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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의 에세이를 보다보면 대부분 유명인들은 일반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그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일용엄니'로 잘 알려진 배우 김수미의 인생도 순탄한 삶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하지 그지없었던 삶이라는 것을 그녀의 에세이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면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땅 부잣집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의 이야기. 언뜻 봤을 때, 부잣집 딸내미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가 이야기하는 집안 환경이라든지, 책 속에서 드러나는 여러 사건들은 절대 우리가 상상하는 부잣집 딸내미가 아니었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수진이가 오줌 마렵다고 해서 우리 집 변소에 데려갔다. 변소는 큰 드럼통 위에 널빤지 두 개 올려놓은 것으로, 파리가 들끓었다. 수진이를 앉혀왔더니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게 극기 훈련을 시켜 놓고 앉아 있는데. 뜨악! 우리 아부지가 똥지게를 지고 다가오고 계신 것 아닌가." (33쪽)

 

이렇듯 그녀의 아버지는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5남매를 키워내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막내딸이었던 저자를 가장 아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는 수미만큼은 서울에서 공부시켜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녀를 서울에 보내 공부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충분히 넉넉하지는 못한 살림을 딸자식 뒷바라지에 쏟아 부었던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렇게 서울로 보내 공부시켜야 할 생각이 들 정도로 어린 시절 그녀는 똑 부러진 성격과 어디 가서 한 가닥할 '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천성은 서울로 올라가서 적응이 힘들었을 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연기자 생활에 위기가 닥쳤을 때 그녀를 우뚝 세울 만큼 강력한 힘으로 발현되었다.

 

"내 스스로 촌년, 전라도 개똥새라고 인정하고 나니 별 것 아니었다. 오기와 배짱이 생겼다. 그 전에는 학교 가는 것이 소 도살장 가는 것처럼 겁나고 싫었지만, 아부지 전보를 받고 생각이 달라졌다." (58쪽)

 

"갓 데뷔해 혼나고 창피할 때도 언젠가 내 시대가 있을 거라는 믿음. 극 중 이상한 내 모습에 굴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열악한 환경과 위기에서 강했고, 오기가 있고 매사 긍정적이었다." (103쪽)

 

그녀의 연기자 생활의 최대 위기 중 하나였다던 '빙의' 사건은 책을 읽고 난 지금에서도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다. 정말 그녀의 시어머니가 이승을 떠나지 못한 채 그녀에게 들러붙었던 것일까? 묘심화라는 사람이 정말로 있는지 검색해보았더니 빙의에 관련한 저서까지 내신 분이었다. 아무튼 미스터리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그녀는 현재 어느 정도의 위기를 벗어나서 그녀의 생애 최대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인맥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힘든 일 있어 삐걱거리거나 배고프면 사정없이 연락하라고 소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힘들고 바쁘면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니던가? 그녀는 이제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초월한 것이었다.

 

정혜선, 김혜자, 송대관, 조용필, 유인촌, 황신혜, 이용식, 심형래, 김원희, 유재석, 최양락, 신현준. 이 이름은 그녀가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동료 연예인들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들과의 인연을 감칠맛 나게 풀어낸다. 그들이 가진 장점과 함께…….

 

그중에서도 나는 열정적으로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김혜자의 이야기, 유명해졌다고 거만해지지 않고 한결같이 자기 자신을 낮추는 유재석의 이야기, 그리고 진심을 담아 선배에게 깍듯한 예의를 차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신현준의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본다면 성공한 사람은 저 혼자 잘나서는 절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그녀 주위의 사람들을 매개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힌트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그가 남긴 이야기에서 쇳대를 따고 그 내용물을 흡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독자들 개개인의 몫으로 남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녀 인맥들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서 즉, 소원해진 관계나 친해지고 싶은 이들에게 사정없이 연락하라는 내용의 글들을 통해 저자의 의도가 너무 빤하게 드러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마 독자들이 인맥을 자랑하는 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품든지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독자인 우리들에게 미안했는지 마지막에 그녀가 60년 인생살이에서 체득한 성공의 비법들을 풀어놓는다. 그녀는 인생의 절반을 사람들과 부대끼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았고 꾸준히 탐구하여 우리들에게 보여준 인간학 박사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비법이 도대체 뭘까?'라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성공의 화두는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시간, 예의,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항상 오 분 전까지 약속장소에 도착했고, 한번 했던 약속은 목에 칼이 와도 지켜냈다고 했다. 폭설이 쏟아지는 겨울의 아침에도, 비행기가 끊길 위기에 있는 그 상황에서도 그녀는 상대와의 약속을 지켜냈고 기어코 약속장소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별로 내세울 것도 없었던 그녀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배우든 사업가든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시간 약속이 항상 '오 분 전'이다. 그 분야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 꼭 늦는다. 그야말로 성격이다. 타고나지야 않았겠지만 한두 번 해본 것이 고약한 습성으로 굳어진 것이리라." (237쪽)

 

그리고 그녀는 인간이라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고로 남을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치고 성공한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험담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자신에게 그 험담과 더불어 더 커다란 비극이 다가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그리고 누군가 험담을 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을 말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녀는 조금 유명해졌다고 우쭐대는 것을 경계한다. 사람은 항상 한결같아야 하며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돈에 관련하여 접근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왕래하다가 사기행각을 벌였던 K씨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들에게도 그러한 사람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을 눈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그녀의 성공법칙은 몇 가지 더 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이 여느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생략한다. 그녀가 마지막 저서를 위해 꽁꽁 그 비법을 숨겨둔 것인지, 아니면 인생에 있어서 비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이 책을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극 초반에는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모님의 그리움을 고이 간직한 한 소녀의 이야기가 그려진 성장 소설이 담겨있었으며, 극 중반에 가서는 훈훈한 사람들과의 사건들을 하나씩 써내면서 우리들에게 그 답을 찾게 하는 사기열전에 비유할 만한 '수미열전'이 담겨있었고, 극 종반은 아예 대놓고 우리들에게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큰 인생 선배의 자기계발서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이외수님은 이 책 더러 '영혼의 십전대보탕'이라 했다. 나는 왜 십전대보탕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궁금했지만 책을 놓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 과연 그렇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십전대보탕'에는 '수미열전'도 담겨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김수미 지음, 샘터사(2009)


태그:#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김수미 , #샘터,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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