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최초의 왕도 터, 지금은 부러진 몇 개의 기둥만이 황량한 벌판에 쓸쓸하게 서있었다.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최초의 왕도 터, 지금은 부러진 몇 개의 기둥만이 황량한 벌판에 쓸쓸하게 서있었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아침에 쉬라즈에 도착해서 바로 일행들과 함께 차를 대절해서 페르시아 초대 왕 고레스 왕의 유적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파사르가대라는 지역인데 이곳은 아케메네스 왕조 최초의 수도로 많은 유적지가 산재해 있습니다.  또한 파사르가대의  고레스 왕과 관련된 유적들은 2004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파사르가대는 쉬라즈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곳으로 가는 길은 민둥산뿐이었습니다. 풀 한 포기 키울 것 같지 않은 메마른 땅이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가는 동안 간간이 황토 빛 집들도 보였습니다.

붉은 흙 바람이 풀풀 날리는 길을 1시간 30분 정도 달리니까 차가 벌판 한가운데 섰습니다. 고레스가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의 첫 왕도 터라고 했습니다. 황량한 들판에 부러진 돌기둥이 몇 개 서있을 뿐이었습니다. 이곳이 제국의 터전이었다고 하니까 그러려니 하지 그냥 지나간다 해도 그 누구도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고대 왕궁다운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으로 궁이 파괴된 후 2500년 동안 방치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벌판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이  쌩하고 지나갔습니다. 죽은 땅에서 잠시 삶의 허망함을 느꼈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언젠가는 사라진다고.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황량한 들판에서 부러진 돌기둥 몇 개를 보려니까 정말 가슴이 묵직하게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레스 왕의 무덤. 6층으로 된 석묘다.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을 받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건 고레스왕이 권력의 무상함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일화가 전한다.
 고레스 왕의 무덤. 6층으로 된 석묘다.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을 받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건 고레스왕이 권력의 무상함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일화가 전한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다음으로 찾은 고레스왕의 무덤은 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고레스 왕은 이란에서는 '아버지'로 호칭될 만큼 존경받는 군주라고 합니다. 좀 전에 본 왕궁 터처럼 벌판 한가운데 있지만 왕의 무덤은 잘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입구에서는 300 토만 하는 입장료를 받고 있고 무덤을 관리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무덤 앞 공터에는 관광버스도 몇 대 서있습니다. 이란 단체관광객들이 가이드에게서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있는 가운데, 방송국 카메라들 들고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무덤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돌을 쌓아 만든 석묘입니다. 다른 관광지에서와 달리 꽤나 진지하게 설명하고 또 그걸 듣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덤의 주인이 궁금했습니다. 누구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난리일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란의 영광인 페르시아 대제국의 초대왕이니 그것만으로도 존경할만한 가치는 있지만 길 대장에게서 고레스 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나자 우리에게도 그런 군주가 있다면 후손으로서 충분히 존경하고 자랑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사에 무외한인 난 고레스왕에 대해서 처음 들었지만 그는 참 대단한 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세계 최초의 제국인 아케메네스왕조의 기틀을 다진 인물입니다. 고레스 왕은 지금의 터키 지역인 리디아 왕국뿐만 아니라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바벨론까지 점령하고 페르시아를 비로소 세계를 통치하는 나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몽골에서 칭기즈칸의 영향력이 아직까지도 막강한 것처럼 이란인들은 고레스를 '아버지'라고 칭하면서 아직까지도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서 놀라운 건 이란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그에 대한 평가입니다. 현재 이란과는 라이벌 관계라고 해도 다름없는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고레스왕에 한해서는 매우 관대한 표현을 쓴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고레스를 '해방자'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하고 70여 년간 그곳에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해방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내면서 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독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레스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은 페르시아제국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이름이 올라있는 왕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이란으로도 성지순례를 가는데 그 코스에 고레스왕의 무덤이 포함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찾은 나크쉐로스탐. 높은 절벽에 만들어진 4 개의 무덤.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조와 후대 사산조 페르시아의 위대한 왕들의 묘라고 한다.
 다음으로 찾은 나크쉐로스탐. 높은 절벽에 만들어진 4 개의 무덤.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조와 후대 사산조 페르시아의 위대한 왕들의 묘라고 한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고레스가 한낱 정복자로서 평가받지 않고 자국 뿐 아니라 이방 민족에게서도 이상적인 군주로 대접받는 이유를 알렉산더 대왕과의 일화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침공을 받고 무덤이 소멸 위기에 놓였는데 그때 무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고레스가 죽기 전 남긴 비문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 고레스는 한때 세계를 지배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이 다른 왕에 의해서 점령될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점령자여, 그대도 언젠가는 누구에겐가 점령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묘를 건드리지 말아 주시오."

그래서 알렉산더는 무덤을 파헤치러 왔다가 오히려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고레스의 묘에 덮어주었다고 합니다.

역시 왕의 그릇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릇의 크기가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력의 무상함을 일찌감치 깨달은 고레스도 훌륭하고, 그 말을 넒은 가슴으로 받아들일 줄 안 알렉산더도 참 훌륭합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이라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권력의 무상함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권력을 가진 자가 이 사실을 안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영원한 걸로 착각해 절대로 놓지 않으려는 게 권력자의 일반적인 속성입니다. 그런 이유로 고레스를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권력의 무상함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마약보다 끊기 어렵다는 권력욕에서 벗어난 사람이었으니 분명 범상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상함을 아는 사람은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자유롭고 그래서 오히려 권력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상적인 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 여행은 좋았습니다. 페르시아제국의 초대 왕이 그냥 땅덩어리 넓히는 데만 정신이 팔린 그런 사람이 아닌 이방인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할 줄 알고,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을 발표할 정도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은 뛰어난 지도자고, 또한 권력의 무상함을 일찍 깨달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이유로 행복한 방문이었습니다.


태그:#파사르가대, #아케메네스왕조, #고레스왕, #쉬라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