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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던진 '개헌 카드'가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 의장은 이날 제헌절 기념식에서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하고, 내년 6월 지방선거 전 국민투표까지 모두 마친다는 '개헌 일정표'를 제시했다. 자신의 임기 중 개헌을 끝내고 싶다는 뜻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싸늘하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일제히 "지금 무슨 개헌논의냐"며 반발하고 있다.

 

물론 야당도 헌법 개정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 소속 몇몇 의원들은 '국회미래한국헌법연구회'를 만들어 월요 세미나를 여는 등 꾸준히 개헌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야당은 김 의장이 하필 미디어법 등 여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개헌 카드를 꺼내 든 배경을 석연찮게 생각하고 있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포석 아니냐"

 

우선 이번 개헌론은 정부-여당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아니냐는 것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야4당 대표 회동에서 "지금은 개헌 논의를 본격화할 시기가 아니라 국회를 정상화하고 지도력을 먼저 확보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면전환용이든 개인 관심사든 다른 문제(개헌)로 현안 문제(미디어법 여야 대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도 16일 열린 한 토론회에서 "개헌 논의는 정치권의 유불리 차원이 아니라 국민이 희망과 미래를 찾아가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김 의장의 개헌론이 결국 미디어법을 강행처리 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국민의 눈이 '개헌'에 집중돼 있을 때 날치기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헌 논의를 시작하려면, 미디어법 합의처리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김 의장이 미디어악법을 직권상정해 날치기 처리하는 데 앞장선다면 그토록 소망했던 개헌은 물 건너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김 의장이 미디어법 합의 처리를 유도하고, 난국을 돌파한다면 비로소 개헌 정국이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헌 블랙홀' 정권 재창출 도구로 쓰일 수도"

 

야당은 또 개헌이 '정권연장용'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려하고 있다.

 

김 의장이 내세운 '일정표'에 따르면, 올해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는 모두 '개헌'이라는 이슈에 묻힐 수 밖에 없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도 개헌론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야당은 노 전 대통령 서거와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낙마 등으로 위기에 몰린 이명박 정권이 개헌을 내세워 올해 10월과 내년 6월 선거를 무사히 넘기기를 기대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이명박 정권에 유리한 개헌을 통해 정권재창출도 노려볼 만하다는 것이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16일 토론회에서 "수구보수가 압도적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 개헌을 통해 새롭게 탄생할 헌정질서는 개선보다는 개악이 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대통령 4년 중임제'는 한나라당에 정권을 8년 맡기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김 의장이 제안한 개헌 일정은 야당으로선 절대 받을 수 없는 안"이라며 "올해 10월, 내년 6월 선거를 유리하게 끌려는 한나라당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금 개헌론이 제기되더라도, 내년 6월 이후에나 논의를 시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헌법정신 지키는 호헌 필요" 

 

무엇보다 야당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개헌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광우병 촛불시위 탄압, 미네르바 수사, 용산 강제 진압, PD수첩 수사로 이어지는 '공안 철학'이 개헌을 빌미로 헌법에 독소조항을 남길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 때문에 나온 발언이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호헌론'이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와는 다른 의미로, 말그대로 "헌법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노 대표는 이날 오전 야4당 대표 회동에서 "지금은 헌법 때문이 아니라 헌법 정신을 지키지 않아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개헌론을 비판했다. 그는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하려는 것 자체가 헌법정신을 심각하게 위배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개헌이 아니라 헌법정신을 지키는 호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승수 의원도 "국회에 필요한 것은 개헌 특위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헌법유린조사특위"라고 꼬집었다.

 

한편 대법관 출신 이회창 대표는 제헌절 기념 성명서에서 '개헌론'에 동의하면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국가구조개혁,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그:#김형오, #개헌, #개헌론, #야당, #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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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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