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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지트에서 온 초대장이다. 복잡하게 얽힌 서울 거리를 오밀조밀하게 담아낸 유혹. 받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고, 보낸 사람은 그 누구여도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시계는 멈추었고 공간은 속살을 드러내며 손짓한다. 뒤집힌 공간의 틈새 안으로 우리는 각자의 아이디를 가지고 접속한다. 로그인 동안에는 누구의 신경도 쓸 필요 없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하게 꿈꾸는 자들의 몫일 테니까.

 

<아지트 인 서울>에 담긴 서울거리는 흔히 알고 있던, 그러니까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무미건조한 서울과는 다르다. 그 곳에는 전통 문화가 살아 숨쉬고, 은밀한 사교집단도 있으며, 거대한 바다와 같은 수줍은 감성과 소통의 교감도 담겨 있다.

 

혼자여도 상관없고, 둘이어도 나쁘지 않다. 책은 시간만 나면 서울을 떠나 시외로 떠나려는 사람들의 발길을 돌려세우고는 묻는 것이다. 당신은 서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꿈꾸는 자들의 피난처

 

핑크색 바탕에 알록달록한 일러스트가 매력적으로 그려진 <아지트 인 서울>의 표지도 훌륭하지만 다채로운 그림과 사진, 글로 그려낸 알맹이는 더욱 더 돋보인다. 한 곳 한 곳 직접 찾아가서 보고 느끼고 마시고 먹고 때로는 교감한 흔적이 보이는 취재, 자료조사, 인터뷰. 그리고 어느 장소, 거리 하나 소홀하거나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분배한 올바른 편집방식도 인상적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감성과잉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도 글은 거리유지를 하지 못한다. 아니,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대상과 더 가까이 마주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물론 그만큼 깊숙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보는 이에 따라서는 장점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누구나 때때로 그런 깊은 감성에 빠져 나오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던 때, 가쁜 호흡과 열기, 때로는 깊은 우울함의 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사람들은 거리의 곳곳에 접속한다. 그러고는 기꺼이 암흑의 핵심까지 다가간다. 그 곳이 바로 몽상가들의 피난처다.

 

인터넷 세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도 있고, 서울을 즐길 수 있는 도시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거대한 빌딩숲과 천만이 넘는 인구, 교통 체증과 신경질 부리는 사람들 그리고 차가운 외면과 소통 부재.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서울은 현대사회 외로움과 고독의 한 표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울은 시시각각 오해받는다. 다양한 빛깔을 뿜어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정작 거기서 흑백의 두 가지 색 밖에는 보지 못한다.

 

그러니 기꺼이 따뜻한 피가 흐르는 거리로 나오라고 책은 시종일관 외친다. 안으로 숨어들지 않고 두 발을 대지 위에 얹으면, 거기에 바로 당신이 찾던 아지트가 있다. 실은 그 어디여도 상관없다. 불안과 외로움을 씻어내고 즐거움을 찾을 수만 있다면.

 

가능성, 끝도 없는 미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싶다면 추억의 골몰길이 남아있는 창성동, 통의동이 있다. 도심 1세대 아파트의 옛 모습이 간직된 서소문 아파트 주변도 매력적이며, 사람 냄새 퍼덕이는 노량진 수산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1960년대 서민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홍제동 개미마을이 좋은 대안일 수 있겠다. 

 

트렌드 리더들이 모여드는 청담동 압구정로는 고급스럽고 은밀하다. 서래마을 서래로와 몽마르뜨길에는 독특한 취향과 개성이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우리를 기다린다. 모든 것이 통하는 진정한 오픈마인드의 이태원도, 발랄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신사동 가로수길도 빼놓을 수 없는 서울거리의 백미 중 하나다.

 

<아지트 인 서울>은 그 외에도 홍대앞, 삼청동, 대학로 등을 소개하며 우리가 몰랐거나 드문드문 단편적으로만 접했던 서울 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 그야말로 서울 거리 백과사전이라 칭찬할 만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다 읽고 나면 서울은 다양한 가능성이 뻗어있는 미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을 낯설고 탐험하고 즐긴다는 것은 그 누구도 훼손시킬 수 없는 개인 고유의 감수성을 찾아나서는 퍼즐 게임과 같다.  

 

책에 나오는 사진을 통해, 글과 그림을 통해 거리는 읽고 보고 느끼는 모든 이에게 묻는다. 당신의 길은 어디인가. 친구들은 어디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답 없는 미로를 추적하는 몽상가들이다. 무미건조, 싸늘함으로 대변되는 복잡한 거대 도시의 이면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음을 찾아나서야 한다.

 

골방에 갇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이 전부라고 여겨도 상관은 없다. 자신의 속한 작은 세계가 우주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한 발만 더 뻗어보면 지금 이 거리밖에, 수억 개의 소우주가 있음을 기억하자.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거미줄처럼 얽혀 기다리고 있다.

 

세포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면, 샘솟는 열기를 주체할 수 없다면 기꺼이 방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자. 그 곳에는 낯선 서울이 있다. 빤히 거기서 우리를 바라보며 기다리던 아지트, 그가 내미는 손을 잡기만 하면 된다. 


아지트 인 서울 Agit in Seoul - 컬처·아트·트렌드·피플이 만드는 거리 컬렉션

민은실 외 지음, 백경호 사진, 랜덤하우스코리아(2009)


태그:#아지트인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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