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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다. 당시(물론 지금도 존재하지만) 우리 동네 기찻길 신호등 뒤로는 높지 않은 산이 하나 있었다. 당시 난 그곳이 당연히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 뒷산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나타나는 것인지 뒷산(?)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반대편에는 뒷산이 아닌 무엇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기찻길 신호등 반대편에는 뭐가 있기에 사람이 저리 많을까? 뒷산이 아닌가 보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되도록, 우리 동네 반대편에 있는 미지의 장소를 가보지 못했다. 기찻길 신호등을 건너는 것이 무서웠는지, 아니면 그저 귀찮아서 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용기내어 그곳을 건넜을 때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새로 알게 된 친구네 집에 놀러가게 되어 그 기찻길을 건너게 된 것이다.  두근두근,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당시엔 왜 그렇게 긴장이 되던지 모르겠다. 

 

그렇게 용기내어 건넜던 그 기찻길 뒤에는 환호성을 지르게 할 만큼 신기한 마을이 있었다. 광역시 대전에는 어울리지 않는 농촌틱한 마을, 내 눈앞에 보였던 것은 동화 같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곳에서는 아기자기한 집들과 이름모를 꽃들, 그리고 밤나무며, 옥수수며, 포도밭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그 후 그곳은 내가 울적할 때마다 즐겨찾는 곳이 되었다. 넓게 트인 길을 따라 걷다보면 가라 앉았던 기분이 다시금 확 풀리곤 했다. 게다가 한참을 걷다가 힘들면 친구네 집에 들러 놀다올 수 있었으니 이보다 신나는 일도 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기차가 10-20분 마다 시끄럽게 지나갔다는 점이다. 가끔 친구네 집에 들러 만화 영화나 청소년 드라마를 볼 때 꼭 문제가 불거졌다. 만화 속 중요한 대사가 나올 때에 분위기를 깨는 기차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만 어린 목소리를 냈지만 그곳에서 이미 오래 산 친구는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둔감해져서인지 별 불편을 모르는 듯 했다.

 

"야, 이렇게 시끄러운데 너 안 불편해?"

 

"응, 그런대로 괜찮아."

 

하긴, 따지고 보면 그 마을은 단점보단 장점이 훨씬 많은 곳이다. 기차 소리만 빼면 정말 정겹고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여유롭게 집밖에 나와 담소를 나누고 그 주변에 또 고양이며, 개가 느릿느릿 서성이는 그런 마을이었다.

 

어찌나 여유롭던지 내가 '어슬렁 고양이'와 '느림보 개' 라고 이름 붙였던 녀석들도 있었다. 느릿느릿 마을을 활보하던 개와 고양이. 정말 녀석들처럼만 살면 정말 동물 팔자가 상팔자라는 생각이 들만큼 행복해 보였다.

 

비록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군대까지 가게 되어 그 마을을 찾지 못했어도, 그리고 친구가 이사가게 되어 그 마을을 놀러 가지 않았어도 그 아름다운 곳에서의 추억은 분명 내 유년 시절의 소중한 보물이었다.

 

추억 속으로 사라진 아름답던 이웃 마을

 

 

그런데 엊그제는 몇 년 만에 이웃 마을을 찾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을이 흉측스럽게 부서져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무너진 주택 자리에는 가림막이 높게 쳐져 있었다. 과연 내가 알던 그곳이 맞나 할 정도로 마을은 옛 모습을 잃어 버렸다.

 

가림막 틈으로 무너진 건물을 살펴보다가 문득 슬픈 생각이 들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경부 고속철도 확장 공사로 인해 기찻길 옆에 위치했던 마을이 송두리째 철거되어야 했던 것이다. 

 

안타까웠다. 그놈의 개발로 인해 내 소중한 추억이었던 곳 하나가 또 기억 속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과거가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비단 사라진 것은 아름다운 마을 만도, 아기자기 했던 주택들만도 아니었다. 그곳을 채우고 있었던 정겨웠던 사람들, 그리고 '어슬렁 고양이'와

'느림보 개'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 촌처럼 살만한 곳에 정착했으면 다행이겠지만, 혹시 기찻길 옆 마을보다 더 시끄럽고 힘겨운 곳에서 고통받고 있지는 않을런지,

 

현실적인 보상을 받는 것조차 힘겨웠을 그들은 소중한 마을을 떠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휴,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사람이야 그렇다치고 '어슬렁 고양이'와 '느림보 개'는 또 어디로 갔을런지, 빠른 삶에 익숙하지 않는 녀석들이 도시 고양이와 아파트 개들의 텃세에 힘겨워하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태그:#어슬렁 고양이와 느림보 개, #사라진 이웃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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