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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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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나를 장소로 데리고 간다."

로드무비의 대가 짐 자무시의 말이다. 음악은 장소를 떠올리게 하고,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멜로디와 가사와 목소리, 리듬과 음계와 화음으로 빚어지는 심상은 무색무취로 다가와 우리의 심장을 움켜잡는다.

여행의 미학이 재현불가능성에서 비롯되는 허무와 소멸에 있다고 한다면, 음악의 미학은 퇴색되지 않는 감정의 복제와 생성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음악은 지나간 시간을 재생시키고, 내가 가본 적도 없는 곳을 '추억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노래'란?

300년여의 식민지 지배 후 결국 그들은 고유의 문화를 잃어버렸다. 언어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쓰고, 모두 가톨릭 신자가 되었으며, 인종은 원주민인 인디오와 유럽에서 온 다양한 백인들과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이 섞이고 다시 섞여 조상을 구분하는 것조차도 난해하게 되었다. 인종이 섞이며 문화도 섞였다. 무심한 이방인의 시각으로 볼 때 그들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독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문화가 지배적인 문화로 남은 이유를 잠시 거칠게나마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을 주도한 세력은 '크리오요(라틴아메리카에서 출생한 백인들)'였고, 그들은 식민지 독립에 주력하였을 뿐 원주민인 인디오의 독립에는 관심이 없었다.

라틴아메리카 독립의 영웅이자 크리오요였던 '볼리바르'는 하나 된 라틴아메리카를 꿈꾸었지만, 각국은 독립과 함께 크리오요의 주도로 각자의 국가를 재건하였다. 그 결과 정치경제적으로는 유럽의 종속에서 벗어났지만, 문화적으로는 독립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300년이란 시간과 압도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고유의 문화가 사멸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주요나라들을 대략 떠올려 보자.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칠레, 페루, 에콰도르,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그리고 멕시코,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파나마, 과테말라, 카리브의 쿠바, 자메이카, 푸에르토리코... 

일반적으로 우리가 그들을 구별하는 기준은 피상적이다. 그저 더 잘 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 더 유럽적인 나라와 덜 유럽적인 나라, 안데스를 끼고 있는 나라와 카리브 해를 끼고 있는 나라, 미인이 많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약간의 정치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좌파 정권이 들어선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정도이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 음악 순례기인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는 소중하다. 비록 중미를 제외한 남미 지역만을 순례하고 있고, 시기는 1960년대를 전후한 혁명기의 음악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이 책을 빛나게 한다. 이 시기의 노래야말로 그들의 전통음악을 새롭게 계승한 음악이었고, 이 음악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민중은 그들의 정체성을 자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래로써 각자의 영혼을 표현했고, 함께 부르는 노래를 통해 동질적인 영혼을 발견했다.

그 주역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자. 아르헨티나 팜파의 음유시인 '아타왈파 유팡키'와 민중의 어머니 '메르세데스 소사', 볼리비아 안데스 음악의 거두 '에르네스토 카부르', 칠레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의 대모 '비올레타 파라', 노동하는 기타 '빅토르 하라',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른 각국의 후계자들인 '찰리 가르시아', '인티 이이마니', '킬라파윤', '미키 테오도라 키스'...

이름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해도 상관없다. 모든 이유를 떠나 이 책에 소개 된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만일 여행기중독자가 라틴아메리카로 떠난다면 이 책은 꼭 가져가야 할 물건 목록의 첫 번째 물건이 될 것이다.

바람의 노래

작가의 여정은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시작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식민지시대 라틴아메리카의 관문이었다. 남미대륙에서 수탈한 자원들은 라플라타강을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모인 다음 유럽행 상선에 실려졌다. 유럽 사람들은 이곳을 남미의 파리로 만들고자 했다. 1920년대에는 '잠들지 않는 거리'라고, 지금은 '남미의 브로드웨이'라고 불리는 '코리엔테스가'와 100년 전 파리의 거리를 그대로 본 따 조성한 거리인 '5월 가'(아베니다 데 마요)에는 탱고가 넘쳐흐른다.

언젠가 여행기중독자가 그곳에 간다면 그 화려함을 예찬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의 노래("부에노스 아이레스, 너를 다시 보는 날, 더 이상의 고통과 망각이 없으리")를 들어도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 것 같다. 그곳의 낭만은 남미의 자랑임과 동시에 식민지 시절의 짙은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얄팍한 지식을 앞세워 낭만을 난도질하는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결코 그곳에서 탱고에 취해 흥청거릴 수 없을 것이다. 

여행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수많은 탱고의 별들을 만나고 난 다음, 얄팍한 여행기중독자를 숙연한 감동으로 빠뜨리기 시작한다. 팜파의 현신이라 불리는 '아타왈파 유팡키'(1908-1992)는 그 감동의 시작이자 정수이다.

"내가 세상에 물으면
세상은 나를 속이겠지.
저마다 자신은 변하지 않는데
다른 이들만 변한다고 믿지...
밤은 왜 이리 긴지
기타야, 말해다오! - '기타야 말해다오'의 가사 중에서"

유팡키는 말했다. "팜파의 대자연이 일구어 낸 나라에 살면서 바람소리가 노래에 배어있지 않은 것은 한 번도 대자연을 고즈넉하게 관조하지 못한 증거"라고, "자신이 딴 박사학위는 고독"이라고. 그와 함께라면 적막함에서도, 바람 소리에서도, 달빛에서도 팜파스 평원과 안데스 고원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유팡키의 노래 가사들과 그가 남긴 말들, 그의 자취들을 감동적으로 펼쳐놓는다. 그리하여 여행기중독자가 아르헨티나에서 꼭 가봐야 할 곳 1순위는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니라 '투쿠만'이 된다.

투쿠만.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붕대감은 다리로 쓰러지고 또 쓰러지며 최후의 여정을 펼치던 그곳 (마르코의 엄마는 투크만 인근의 샐리릴로강 기슭의 사탕수수 농장의 식모였다), 음악으로 민중을 감싸 안았던 여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고향, 청년 유팡키가 안데스의 달을 노래했던 그 곳.

" 내가 달에게 노래하는 것은
빛을 비추기 때문만은 아니야.
내 기나긴 여정을 알기에
노래하는 것이지...
우리는 닮은 데가 있지.
고독의 달이여.
나는 걷고 노래하며
빛을 발한다네.  - '투쿠만의 달'의 가사 중에서 "

1960년대 아르헨티나의 가수들은 정권에 의해 추방당했고, 세계 각지를 돌며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계기로 메르세데스 소사나 아타왈파 유팡키는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들의 노래는 이방인들이 모르고 있던 라틴아메리카의 정신과 영혼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그들의 귀국 공연은 영원히 잊지 못할 라틴아메리카 전민중의 축제가 되었다.

67년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체포되어 처형당했을 때 유팡키는 노래로 그를 추모했다. 정치를 직접적으로 노래에 담지 않던 그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도대체, 언뜻 보면 탤런트 김동현과 비슷한 투박한 인상의 이 양반 어디에 이런 감수성이 숨어 있는 것일까?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기만 하다.

" 다시 태어나려고
죽는 사람이 있지.
믿지 못하겠으면
체에게 물어보라. - '단지 그뿐'의 가사 중에서 "

혁명의 노래

식민의 잔재와 독재 속에서 살아야 했던 남미 민중에게 59년 쿠바혁명의 성공이 미친 파장은 컸다. 그리하여 가수들은 노래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였다. 아르헨티나의 '누에보 칸시오네로', '칠레의 누에바 칸시온', 쿠바의 '누에바 트로바'는 모두 '새로운 노래'라는 의미이다. 모두 자국의 민속음악을 다시 채집하여 거기에 오늘의 아픔과 염원을 담아 낸 노래를 추구했다.

새로운 노래의 물결은 칠레에서 가장 강력하게 폭발했다. 산티아고에서 만나는 '비올레타 파라'가 그 시작이다. 그녀는 서른다섯의 나이에 열정적으로 칠레의 민속음악 채집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든 노래들은 제목만으로도 짙은 서정성과 결연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생에 감사해', '열일곱 살로 돌아간다는 것은', '룬룬은 북쪽으로 가버렸네', 모두 누에바 칸시온의 정수이다.

"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웃음도 주고 울음도 주니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 재료인
즐거움과 고통을 구분할 수 있네.
당신들의 노래가 바로 나의 노래이고
모든이의 노래가 바로 나의 노래라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 '생에 감사해'의 가사 중에서 "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삭막해진 가슴에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으며, 영원할 것 같은 침묵을 깨뜨렸다. 그녀의 뒤를 이은 '빅토르 하라', '킬라파윤', '인티 이이마니'는 거리로 나섰다. 결국 민중연합의 '살바도르 아옌더'는 선거에서 승리했고. 그들은 광장에 모여 '우리 승리하리라(벤세레모스)'를 합창했다.

저자는 산티아고 중앙광장 아옌더의 동상 앞에서 그들의 희망이 참담하게 무너지던 날을 회상한다. 73년 9월 11일. 칠레의 군부는 자국의 대통령궁을 비행기로 폭격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옌더 대통령은 '내 목숨으로 민중의 충성에 보답하겠노라'고 선언하고는 피신을 거부한 채 대통령궁에서 생을 마쳤다.

'선언문' '너를 기억해 아만다'로 유명한 노동하는 기타 '빅토르 하라'는 칠레 스타디움에 수용되었고, 참혹한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채 피가 마르지도 않은 몰골로 연필을 잡고 마지막 노래를 썼다. '칠레 스타디움', 그 노래는 국립 운동장 안에서 입에서 입으로 번져 나갔고, 그는 며칠 후 산티아고 교외에 싸늘한 시체로 버려졌다.

" 우리들 중 여섯이
별나라로 사라졌지.
한 명이 죽고, 한 명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맞았지.
한 인간을 그렇게 때리는 것이 가능할까?...
신이시여! 이곳이 당신이 만든 세상입니까! - '칠레 스타디움'의 가사 중에서 "

여행은 빅토르 하라의 집과 그의 미망인과 그의 무덤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누에바 칸치온의 정치적, 예술적 버팀목이 되어주던 네루다의 자취를 찾다가고, 네루다의 시를 노래한 그리스 가수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를 떠올린다. 그는 네루다의 '모두의 노래', '나는 살리라'를 노래로 만들어 남미 전역을 순회했었다. 그리고 네루다의 죽음을 추모하며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 무대에 올라 '네루다를 위한 레퀴엠'을 불렀다.

책을 덮고, 명반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르는 아타왈파 유팡키 (1977)>를 듣는다. 멀게만 느껴지던 남미 대륙이, 그곳의 바람과 영혼이 밀려온다. 장맛비 사이로 노래가 바람이 된다. 바람이 불고, 또 바람이 분다. 천개의 바람이 분다. 그곳의 바람과 여기의 바람이 하나가 된다. 그리고 책을 책꽂이에 꽂으며 속삭인다. 언젠가 우리는 함께 그곳으로 가게 될 거라고. 그때까지 샛별 같은 눈동자로 살아남으리라고.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 라틴아메리카 문화기행

우석균 지음, 해나무(2005)


태그:#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우석균, #해나무, #음악순례, #라틴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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