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니 사회적 화두로 자리를 잡았던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여성단체가 수년 동안 진행해온 영화제 예산도 지원이 끊겨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을 통해 여성영화제가 열리기도 했다.
지난 12일, 제5회 인천여성영화제 진행되는 '영화공간 주안'에서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분쟁지역 전문 프리랜서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이유경(37)씨를 만났다. 몇 년 전 보았을 때보다 훨씬 마른 체구에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삶과 죽음을 오가는 분쟁지역에서 취재하는 기자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했다.
국제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는 그지만 "작지만 아름답게 준비된 여성영화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며 이곳을 찾았다.
무작정 분쟁 지역으로 떠나다 이유경 기자는 대학원 졸업 후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에서 활동하다 2003년 <한겨레21>을 통해 만났던 정문태 국제 분쟁 전문기자의 현장발 기사와 2000년 다녀온 유럽 배낭여행으로 인해 언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작했다.
'조금씩 현실에 타협하면서도 이를 합리화하며 사는 우리들과 달리, 고통 받는다는 표현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지구촌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는 우리의 깽.'
이 기자의 지인은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 기자의 별명은 '깽'이다. 그가 분쟁지역을 찾는 기자로 발을 내딛은 것은 한국 언론의 폐쇄성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을 요구하는 학벌 사회, 출입처 중심의 천편일률적 취재 관행, 도제식 교육 관행 등을 보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었다는 이유경 기자.
그는 2004년 3월 자신의 발로 분쟁지역을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에 얇은 호주머니와 네트워크 준비도 없이 분쟁지역에 몸을 던졌다.
그동안 네팔, 미얀마, 라오스, 태국 남부, 스리랑카, 카슈미르(인도 파키스탄 분쟁지역), 인도,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등 내전과 전쟁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지역을 다니면서 분쟁의 원인과 인권문제를 주로 취재했다.
그의 기사와 사진은 <위클리 경향> <한겨레21> 등 국내 언론매체와 독일 진보 일간지 <Neues Deutschland>에 실렸다. 이밖에도 <Die Wochenzeitung>(스위스), <Asia-Pacific Times>(독일), <Mygreennews.com>(독일) 등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고 있으며, 그의 사진은 홍콩베이스 아시아전문 사진 에이전시인 'Eyepress.com'을 통해 배포되고 있다.
"가난하지만, 조·중·동에 기사를 넘길 수 없죠" 생사를 오가면서 취재를 하지만 국내 언론은 이유경 기자가 발로 뛴 기사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정부가 외국 언론 상황을 비교하면서 국내 미디어 시장의 통폐합을 주장하지만, 세계 경제 12위의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국제 취재활동이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출입처를 중심으로 편제된 국내 언론의 역할은 외국 취재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사건사고가 있는 곳에 기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사고의 내용이 취합되는 곳에 기자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언론이 내보내는 세계 분쟁지역 관련 소식의 절대 다수는 외국 특파원이 취재한 것을 통신사를 통해 가공한 정보다. 같은 아시아권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의 소식도 이와 비슷한 경로로 습득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유경 기자와 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 길을 개척하는 기자들에게 분쟁 지역 취재는 생명의 위협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협까지 주고 있다.
이유경 기자는 <위클리 경향>과 <한겨레 21> 등에 기사를 송고하고 있다. 이들 언론사에서 이 기자에게 보내는 원고료는 분쟁지역을 몇 달 간격으로 오가는 경비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원고료가 높은 다른 매체에 송고할 생각이 없냐는 물음에 이 기자는 "국내 언론사 중에서 원고료가 높은 곳은 조선·중앙·동아밖에 없는데, 이런 언론사에 기사를 보내고 싶지는 않다"면서 "분쟁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인권문제와 사실 왜곡을 가감 없이 보도할 수 있는 국내 언론사에 내 기사를 송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단호한 말은 배고프지만 신념을 지키겠다는 정신이 묻어 있다. 이 정신이 바로 삶과 죽음을 오가는 분쟁지역에서 그를 지탱해주는 힘이리라.
"아시아 넘어 고통 받는 제3세계 민초의 삶 만나고파" 이 기자는 앞으로 몇 년간은 아시아지역의 분쟁을 취재할 계획이지만, 향후에는 아프리카와 남미지역까지 취재 영역을 넓히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는 '마오쩌둥주의'의 공산반군의 무장투쟁과 중도 우파세력의 연대로 왕정을 끝내고 공화국으로 넘어간 네팔 지역에 취재에 욕심을 내고 있다. 네팔은 지난해 5월 제헌의회의 왕정 폐지 결의에 따라 왕정이 막을 내리고 공화국이 출범했다. 그러나 최근 폐위된 뒤 칩거해온 갸넨드라 전 국왕에 대한 왕정 복귀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 잠재적 분쟁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더욱이 정파 간의 대립으로 인해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기자는 2006년 9월 13일 군부 쿠데타 이후 정치 불안을 겪고 있으며, 최근에는 반정부 시위가 대규모로 일고 있는 태국도 관심 지역이다. 태국은 이 기자의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이라 주요 취재지역이다. 이밖에도 스리랑카지역 등에서도 추가 취재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미얀마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추방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치적 불안 상황이 지속되면서 스파이 활동이 많아 외국 언론에 대해서도 상당히 경계를 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서 미얀마에서는 쫓겨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아시아의 다수 국가들은 서방에 의해 20세기 초까지 식민지였기 때문에 백인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지만, 한국인과 같은 동양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어 취재하기에는 서방 기자들보다 유리하다.
이 기자는 아시아 다수 국가들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은 한국의 70년대 수준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기자는 "20세기 초까지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방 강대국에 의해 식민지로 수탈당한 아시아 민족은 이제 정치적 이데올로기, 종교, 기득권으로 인한 내전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아시아 지역을 넘어 초국적 자본에 의해 여전히 고통 받는 제3세계 민중들의 삶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BBC, 알자지라, CNN이 주요 취재원? 국내처럼 출입처와 학연, 인맥을 통해 형성된 정보원이 과연 분쟁 지역에서도 형성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당신의 주요 정보원은 누구냐"고 물었다.
이 기자는 자신의 정보원은 영국 BBC, 아랍권 방송인 알자지라와 미국 CNN이라고 말했다. 외국의 거대 미디어 그룹의 경우 정보원을 통해 생산된 고급 정보를 돈으로 일부 유통시키기도 하지만, 발로 뛰는 그의 경우는 분쟁 지역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이들 방송이 주요한 정보원이다.
자신의 베이스캠프에서는 이들 방송을 24시간 청취하며 자신의 다음 취재 지역을 경정하고, 취재 루트를 작성한다고 한다. 또한 이 기자는 국제 인권단체 보고서, 각국의 정책 싱크탱크 등을 통해 입수한 각종 자료를 통해 취재 지역에 대해서도 일상적 체크를 한다.
물론 일부 지역의 경우 인터넷 등을 통해 취재 후의 상황을 제보하고 이를 통해 후속 취재도 진행되고 있다면서 그 동안의 성과물을 일부 털어놓기도 했다.
외국 분쟁 지역을 취재하며 지난해 광우병 파동,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와 인권 후퇴 상황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자 이 기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많은 우려를 갖고 있지만, 외신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보다 남북의 긴장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최근 독일 진보 일간지인 <Neues Deutschland>에 대한민국의 '6월 키워드'를 주제로 기사를 송고했다. 주요하게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벌어진 인권침해와 민주주의 후퇴 상황에 대해 기자의 문제의식을 다루었다.
또한 최근 남북 관계 긴장 고조로 인한 남북한의 주요 변수와 이명박 정부에게 남북 경색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와 이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하지 등에 대해서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배고플 자신이 있다면 떠나라"
대한민국과 비슷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OECD 국가들의 언론 환경은 한국과 비교해 나은 편이다. 언론시장의 다양성과 차별성이 분명해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다.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은 결국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의 언론인은 손에 꼽힐 정도다. 특히나 분쟁지역 등 사회적 약자가 밀집해 있는 곳에서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국내 독자에게 전하는 기자들은 더더욱 찾기 어렵다.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후배 기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 한국 언론의 흐름은 부정적이지 않지만, 아직은 멀었다. 이는 한국 언론 상황의 문제라고 본다"면서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신과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피력했다. 그는 "DSRL카메라와 캠코더를 가지고 다니는 젊은 층이 발에 채일 정도이고, 시민기자와 개인 파워블로그가 넘쳐나지만, 이들의 에너지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한국의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배타적인 한국 언론 상황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입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어하는 젊은 기자들을 양산하고 훈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분쟁지역 기자를 직업으로 희망하는 후배 기자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하고, 배고플 자신이 있다면 언제든지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결과적으로 잘 풀려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절대 다수의 분쟁지역 취재 기자들은 가난과 체포, 구금 등의 공포에 허덕인다. 굉장한 비정규직이다. 만약 할 맘이 있다면 하기 위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외국어 실력, 기자로서 실력과 자질, 외국의 인문·사회학에 관심을 꾸준히 가지면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는 판단이 생기면 무작정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분쟁지역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 이 기자는 2004년부터 4년 동안 아시아의 분쟁지역을 취재해서 2007년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을 출간했다. 이 책은 단신으로 전해진 국제뉴스를 통해서 흐릿하게나마 들어본 분쟁지역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한다.
특히 밀림과 분쟁지역의 참담한 실상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전해 더욱 감동적이다. 타이, 버마(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네팔, 카슈미르에서 기자의 발걸음이 옮겨가는 대로 독자들의 맘도 함께 움직이게 된다.
이 기자는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을 출간한 후 취재한 내용을 모아 다시 책을 내려고 준비 중이다. 이 기자의 삶과 투쟁, 사색이 담긴 성과물을 빨리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