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다
일찍부터 가장 손쉬운 길은 물길이었다. 큰 힘 들이지 않고 많은 물자와 사람들을 수송할 수 있는 배라는 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모두 옛말이 되어버렸지만 우리나라도 강경 포구의 세곡선을 중심으로 삼남의 물산이 한 군데로 모이던 시절이 있었다. 물길을 통해 사람들은 세상과 소통했다.
아라비아해는 거친 파도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수로를 개발했다. 해안선과 나란히 달리는 남인도의 수로. 일찍부터 그 수로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많은 물자와 사람들이 오갔다. 영국의 식민 지배자들은 유유자적 뱃놀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되었다. 모든것이 조금씩 변했지만 아직 덜 오염되고, 다른 곳보다 조금 더 깨끗한 남인도의 수로엔 아직까지 예전 조상들이 살아왔던 삶의 모습 그대로 주어진 삶을 충실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여행을 하면 문득 갖게 되는 생각이 하나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순박한 원주민의 모습을 그들이 언제까지나 간직해 주었으면 하는 이기적 바람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는다. 한가로운 여행자의 서정적 낭만의 대가로 원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삶의 고통을 일찍이 가난을 겪어 본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낭만과 미학의 대상이 아닌 가난. 인도 사람들 역시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투망을 던지고 물고기를 잡고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여행자의 눈에 보이는 낭만적 환상 뒤엔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의 몸짓이 숨어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희망을 고요한 물길에 담아 거친 세상으로 흘려 보낸다.
수로유람, 그리고 오스트리아 친구들나는 수로여행을 하기 위해 남인도 케랄라주의 알레피라는 마을을 찾았다. 마을 앞 선착장엔 수로여행을 즐길 수 있는 각양각색의 보트들이 즐비했다. 쌀 수송선을 개량한 하우스보트부터 유람선, 페리 등 많은 종류의 배가 관광객을 기다린다. 관광객은 주머니 사정에 맞춰 자기가 탈 배를 고르면 모든 것이 해결 된다.
대부분 부둣가가 그러하듯, 알레피의 부둣가도 삶의 활기가 넘쳐흐른다. 승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분주히 움직일 뿐이다.
인도 대륙을 지배했던 영국인들의 유물인 하우스보트. 대륙을 인도인들에게 돌려주며 그들은 자신들의 오락거리였던 하우스보트도 남겨 놓고 돌아갔다. 선장과 요리사, 그리고 시종의 도움을 받으며 호화스러운 선실에서 이국의 환상적 풍경을 즐겼을 영국인들. 잠시나마 그들이 되고픈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가난한 여행자에겐 그림의 떡 일 수밖에 없는 하우스보트 승선을 아쉽게 뒤로 한 채 나는 저렴한 정기 유람선에 몸을 싣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중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코치의 공항에서 만났던 오스트리아 청년들. 시끄럽게 떠들긴 했지만 일단의 유럽 사람들보다 어딘지 순박한 면이 많이 있어 보였던 그들과 뜻을 합쳐 나는 1박2일의 수로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이다. 반드시 친구라는 호칭을 붙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짧은 길을 같이 가는 든든한 동반자를 만나는 일은 여행이 아니면 쉽게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1개월의 여정으로 인도를 돌아다닐 계획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어느 대학병원 의사들. 루카스, 뻬트로, 베네딕트와의 우연한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흥정을 할 줄 모르는 귀여운 청년 루카스의 섣부른 계산 덕분에 하우스보트 승선료를 정가보다 조금 더 지불하기는 했지만, 남인도의 상쾌한 바람은 우리의 보트를 초록빛 수로로 가볍게 밀어냈다.
오스트리아 친구들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점잖은 뻬트로는 루마니아 출신의 의사다. 사진을 좋아하는 뻬트로. 조용한 성격에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진 순한 뻬트로는 특히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사려 깊은 청년이었다. 유람선의 선원들을 비롯해 중간 중간 머무는 기착지에서 뻬트로는 특유의 착한 심성으로 인도 사람들을 대해 주었다. 직장이 있는 오스트리아에서도 인기 좋은 의사 선생님으로 불릴 것이다.
셋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베네딕트. 처음에는 신중하고, 근검절약이 몸에 밴, 전형적인 오스트리안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지만 친해질수록 자신을 낮추던 겸손한 사람이었다. 자기의 음식을 내게 맛 보라며 권하던 소탈한 면을 가지고 있었던 베네딕트. 물론 타문화에 대한 편견 중의 하나일테지만 대부분 유럽 사람들이 식사중에 부모가 찾아와도 웬만해서는 먹어보라 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 나는 베네딕트의 행동으로 인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하며, 잠시동안 '그들의 눈에 동양사람인 내 모습이 어떻게 각인되고, 느껴질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이내 나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를 포함해 아무도 그러한 것들에 신경을 쓰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우선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나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알레피 수로의 풍광은 매우 아름다웠고, 별다른 이권이 없는 순수한 여행자들은 국적과 나이를 떠나 서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우리는 즐거운 여행을 하기 위해 인도를 찾았을 뿐이고, 즐거운 여행을 하기 위해 서로 사랑하며 칭찬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짧다면 짧은 인생. 즐겁게 여행을 하는 마음으로, 가급적 다른 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자기 자신을 조절한다면, 주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전 경인방송 사장이었던 주철환 PD는 "해피의 반대말은 피해다"라고 말했다. 내가 해피할 때, 다른 사람들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비록 이국에서 처음 만난 낯선 여행자들이었지만 즐거운 여행을 위해 서로 배려하며 우리는 작은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1박2일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언어는 달라도 우리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을 밤새도록 주고 받았다. 완벽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상대방의 진심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소통의 장,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장,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레피의 추억은 대낮의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멋진 기억으로 내게 간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