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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뭐니뭐니해도 점심시간입니다. 시간표는 잘 보지 않아도 학교에서 나누어 준 식단표는 열심히 들여다 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는 날이면, 오전 내내 점심밥 언제 먹느냐고 성화를 합니다.

시계를 보면 금방 잘 알게 될 텐데도 물어보는 것은 점심 시간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점심시간이 기다려지기 때문입니다. 토요일에도 점심시간을 기다리다가 급식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실망을 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서로 먼저 먹으려고 실랑이를 벌입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가끔 4교시가 끝나기 전 '먼저 다 잘 한 사람은 먼저 점심 먹기!'를 내걸어서 점심 먹는 차례를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고 늑장을 부리는 과제 해결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점심시간 기다리는 아이들

아이들은 점심 시간을 좋아합니다. 점심 시간을 기다립니다.
▲ 즐거운 점심시간 아이들은 점심 시간을 좋아합니다. 점심 시간을 기다립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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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점심시간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기다리다가 식판에 음식을 받아서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밥 먹는 모습은 모두들 행복해 보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러한 행복한 모습 뒤에는 몇몇 아이와 부모의 걱정과 근심이 숨어있습니다.

현재 아이들 점심은 공짜가 아닙니다. 부모들이 낸 돈으로 먹습니다. 다달이 급식비를 통보하고 돈은 스쿨뱅킹으로 정해진 날짜에 자동 이체됩니다. 학년 초에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대부분 무료급식을 지원해 줍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급식비가 미납되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가정은 몇 달치가 밀려있기도 합니다. 행정실에서는 달마다 그 달치 급식비를 내지 않은  내용을 아이들 가정에 통보합니다. 가정에 통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나 가장 많이 하는 방법은 아이들에게 쪽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급식비를 안내서 쪽지를 보내는 가정을 살펴보면 급식비 낼 돈이 없어서 못낸 경우보다 스쿨뱅킹 이체 통장에 잔고가 부족한데, 부모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행정실에서 쪽지를 보내올 때마다 담임교사 입장에서는, 혹시 이 아이 집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살펴보게 됩니다. 잘 살던 집도 하루아침에 경제 사정이 나빠지는 일을 많이 봤기 때문이지요.

'급식비 미납 통보'가 아이들과 학부모에 미치는 영향

급식비를 안내면 달마다 아이들을 통해 가정으로 미납통보를 합니다. 아이들이 보지 않게 쪽지를 봉투에 넣어 풀로 붙여 보냅니다.
▲ 급식 미납 통보 쪽지 급식비를 안내면 달마다 아이들을 통해 가정으로 미납통보를 합니다. 아이들이 보지 않게 쪽지를 봉투에 넣어 풀로 붙여 보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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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에는 미납자 통보가 단지 급식비 안 낸 사실을 알릴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통보지만, 아이들이나 부모들은 매우 민감했습니다. 단지 미납통보를 받는 것만으로도 모르고 안 낸 부모들이나 못 낸 부모들이나 모두 자존심 상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알까 전전긍긍해 하는 모습도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학교 입장에서 보면 부모의 돈으로 운영되는 급식이니 미납자 통보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달마다 빠짐없이 일어납니다.

급식비를 내는 책임은 부모에게 있지만, 부모가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급식비를 못냈든 낼 돈이 없어서 못냈든 급식비를 내는 과정이 아이들에게는 그대로 상처가 됩니다. 해마다 학년 초에 가정통신문을 보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무료급식을 지원받고 싶은 가정에 대해 신청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단순하게 '무료로 먹여준다는데 형편이 어려우면 신청하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행정적인 일처리로 볼 때 당연한 이 절차가 부모 입장에서 보면 무료 신청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왜냐하면 무료급식 받기 위해서는 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신청서 속에 말하기 싫은 가정 형편을 다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청 요건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실제 가정형편을 교사에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저학년 아이들은 아직 잘 모르는데 고학년이 되면 아무리 숨긴다하더라도 누가 무료급식을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이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고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가 해줘야할 당연한 일인데도 무료급식을 받는 부모들과 아이들은 당당하지 못하고 의기소침해집니다.

급식, 단지 밥만 주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국가의 복지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수혜자와 시혜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교육한다하더라도 실제로 아이들 사이에서는 무료 급식하는 아이들을 분리하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무료급식을 하는 아이들은 아주 민감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부모들 사이에서도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많아서 오죽하면 어떤 부모는 '제 자식 밥도 못 먹이는 못난 부모' 소리 듣지 않으려고, 형편이 어려운데도 무료급식 신청을 하지 않고 급식비를 꼬박꼬박 낸다고 합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급식하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급식이란 단순히 아이들에게 밥만 먹이면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점심 밥 한 끼 속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과 교육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학교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학교 급식에 대해서 돈 있는 사람은 내고, 없는 사람만 도와주면 끝 아니냐고 간단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급식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형편이 어려운 가정 아이들을 무료로 먹여주는 급식도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만 생각하면 안 되고, 그 속에 부모와 아이들의 여린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학교에서 급식에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풀어가는 가장 쉽고도 빠른 방법은 무상급식입니다. 무상급식은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문제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무료급식 대상이 아닌 형편이 넉넉한 부모들 중에는 '그 돈 얼마나 된다고 공짜로 얻어 먹으려 하느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무상급식을 모두 해야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급식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고 '교육'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경기도의회 의원님들, 김상곤 교육감 공약이라 삭감한 건가요

좋은 예가 예전에 가정에서 학교에 내던 육성회비입니다. 그때는 나라 형편이 어려워서 더 그러기도 했겠지만, 육성회비를 걷는 과정에서 학교 안에서 교실 안에서 인권침해와 비교육적인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또래 어른들 중에서 학창시절에 육성회비와 관련된 상처를 받아 지금까지 안고 계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지난 경험으로 보면, 상처는 육성회비를 못낸 당자자만 받는 것이 아니고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모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앞으로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육성회비와 관련된 문제와 부작용 그리고 그에 따른 마음의 상처들은 육성회비를 없애면서 사라졌습니다. 지금 급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도 모두 무상급식을 실시하게 되면 대부분 바로 사라질 것들입니다. 

학교에서 급식비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올해 최초로 주민직선으로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공약 사항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해서 저는 '맞다! 바로 이거다!' 하면서 박수치며 찬성하고 무척 기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경기도 교육위와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가 무상급식을 위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액 삭감'이라면 '무상급식'은 이제 물 건너 간 것이 되고 만 것이지요.

'전액 삭감'한 이유를 들어보니 '왜 돈 있는 사람까지 무료로 밥을 먹여 주느냐'면서 그동안 무료급식을 신청했는데도 받지 못했던 '차상위 계층'까지 무료급식을 '확대'하겠다고 했다는군요. 이것은 삭감에 표를 던진 경기도 교육위원들과 경기도 의회의원들이 학교 급식을 '교육'이 아닌 돈을 치르고 먹는 한 끼 식사로만 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료급식을 차상위 계층까지 확대한다고 해서 급식에 관련된 문제가 절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늘어난 무료급식 대상자만큼 상처받는 사람들 수도 늘어나고, 세상에 더 잘 드러나게 되겠지요.     

무상급식은 김상곤 교육감의 공약 사항이기 때문에 해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해온 학교 급식 상황을 보건대, 이제는 김상곤 교육감이 아닌 그 누구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경기도 교육위와 의회의 '무상급식 예산삭감 결정'이 평소 생각이 다른 쪽 사람인 김상곤 교육감의 공약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삭감 이유에 학교 교육과 급식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철학이 송두리째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학교 교육으로서 무상 급식은 당연한 일이고 늦었지만 하루빨리 이뤄져야 합니다. 의무교육을 법으로 내세우고 있으면서 그동안 학교에서 교육으로 실시하고 하고 있는 급식, 현장체험학습, 수련회 같은 것을 학부모 돈을 받고 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태그:#학교급식, #무상급식, #무상교육,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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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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