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자리, 삼각빤쓰, 엉덩이 쉼터, 운수대통, 오후의 햇살, 자유부인, 춤추는 역마살, 핑계 없는 의자, 변기 속 맑은 물, 똥꼬의 불침, 혹시 자리 있어요, 5동 그녀들, 몽생이 등짝.이 모든 게 의자 이름이라면?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아홉굿 마을에 가면 마을 주민들의 혼이 담긴 각양각색의 나무 의자 1000개가 있다. 1000개의 의자가 있는 낙천리 의자마을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걸까.
개짖는 소리도 없던 시골 마을에 사람 북적, 왜?
초록이 짙어가는 7월, 제주시에서 서부 중산간도로(1116번 도로) 가는 길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중산간 오름 등성이에는 허옇게 안개가 끼어 있었다. 들녘은 농부들이 심어놓은 콩과 밭벼가 여백을 채웠다.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아홉굿 마을 표지석을 지나자 아홉굿 숲이 보였다. 시골마을 한복판이라야 잔디와 고목 그리고 정자가 전부지만, 이곳의 특별함은 모양과 크기가 각기 다른 무려 1000개나 되는 나무의자에 있다.
하늘이 내려줬다는 낙천, 천 가지의 기쁨을 간직한 마을 낙천, 물맛이 좋아 사색에 잠기게 된다는 서사미 마을(西思味村), 제주시 서쪽에 자리 잡은 중산간 낙천리 마을에 요즘 이 나무의자들 때문에 경사가 났다. 그동안 개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한적했던 마을에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유인즉슨, 아홉굿 마을에 생긴 느린 쉼터 때문. 느림의 휴식공간 주인공은 바로 이 1000여개의 의자다. 여느 공원처럼 잘 꾸며놓은 것은 아니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풍경이 묻어나는 정원이랄까. 느림의 미학이 묻어나는 쉼팡이다.
마을 주민들이 2년여 동안 의자 1000개 제작
2003년도 농촌의 테마마을로 선정된 낙천리 아홉굿 마을은 사실 중산간이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은 관광객이나 마을 주민들이 그냥 지나치는 곳에 불과했다. 이에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다, 지난 2007년부터 손수 나무 의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땀 흘리며 밭농사 짓는 주민들에게 의자 만들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자들은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하는가 하면, 여자들은 의자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페인트를 칠했다. 그러길 여러 날, 드디어 81가구 320여명의 주민들이 1000개의 의자를 만들었고, 낙천리 마을 한복판 아홉굿 숲 옆에 의자마을이 탄생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의자 1000개에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전국에 닉네임을 공모했고 의자마다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탄생한 의자들의 이름이 흥미롭다. 푸른 잔디 위에 자유롭게 놓여 있는 '몽생이 등짝'이라는 의자에 앉아보았다. 공간이 확 트인 숲과 구멍숭숭 뚫린 밭담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정원에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1000개의 의자, 관광객 엉덩이를 붙잡네
삼각 김밥 같은 '청출어람' 의자에 앉아보니 나울대는 푸성귀들이 쉼 없이 산소를 제공했다. 찔레꽃 모양을 한 '푸르미'에 앉아보니 의자에서 찔레꽃 향기가 품어 대는 것 같았다. 침대 같은 의자가 있는가 하면 흔들의자, 학창시절 교실에서 앉았던 추억의 의자, 족히 100여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콘서트형 의자도 있다. 또 높이가 무려 13.9m나 되는 대화합 의자가 마을에서 키를 자랑했다.
고목나무를 에워싸고 있는 의자에서는 편안함을, 은행나무 옆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 같은 의자에서는 옛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시골 마당에 놓여 진 평상 같은 의자에서는 쉼의 미학을 배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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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보니 여유가 생기네요. 초록을 감상하며 제주 중산간의 매력에 빠질 수 있어요."올레 13코스를 걷다가 의자마을을 찾았다는 관광객 문모(40)씨는 각기 다른 모양의 의자를 번갈아 앉아본다. 아홉 가지 좋은 일이 생긴다는 낙천리 의자마을, 요즘 제주의 중산간 낙천리 아홉굿 마을에는 혼이 담긴 '느림의 쉼팡'에서 쉬어 가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 제주공항-노형로터리-1135번도로-경마공원-케슬렉스 cc(우회전)-1115번도로-1116번도로-저지 예술인미을-조수-낙천-아홉굿마을 표지석-아홉굿 숲(의자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