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다급한 아들의 목소리에 이어서 "더 통화를 원하시면 아무 숫자나 누르라"는 안내 문구가 수화기에서 들려온다. 학교에 있는 아들이다. 오늘도 학교에서 '콜렉트 콜(수신자 부담)' 전화를 걸어 엄마에게 스티커 모음판을 꼭꼭 챙겨놓으라는 당부를 한다.
한 달에 한두 번쯤 이런 전화를 받는다. 아직 휴대폰이 없는 4학년 아들은 한 층에 두 대씩 설치되어 있는 전화로 이렇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제 딴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엄마에게 전한다.
아들에게 휴대폰 사주지 않는 이유실은 지난해부터 조금씩 아들은 휴대폰 사달라는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휴대폰 관리를 제대로 못할 게 뻔하다며 미루다가 4학년 생일에 사준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아들은 이번 생일에 휴대폰 선물을 받지 못했다. 언제든 연락할 수 있다는 편리함에 안전을 위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의 놀라운 중독성(?)과 전자파 등 각종 해악 때문에 엄마는 주저할 수밖에 없다.
친구들이 휴대폰 없는 자신을 놀린다며 아들이 은근히 압박하지만 엄마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가능하면 버텨보자는 생각이다. 심심하면 엄마의 휴대폰을 가져다가 미니게임에 열중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휴대폰을 사주는 그날은 점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물건을 잘 챙길 수 있을 때,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절제할 수 있을 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을 나이에...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결국 이런 의문이 생긴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휴대폰이 왜 필요하지?
사실 휴대폰 구입의 결정적 계기는 엄마의 필요에서 의해서일 경우가 많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학교 다니는 것 외에 공부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면서 많은 아이들이 휴대폰을 소지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온갖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아이들의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여자아이들의 절반 정도가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더니 4학년인 지금은 반 아이들 거의 대부분이 휴대폰을 쓴다.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휴대폰으로 엄마에게 시험성적을 보고하며 울고 짜는 아이들도 꽤 볼 수 있다.
방과 후 학원 순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라면 엄마와 얼굴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휴대폰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을 것도 같다. 휴대폰으로 엄마에게 전화해서 "엄마, 나 배 아픈데 화장실 가도 돼?"라고 묻는 아이도 있단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고 반성하는, 자율성 교육은 좋은 대학을 들어가는 것이 지상과제인 사회 분위기 탓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부모의 과보호와 간섭, 학과공부 중심의 교육과정, 무서운 사교육 열풍은 결국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 만들기로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휴대폰은 이런 '자동인형' 생산과정에 일부분을 담당하는 중이다.
학교 교육 취약성 그대로 드러낸 '휴대폰 사용 금지 조례'서울시의회에서 초·중·고등학생들의 교내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조례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은 우리 교육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공표와 달리 실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정책은 계속 뒷걸음질이다. 창의력의 원천인 자발성과 자율성을 키워야 할 학교에 아이들의 능력을 일률적으로 자로 재는 시험만 늘고 다양한 규칙과 간섭도 많아졌다.
분명 수업 중 휴대폰 사용은 금지해야 한다. 그것은 수업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나 아닌 다른 학생들이 좋은 수업을 들을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나이라면, 영화관에서처럼 수업 중엔 휴대폰을 꺼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모를 리 없다. 몰라서 못 지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잘못에 대한 인식과 반성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지키지 않는다.
조례제정을 통해 휴대폰 소지를 금지하거나, 등교와 함께 휴대폰을 수거함으로써 학교 수업을 지키겠다는 취지는 이해하고 공감하나, 늘 그렇듯 방법과 실천이 문제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공감대 아래에서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진다면, 아이들의 자율성을 키우는 데에도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하지만 그와 달리 강제적인 억압과 규제, 감시 그리고 처벌이 자발적 참여보다 우선된다면 휴대폰으로부터 자유로운 학교 대신, 학교와 학생 사이의 불신을 키우고 규제를 교묘히 회피하는 방법 등을 양산하는 부작용만 낳을지도 모른다.
조례제정이 시급할 정도로 교내 휴대폰 사용이 심각한 문제인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조례제정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한 오산이다. 먼저 학교는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올바른 휴대폰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가정에선 휴대폰을 사주기 전에 휴대폰이 꼭 필요한지, 휴대폰 사용에 따라 지켜야 할 공중도덕은 무엇인지 등을 아이와 충분히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통신회사 또한 기업의 이윤추구보다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 학생들의 바람직한 휴대폰 사용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노력이 함께 이루어질 때만이 조례제정이 실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휴대폰을 수거하는 선생님들. 휴대폰이 있나 없나 수시로 소지품 검사를 실시하는 교실. 휴대폰 금지에 이어, 디지털 카메라 금지, MP3 플레이어 금지, 닌텐도 금지 등의 규칙이 줄줄이 제정되는 학교. 조례제정 소식에 차례로 떠오른 이런 장면들이 아무쪼록 지나친 나의 상상이길 바라며, 학교에서 아들이 돌아오면 어제 다 못 끝낸, 자신의 시간과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중히 하자는 주제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눠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