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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린 벼 사이사이에 바늘 침처럼 수북하게 올라오고 있는 피를 뽑았습니다. 벼 포기 사이를 옮겨 다니며 맨발로 문대고 허리 꺾어 양손으로 한 움큼씩 뽑아냈습니다. 피가 좀더 커지면 벼와 구분을 못할 정도로 부쩍 자라 뽑아내기가 힘들 것이었습니다.

반도 채 뽑아내지 못했는데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흙발 씻겨 고무신을 탈탈 털고 있는데 중학교에 다니는 큰 놈이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교원평가제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 아들

"학교 재밌었냐?"
"별루, 뭐 그런 설문조사가 다 있어."

"다짜고짜 뭔디 그려 임마."
"오늘 컴퓨터실에서 교원평가 했는디, 선생님이 니들 그거 어떤 놈이 했는지 안 했는지 다 안다구 그러시더라구."

"그거 하고 싶으면 하고 그런 거 아녀."
"그것도 그렇지만, 자유롭게 평가해야 하는디 선생님이 감시한다는 거잖어. 누가 선생님을 나쁘게 평가해 놓으면 금방 안다는 소리잖어. 그리고 또 엄마 아빠들이 평가해야 할 것을 우리가 다 했다니께. 그런 거 뭐하루 해."

녀석이 다니는 학교는 교원평가제 시범학교라고 합니다. 선생님들을 평가해야 하는 교원평가제 자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계속해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또 7교시 수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했는데, 아, 말도 안 돼. 교원평가 할 때처럼 문항이 매우 만족, 만족, 보통, 불만, 매우 불만 이런 식였는디, 선생님이 불만, 매우 불만은 불러 주지도 않았어. 그냥 다 좋다고 해야 되는 거지 뭐. 나는 7교시 보충수업 받는 거 별룬데."

교원평가니 보충수업이니, MB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비교육적인 방침들이 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민주적이고 비교육적인 방법을 동원해 아이들에게 거짓과 위선을 강요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존경받아야 할 선생을 불만과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생각없이 장단 맞추는 선생님들. 이런 학교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학교는 날이 갈수록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학교를 '쌍팔년도 군대'로 만들려는 MB정부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시국선언이 전국 각계각층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6월 18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정진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전교조 회원들이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변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시국선언이 전국 각계각층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6월 18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정진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전교조 회원들이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변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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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희망은 있었습니다. MB정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1만 7천여 명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선생님들이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독선적인 국가운영을 바로잡아 아이들에게 민주사회의 참모습을 가르치고자 시국선언을 한 것입니다.

교과서에 담겨 있는 생명 평화 정의민주주의와 인권을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며 가르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은 우리 집 아이에게 무한경쟁 속에서 비민주적인 교육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죽이고 있는 학교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전교조는 살아 있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교조 간부 88명 해임과 정직, 시국선언에 참가한 1만 7천여 명의 교사 전원에 대한 징계 방침을 발표했고 사무실까지 압수 수색했습니다. 선생님들을 개 끌듯이 연행해 갔습니다. 선생님들의 입을 틀어막고 학교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입니다.

MB정부는 자신의 생각보다는 학교에서 하라면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학생들을 만들어 내는 그런 선생님들을 원했던 것입니다. MB정부의 교육방침에 대해서는 '쌍팔년도 군대'처럼 '불만' 조항은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보충수업에 관련된 설문조사에서 당했던 것처럼 무조건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을 선착순 한 명을 외치는, 무지막지한 조교로 만들어 학생들을 말 잘 듣는 훈련생으로 키워내는 군대조직과 같은 학교. 학교를 '까라면 까라'는 식의 '쌍팔년도 군대'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발상인 것이지요.

영어 A반이 싫다는 아들의 고민

매학기 마다 치뤄지는 시험.
▲ 시험 중인 아이들 매학기 마다 치뤄지는 시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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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선생님들이 끌려갈 무렵 학교에서 돌아온 우리 집 녀석이 또 다른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빠, 나 그냥 A반에 남을까?"
"뭘?"
"영어 A반 선생님이 그라는데 자신의 교육방침이 맘에 안 들면 옮겨도 된다고는 했는데..."
"그때 그 선생님? 영어 단어 시험 봐서 틀린 수만큼 때린다는."

녀석의 학교에서는 영어 성적에 따라 A.B.C 반으로 우열을 나눠 공부하는데 녀석은 상위권인 A반에 속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A반을 맡은 영어 선생님은 단어를 외우지 못하면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데 그게 자신 없으면 B반으로 옮겨도 상관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녀석은 이전에 그 영어 선생님의 매질에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망설여지는 모양입니다.

"에이, 그냥 A반으로 남을래."
"맞아가면서 공부 하겠다구?"
"아니, 그게 아니구. B반으로 옮기고 싶은데 옮기려는 애들이 한명도 없더라구."

녀석처럼 매질을 당하고 싶지 않아 다른 반으로 옮기고 싶은 친구들이 더러 있긴 한데 부모에게 혼줄이 나거나 영어 선생에게 미움을 받을까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맞을 각오까지 하면서 공부하믄 쓰것냐?"
"열심히 영어 단어 외워서 맞지 않으면 되지 뭐."
"그렇게 해도 되지만 그건 좀 그렇다, 맞지 않으려구 공부한다는 게 치사한 거 같지 않냐, 비민주적이지 않어? 니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문제지만 좀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교과서만 공부하면 고등학교에 갈 수 없다고 믿고 있어 학원에서 배우는 영어단어장을 외우게 한다는 영어 선생님. 아이들은  영어 단어를 못 외우면 그 선생님에게 얻어맞아야 하고 잘 외우면 초코파이를 얻어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도 1학년 때 그 선생님 한티 초코파이를 얻어먹었는데. 먹을 때 좀 치사하더라, 누구는 얻어맞고 누구는 초코파이 얻어 먹는 게."
"그래두 너 그거 얻어먹었잖어."
"아녀, 혼자 먹기가 치사한 거 같아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어."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잠시 깜박 잊고 있었던 녀석의 결정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결정했냐?"
"뭘?"
"그거 임마, 영어 수업."
"아 그거, 그냥 A반에서 공부하려다가 B반으로 옮겼어."
"그래? 대단한데! 너 혼자?"
"아니, B반으로 옮기고 싶었던 친구가 한 명 더 있었어."

그 친구는 녀석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험 성적으로 친구들과 경쟁하는 게 너무 슬프다. 자기가 성적이 오르면 다른 친구들의 성적이 떨어지니까 선의의 경쟁이라는 것은 없다"고 하더랍니다.

"너 전교조 선생님들이 시국선언한 거 알 지? 니들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려고 한 거."
"알어."
"그런 선생님들이 있으니께 든든하지?"
"그럼 든든하지."

'참교육을 위협하는 피'를 뽑는 사람들

녀석이 비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환경을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바른 양심으로 참교육을 실천하고자 해직되고 투옥까지 당해야 했던 전교조 선생님들이 일궈낸 성과이기도  합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MB정부의 막가파식 정책에 굴하지 않고 또다시 시국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선생님들이 나섰으니 이제 학부모들이 힘을 실어 줘야 할 때입니다. 그 힘은 결국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억수로 퍼부어 대던 장맛비도 주춤하니 논에 나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린 벼들의 숨통을 위협하며 끊임없이 솟아 올라오는 피를 뽑아야 줘야 합니다. 인간사 잡초들을 죄다 뽑아낼 수는 없듯이 피 역시 다 뽑아내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농약을 쳤더라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를 제거하는 농약을 치게 되면 어린 벼들 또한 그 농약에 오염됩니다. 그렇다고 피를 다 살려 둘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피가 너무 많아지면 어린 벼들이 올 곧게 자라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예년에 충분히 경험했듯이 시기를 놓쳐 피가 너무 커 버리면 벼와 구별하기도 힘듭니다. 뿌리를 깊이 내려 뽑아내기도 어렵습니다. 그 다음해는 그 피의 씨가 논에 떨어져 더 많은 피들이 생기게 됩니다.

적당히 뒤섞인 피는 벼와 공존할수 있지만 맥손 놓고 팽개쳐 놓게 되면 논은 온통 피 바다가 되고 벼는 쭉정이 투성이가 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세상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MB정부의 교육정책은 어린 벼들을 위협하는 피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저들의 비민주적이고 비인권적인 교육정책을 방관하게 되면 결국 우리 아이들을 겉은 멀쩡한데 속이 차지 않는 쭉쟁이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참교육을 위협하는 피'를 뽑아내겠노라 두 팔 걷어 붙인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그 어느때보다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태그:#전교조 시국선언, #우수반 거부, #보충수업, #교원평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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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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