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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친구들', AMMORE', 오산이주노동자센터 등 시민사회단체가 15일 국내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 결혼 이주자의 법적지위와 현실' 국제회의에 초청한 필리핀 가사 노동자에 대한 비자를 발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의친구들', AMMORE', 오산이주노동자센터 등 시민사회단체가 15일 국내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 결혼 이주자의 법적지위와 현실' 국제회의에 초청한 필리핀 가사 노동자에 대한 비자를 발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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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월 초, '아시아 결혼 이주자의 법적지위와 현실' 국제회의를 준비 중이던 시민사회단체 '아시아의 친구들'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홍콩 영사관 직원'이라 소개한 이는 "필리핀에서 가정부를 하는 여성이 비자 발급 요청을 해왔다"며 "일반 가정부가 국제회의에 초청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아시아의 친구들'은 초청자의 비자발급을 위한 서류를 모두 제출한 상태였다.

전화를 받은 활동가 A씨는 "추가 제출 서류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겠다"며 요청사항을 공문으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영사관 직원은 "필리핀인 중 불법체류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며 자신이 마치 비자발급에 관한 전권을 가지고 있는 양 말했다. 결국 필리핀 여성의 비자는 발급되지 않았다. 반면 일본에선 이 여성에게 '국제회의 참석'을 목적으로 한 비자를 발급했다.

#2. 7월 10일 부천시청 방향 버스 안, 정장을 입은 한국인 박아무개씨가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씨에게 아무 이유 없이 "더러워 XXX야!", "Fuck you"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후세인씨와 함께 있던 시민단체 활동가 한아무개씨가 "왜 그러느냐"며 욕설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지만 박씨는 한씨에게도 비슷한 욕설을 퍼부었다. 결국 한씨와 후세인씨는 자신들에게 모욕을 퍼부은 박씨를 데리고 부천중부경찰서로 갔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이들이 겪은 일은 더 황당했다. 후세인씨의 신분증(후세인씨는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원으로, 성공회대에서 교수신분증을 발급)을 보고, "1982년생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교수가 됐느냐"며 후세인씨의 외국인등록증을 압수했고, 이후 1시간 동안 보노짓씨에 대한 신분 조사가 다시 진행됐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씨와 후세인씨에게 협박과 모욕을 가하는 박씨와 격리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모두 만약 국제회의 초청자가 필리핀인이 아닌 미국인이었다면, 후세인씨의 피부가 하얀색이었다면 받지 않았을 인종차별적인 처사였다. 국내 체류 및 거주 외국인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선 오늘날, 정부가 '인종차별'을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가정부 출신 아시아인은 NO! 하지만 OECD 국가 방문했다면 OK~

'아시아의친구들','AMMORE'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한국 정부의 자의적인 비자발급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아시아의친구들','AMMORE'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한국 정부의 자의적인 비자발급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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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현지 활동가 비자발급 거부로 문제가 된 국제회의를 주최한 시민사회단체들은 15일 오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가 아시아인들에 대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필리핀 현지 활동가의 비자발급을 거부한 이번 사건은 아시아 사람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적 태도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도대체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국제회의에 초대된 가사 서비스 노동자 출신 여성 활동가들의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들은 또 같은 국제대회에 초청된 남성 활동가의 경우, 과거 OECD 국가 방문 기록을 토대로 비자 발급이 이뤄졌음을 지적하며 "비자 발급 기준이 영사관 직원 개인에 의해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OECD 국가 방문 기록으로 외국인을 위계화하고 차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해당 국제회의의 한국 코디네이터인 이안지영씨는 "한국이 한 개인, 즉 직원이나 영사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비자를 발급해주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종, 성, 계급에 따른 차별이 그대로 반영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과거 미 대사관은 미국으로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재직증명서 등을 받아올 것을 요구하며 불법체류자 취급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가 돈, 인종, 성에 따라 아시아 국가 사람들을 미개한 이들로 치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도 "작년 이명박 정부가 제2차 국가경쟁력강화회의에서 '고급 외국 인력을 유치하라'고 하더니, 돈이 많은 외국 기업인은 환영하고 돈이 없는 외국인 가사 노동자는 출입을 거부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인종차별 당해도 인권위 제소뿐... 인종차별금지법 제정해야"

김대권 아시아의 친구들 사무국장은 "인종차별을 당해도 외국인들은 대개 그냥 참고 넘어간다"며 인종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김대권 아시아의 친구들 사무국장은 "인종차별을 당해도 외국인들은 대개 그냥 참고 넘어간다"며 인종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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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권 '아시아의친구들' 사무국장은 피해자 신분으로 경찰을 찾았다가 도리어 불법체류자 의심을 받은 보노짓 후세인씨의 사례와 관련해, "이런 일을 당할 경우에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는 방법 밖에 없다"며 답답함을 토했다.

김 사무국장은 "외국에서는 외국인 혐오를 공공연하게 선동한 이들 역시 인종차별금지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며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후세인씨의 경우, 공공연히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조그마한 일이 생기더라도 한국인에게 먼저 사과해야 할 것 같다, 자신감이 사라진다'고 말했다"며 "당시 후세인씨와 함께 시민단체 활동가가 있었기에 고발이 가능했지, 대개의 경우 외국인들은 인종차별을 당해도 참고 넘어간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지난 2007년 8월 한국에 대해 '단일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인종 차별적 행위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인종과 타 국가 출신에 대한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인종 차별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헌법에 명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태그:#인종차별,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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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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