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늘 봐오던 것이 한순간에 없어지거나 망가져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제 기억이 떠오르는 5살 이후부터 늘 봐오던 풍경이 있습니다. 시골 저희집 대문 바로 앞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던 자두나무입니다. 알이 굵직하고 무척 달콤한 녀석이죠.
자두나무 아래에는 평상마루가 있어 녀석을 그늘삼아 쉬기도 하고 여름에 그곳에 앉아 수박을 잘라 먹기도 했지요. 30년 넘게 늘 저와 함께 했던 앞마당 자두나무.
간혹 20여년전 마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그 자두나무가 무척 작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옛 사진을 보면서 "아, 자두나무가 엄청 많이 자랐구나." 새삼 느낄 수 있었죠.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것이죠.
그런데 이 녀석의 운명은 질기기도 합니다. 20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완전히 부수고 그 자리에 새 집을 지었는데요. 이 와중에도 자두나무는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 것입니다. 집 짓는 복잡한 과정에도 녀석을 보호했던 겁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굵직한 자두가 엄청 열려 지나는 사람들이 몇 알씩 따먹기도 하고 형제들에게 박스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해는 너무 많이 열려 가지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우리 식구들과 평생을 함께 살아오고 있는 상징물 혹은 고향집의 수호신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그런데 녀석이 나이를 많이 먹긴 했나 봅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나무껍질이 까져 맨질하게 된 부분도 있고 힘껏 지탱하던 뿌리도 이제 힘이 없나봅니다. 이번 비에 녀석이 거의 누워버렸습니다. 30년 세월을 저와 함께 꿋꿋하게 지켜온 녀석인데 이번 비바람에 그대로 누워버리다니...
지난 목요일 낮에 한달음에 달려 고향집에 다녀왔습니다. 처참한 모습 그대로더군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나무든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갈빗대 하나가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래된 자두나무 비바람에 쓰러졌다'가 아닌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을 잃었다'라고 표현해야할까요? 심정이 그렇습니다.
넘어진 상태로 봐서는 뿌리가 크게 흔들린 것 같습니다. 녀석을 일으켜 세우면 과연 소생할 수 있을까요? 트랙터로 끌어당겨 세운다는 계획은 있는데 녀석의 운명은 어찌될지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내년부터는 이맘 때 저 굵직한 자두를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먹고 안 먹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골집의 상징이자 수호신 같은 존재인데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결같이 30년 넘게 늘 그 자리에 서서 시골 집을 지켜온 수호신 같은 존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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