이 학교는 주변에 유흥가가 밀집되어 있고, 도심공동화현상으로 점점 인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정불화나 생계가 어려워 학생들이 방치되는 경우도 자주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급식 지원을 받는 학생이 15%정도 되고, 한부모나 조손가정도 반에서 10여 명 안팎에 이릅니다. 학급에서 보면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에서 학습부진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영국의 교육이 왜 실패했는지 닉 데이비스가 영국 가디언지에 기고한 심층탐사보고서입니다. 충격은 받은 영국 전역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결국 영국교육정책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교육이 왜 실패했는지 닉 데이비스가 영국 가디언지에 기고한 심층탐사보고서입니다. 충격은 받은 영국 전역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결국 영국교육정책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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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학습부진아가 되는 이유에는 부모들의 경제력이나 가정문화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간 부모들의 경제력에 따른 대학입학률 연구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심층연구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현상만 보기보다는 구조적인 원인과 다양한 변인에 대한 연구가 엄밀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에 비해 먼저 시험정책을 먼저 실시한 영국이나 미국은 어느 정도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성열관 교수(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는 토론회 등을 통해 미국의 NCLB정책과 정보공시 정책의 폐해를 여러 차례 지적하였습니다. 지난 10일 청주에서 있었던 직무연수에서는 미국 부진아들의 가장 큰 문제가 "빈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가족구조나 인지장애, 동기유발 부재를 꼽았습니다. NCLB정책으로 폐쇄위기에 놓인 학교들은 그 전부터 슬럼가에 있어 학교 유지 자체가 어려운 학교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사례는 <위기의 아이들>이란 보고서로 잘 나와 있습니다. 학교가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학교폐쇄를 불사하고 추진한 정책이 결국은 사회의 빈곤문제를 희석시키고, 가난한 학교를 더 힘들게 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학부모의 경제능력에 따라 사교육비가 결정되고, 이 때문에 오히려 학습격차가 커진다는 연구가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교육문제 이전에 사회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괜한 소리가 아닌 것입니다.

학습지만으로 부진아 탈출은 불가능

그럼 부진아 지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부진아판별을 위해 반드시 시험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 교과부였으니 사실 완벽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부진아 판별만 해 놓고 심층분석이나 솔깃할만한 방안은 전혀 없이 학교로 책임을 다 떠밀었습니다.

부진아 많은 학교만 죽어날 상황입니다. 기껏 내려온 자료는 아직 배우지도 않은 새교육과정 자료입니다.(학습부진아 지도하라며 배우지도 않은 내용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75766&PAGE_CD=17) 아이들 상태나 교과별로 접근 방법이 다 달라야 할텐데, 부진의 원인도 모른채 천편일률적으로 학습지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물론 자료만 좋다고 부진아 구제가 쉬운 건 아닙니다. 지난 6월 30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기초학력증진에 관한 포럼이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가르쳤는데 학년이 바뀌면 부진이 반복되니 사실 구제하고 성공하여 얻은 큰 보람이나 성과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구제된 부진아가 학년이 바뀌면서 다시 부진아가 되어 돌아오곤 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 마치 암기로 해서 구제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원리나 개념은 모른 채로요. 그래서 행정상으로는 모두 구제된 것처럼 보이지만 부진아들이 지닌 학습의 부진 부분은 계속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00 교사, 6.30 교육과정평가원 기초학력증진 포럼 자료)

그 동안 기초학력부진제로정책을 추진해서 학년말에 구제된 아이들이 결국 다음해에 다시 부진아로 나타나는 게 특정지역만의 현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요컨대, 부진학생을 지도해본 경험이 있는 교사들의 이상의 말을 종합하면, 우리나라의 정규 학교에서 부진학생을 구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간혹 부진으로부터 구제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가뭄에 콩 나듯이 어쩌다 우연히 나타나는 일이다. (서근원, 6.30 교육과정평가원 기초학력증진 포럼 자료)

부진아정책, 일제고사 폐지하고 체계적인 연구와 지원부터

물론 그렇다고 부진아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일제고사를 페지해야 합니다. 부진아는 담임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충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굳이 더 미세한 영역까지 알아야 한다면 체계적으로 개발된 도구를 제공하여 학교단위로 알아보면 됩니다. 부진아가 많은 지역은 무료급식아가 많은 지역이나 교육복지투자지역과 많이 겹친다고 합니다. 굳이 160억씩 들여 일제고사를 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부진아의 개념부터 명확해야 합니다. 기초학습부진아도 그렇지만 교과학습 부진아는 교과별로 성취기준이 타당한지에 대한 기초연구도 없습니다. 지난 630포럼에서 서근원박사는 학습부진 학생 유형과 특성을 <표2>과 같이 분류했습니다. 원인에 따라 처방이 달라져야겠지요.
부진아 유형을 원인과 특성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정확한 진단과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이 시험보다 먼저 연구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부진아 유형을 원인과 특성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정확한 진단과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이 시험보다 먼저 연구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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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열관 교수는 교과능력과 생애능력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봅니다. 학교 모범생이 사회모범생이 아니듯 학교부진아들이 세상을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는 가능성을 차단해서는 안되겠지요. 1번의 시험으로 부진아 낙인을 찍기보다 더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사회, 과학 부진아가 많아 충격을 받은 학생들이 많습니다. 시험문제 난이도에 따라 부진아가 고무줄처럼 늘고 주는 현상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부진아 판별보다는 프로그램개발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현재는 적당한 이론이나 프로그램이 없이 보충학습시간에 학습지만 풀라고 하는 형식입니다. 아이들이 지치고 질려서 본 수업을 제대로 못해 오히려 결손이 커질 상황입니다. 교사들은 교육과정 내용이 너무 어려워니 학생발달수준에 맞게 교육과정부터 손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교과부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정책연구도 없이 성급하게 전국 일제고사로 들어갔고, 시험을 치고 나서야 기초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 어느 자리에서 교육과정평가원의 한 연구원은 "자꾸 절대기준 평가 보라고 하는데 우리도 그런 기준 아직 없습니다"라고 실토했습니다. 이런 무책임한 정책은 수영도 안 배운 아이를 수영장에 밀어넣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게다가 지역교육청간 경쟁으로 이어져 그야말로 학교가 아수라장이 가고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학생들입니다.

부진아가 무슨 죄인가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사들도 고민이 많습니다. 한 교사커뮤니티에서 본 글입니다.

공부 못하는게 큰 죄입니까? 공부 못하는 것이 큰죄가 되버린 대한민국이 걱정됩니다. 어떤 교육을 실시하던 부진아는 항상 존재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범위를 최소화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겠지요.
공부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것이 진정한 삶의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공부를 못해도 즐겁게 학교 다닐 수 있고, 노래를 못해도 노래방에 가는 것이 즐겁고, 공을 잘 못차도 운동장에 열심히 땀 흘릴 수 있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부족한 사람을 안을 수 있는 즉 사회적 약자를 품을 수 있는 따뜻한 인간애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반의 착하디 순한 땡아무개. 단지 선생님에게 착한 학생이 되고자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학습지를 들고 아는척하며 여러번 지우개질하며 문제 푸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핑돕니다. 교육결과물 제작의 노예가 되어버린 수많은 부진아들의 자존감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담임으로서 아이에게 고개를 떳떳이 들 수가 없네요.

교과부 장관님,
아이들은 실험쥐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먹고 자란다고 합니다. 우선 일제고사부터 폐지하고 어떤 것이 아이들 교육에 가장 필요한지 차근차근 찾아나갔으면 합니다. 그 출발은 바로 교육현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진아라는 이유로 방학도 쉬지 못하게 하는 건 인권탄압입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정책연구도 없이 말입니다. 다음부터는 날마다 배우는 수업내용이 오히려 부진아를 만들고 사교육을 유발하게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시험만 신경쓰고 나머지는 내팽개친 교과부의 직무유기도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태그:#학습부진아, #일제고사, #부진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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