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이 한편 방영되면 으레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역사왜곡 논란이다. 특히 인기리에 방영되는 사극이 있을시엔 그 논란이 한층 더 가열되기 마련이다. 제작진들은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뿐이란 소극적인 변명을 하기도 하지만, 사극은 근본적으로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고, 무엇보다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대중이나 자라나는 젊은세대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그 논란은 그저 가벼이 넘어갈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
역사를 전공한 학생이거나 연구하는 대학교수라면 사극이 역사서의 기록과 한점 오차도 없이 그대로 방송되어 자라나는 세대들이 역사에 대해 잘 못 이해하게 되는 오류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충정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나, 또 한편으로는 드라마 한 편을 제작하며 온갖 고충에 시달리는 제작진의 입장도 사실 어느 정도는 들어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고대사는 사료가 적어 역사서에 기록된 한두 줄의 기록만 갖고 수십 회 분량의 드라마를 찍어야 하는 고충이 있다. 또 근본적으로 사극 또한 드라마이기에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사극에 들어가는 막대한 제작비를 생각하자면 광고수익으로 그 제작비를 충당해야하는 현실도 있고. 만약 사극을 역사에 적힌 그대로 일점의 상상력이나 창작도 가미하지 않고 그냥 찍어낼 경우 주몽이나 대조영 같은 드라마가 그렇게 공전의 히트를 칠 수 있었을까.
사실 따지고보면 70회 분량의 드라마였던 주몽이나 130회 분량의 대조영은 주몽이 고구려 세운 이야기와 대조영이 발해 세운 것 빼고는 99퍼센트가 허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드라마들이 방영될 수 있었기에 우리는 잘 몰랐던 역사속의 실존인물 대소니 소서노니 하는 인물이나 걸사비우나 대중상 같은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여하튼 고구려 드라마 같은 경우 중국의 동북공정 논란이 뜨거울 때 일반 대중과 시청자들에게 고구려에 대한 관심을 드높이게 하는 효과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과연 사극의 역사왜곡 논란은 어찌 받아들여야 하며 또 사극에서 작가의 창작과 허구의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그 대안을 제시하려면 우선 그전에 사극이 방영될 때 발생하는 역사왜곡 논란을 유형별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 생기는 논란이다. 특히 이 부분은 사료가 적어 학 설이 분분한 고대사 부분에서 늘상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 같은 정통사학계의 주장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역사를 보느냐, 아니면 혹은 한단고기류 역사관이나 또는 여타 다른 관점의 역사관에서 우리 고대사를 평가하느냐. 이런 문제에 따라 논란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고대사 논쟁 그 자체에 뿌리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것은 방송사가 사극을 어떤 관점에서 다루든 논란의 소지가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다.
둘째로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의 차이에서 생기는 역사왜곡 논란이다. 가령 조선시대 사극에서 세조를 조카를 몰아낸 패륜아로 그렸는가 아니면 그래도 정국을 안정시킨 공로가 있으니 긍정적인 관점에서 묘사했는가. 또는 천추태후를 고려사에 기록된 대로 김치양과 사통한 요부로 묘사할 것인가, 아니면 그 당시 존재했을 법한 어떤 정치갈등의 희생양으로 묘사할 것인가 하는 점등.
사실 이런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논란은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도 끊이지 않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오히려 이것은 드라마 제작진이 어떤 중심을 갖고 제작하지 않으면 사극 제작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 수많은 분분한 이견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참고할 수는 없는일 아닌가.
셋째로 문중에서 자신들의 조상이 왜곡되게 묘사되었다고 항의를 해오는 경우다. 특히 KBS가 태조왕건 등 고려초기의 사극을 제작할 당시엔 등장하는 고려 장수 상당수가 현존하는 주요 성씨의 시조인 경우가 많아 제작진이 바짝 긴장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논란이라기 보다 압력에 가까운 사안이다.
네 번째의 경우는 숲을 보지 않고 나무 하나만 보는 것처럼 드라마 전체를 이해하려 들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에 시비를 거는 경우다. 가령 어느 시대엔 저런 의상을 입을 수가 없었네, 어느 시대엔 이런 문화가 있을 수 없었네 하는 식으로 이견을 제시하는 역사 마니아들이 생각보다 많다. 요즘이야 시청자들이 대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자기 의견을 개진하지만, 과거엔 특히 방송사 제작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마냥 붙잡고 늘어지며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시청자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사실 사극 게시판을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유형의 게시물중 하나가 바로 네 번째 경우를 갖고 들어오는 시비들이다. 가령 중신이나 양반집 여인네들 식사자리에 올라오는 음식이 그 시절에 있던 음식이 아니었다느니, 혹은 의상이나 무기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느니 하는식의. 하지만 이런 소소한 부분에 시비를 거는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을 하려해도 얄팍한 자기 지식을 한번 뽐내보고 싶어하는 과시욕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 행태가 인터넷이 없던 시절엔 제작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몇 시간씩 붙잡고 늘어지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도 그 시절과 다를바가 없는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가령 지속적으로 똑같은 글을 계속 올린다던가 도배를 하는 행위, 심지어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막말까지 서슴지 않는 네티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드라마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나 의견개진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드라마 제작을 방해하자는 것인지 도대체 그 심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극을 분야별로 나누면 3,4개 정도의 장르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정사(正史)를 다룬 사극으로 주로 정치적 사건이나 역사속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 시절의 정치사를 그려나간다. 특히 지난 수십 년 우리나라 사극의 단골메뉴였던 조선왕조의 몇몇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을 다룬 사극들이 이에 해당된다. 정사를 다룬 사극들은 당연히 역사적 사실과 사료들이 충분히 뒷받침되어 제작이 되기 마련이고, 따라서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 등 최근세사인지라 사료가 풍부한 조선왕조시절의 이야기가 주소재가 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둘째로는 정치사보다 민중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로 80년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사모곡이나 꼬치미 같은 사극이 이에 해당된다. 민중의 삶을 다룬 사극이야 어차피 등장인물을 비롯하여 드라마속 사건들 대다수가 창작이다. 그리고 거기에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속의 사건이나 실존한 인물들이 배경으로 간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17세 여고생 김혜수가 ' 보옥 '으로 열연했던 드라마 ' 사모곡 '에서 이인좌의 난이 극 전개의 주요변수로 나온다던가 보옥의 외가가 단종의 시신을 호종했던 엄홍도의 후손으로 묘사되는 것 같은게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극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역사적 사실과 가공의 세계를 묶어놓는 고리의 역할을 한 것이다.
셋째로는 근 10년이내에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사극의 패턴으로 바로 그 시절에 있었던 특정한 직업군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다. 조선시대 상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 상도 ' 궁녀와 의녀 이야기를 다룬 ' 대장금 ' 또는 ' 다모 ' 같은 드라마가 이런 사례다. 특히 이런 사극들은 정사를 다룬 사극에선 늘상 조연의 역할이었던 직업을 주인공으로 끌어내 새로운 흥미를 유발시켰고, 또한 그러한 특정한 직업세계의 이야기가 외국인들에게도 관심을 갖게해 한류의 한 역할을 톡톡히 담당해내기도 했다.
이런 사극에서 주인공은 ' 임상옥 '과 같은 실존했던 인물을 다룬 경우가 있는가하면 ' 대장금 '은 조선왕조실록 중종기에 ' 장금 '이란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데서 착안 ' 대장금 '이란 주인공을 만들어 궁녀와 의녀세계를 그려나갔고 ' 다모 '는 100퍼센트 가공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조선시대 실존했던 직업인 ' 다모 '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넷째로는 이른바 퓨전사극의 형태로 세 번째 사례와 함께 등장한 사례다. 이런 사극들은 기존의 사극과는 달리 예스러운 말투를 조금 현대적인 언어로 다듬어 친근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고, 중국 무협소설이나 미국 할리우드 영화같은데서 볼 수 있었던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패턴의 사극들은 종종 지나친 파격을 보여 논란의 소지를 만들기도 했다. 서동요에서 선화공주와 서동의 키스신 같은 게 대표적 사례다. ' 대장금 '에서도 한때 장금과 민정호의 키스신이나 베드신을 고려해보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극제작엔 어떤 기준과 원칙이 제시되는것이 좋을까. 외람되나마 그 대안이자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첫째는 역대 왕의 등극순서나 주요인물의 생몰연도 그리고 엄연히 사서에 기록되어있는 역사적 사건 등은 그대로 묘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단순히 극적 재미나 시청률을 위해 마음대로 각색하거나 창작한다면 이는 자칫 훗날 엄청난 오류를 불러오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가령 대조영에서 발해가 세워졌을 땐 이미 죽고 없어야할 설인귀가 끝까지 나온다던가, 혹은 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과 김유신을 어릴 때부터 아는 사이로 묘사한점. 혹은 왕과나에서 김처선, 성종, 폐비윤씨를 비슷한 연배로 묘사 삼각관계로 그려나간 점 등은 기존의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상황과 배경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실제 나이 등을 완전히 무시한 분명한 오류다.
사실 조선왕조처럼 풍부하고 방대한 역사기록이 현존하는 경우엔 의외로 사극을 만들기가 수월하다. 근본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이란 방대한 자료와 그 외 연려실기술 같은 부수적 사료 기타 조선시대 각종 선비, 관료 등이 남긴 문집이나 서책 글 등 게다가 각 문중의 족보까지 참조가 가능하니 그 시대의 상황과 사회 분위기를 충분히 가늠할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고대사로 올라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단 한두 줄의 고대사서의 기록을 갖고 50회, 100회의 드라마를 만든다는 건 작가와 제작진 입장에서도 여간 고역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사극작가들의 인터뷰 기사나 팬카페의 글들을 읽어보면 이 또한 짐작했던 것과 실제가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사극작가들중엔 자신은 사료가 풍부한 조선왕조를 드라마로 묘사하는게 훨씬 쉽다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조선시대는 너무 빽빽한 자료 때문에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차라리 고대사가 문중의 항의 같은 것을 우려해야 하는 부담감도 없고, 따라서 고대사를 사극으로 쓰는게 더 마음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조선왕조처럼 사료가 풍부한 시대의 정사를 다루는 경우라면, 현존하는 사료의 기록에 충실하여 제작진이 자신들의 애초 기획의도의 중심을 잃지 않고 드라마를 그려나가면 된다. 반면 일반 민중을 주인공으로 한 경우라면 그야말로 허구의 드라마니 작가의 창작이 무제한으로 허용될수 있다.
한편 대장금이나 임상옥 혹은 김처선처럼 조선시대에 실존했던 인물을 중심으로 그 시대에 특정한 직업군을 다룬 경우는 가장 애매한 경우이다. 따라서 바로 그런 애매한 경우를 위해서라도 앞에서 말한 역대 임금의 즉위순서나 생몰년 또는 역사속의 실존한 주요 등장인물의 생몰년 및 주요사건의 발생시기등은 역사기록 그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드라마인데 뭐 어떠냐 하는 식으로 넘어갔다간 자칫 시간이 더 지난후엔 그런 사극들의 범람으로 역사 자체에 혼돈이 생길 우려마저 있다.
그러나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의 경우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한두 줄의 역사기록을 갖고 50회, 100회가 넘는 드라마를 집필해야 한다는 작가들의 고충처럼. 따라서 고대사를 다룬 사극의 경우 조선이나 고려시대와는 달리 약간 너그러운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조선왕조실록에야 주요한 인물들에 대해선 사관의 평이 꼭 들어가 있어 그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유추해석해 볼 수 있지만, 고대사의 경우 심지어 왕의 최측근조차도 아무개가 정승급 자리에 임명되었다더라는 식의 짧은 기록이 전부라 도저히 그가 어떤 인물이었을지 알아낼 도리가 없다.
흔히 역사에서 혹은 신문기사에서 행간을 읽는다는 말을 한다. 실제로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경우 일부 기록의 의문시되는 점이나 믿기 힘든 이야기 때문에 비단 작가가 아니더라도 역사연구의 관점에서도 그러한 상상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가령 고구려 3대 임금 대무신왕의 경우 삼국사기에 의하면 훗날 대무신왕이 되는 왕자 무휼은 이미 열 살 때 전투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심지어 네 살 땐 부여의 사신과 맞짱토론을 벌인 기록까지 있다. 그 외에도 삼국사기의 고구려 초창기 기록은 자명고 이야기(스스로 울리는 북)처럼 역사라기 보담은 전설같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역대왕의 즉위기간이나 나이 자체도 믿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한 예로 고구려 제6대 태조대왕의 경우 재위기간이 무려 94년이다. 그런식으로 따져보니 이미 주몽이 나라를 세워 동명성왕이 되었는데, 6대 임금에 가서 왜 갑자기 보통 나라를 세운 임금에게 쓰여지는 왕호인 태조란 표현이 나오는지 이 또한 의심이 간다.
따라서 삼국사기의 이와같은 의문스러운 기록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유추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삼국사기에서 고구려나 백제 초창기 임금들은 나이나 재임기간이 신뢰가 안가는 부분들이 많다. 삼국사기가 쓰여졌을 때 이미 고구려나 백제 초창기의 일들은 천 년전의 일이니, 참고할 사료가 부족했거나 혹 있다하더라도 그 기록 자체가 신뢰하기 어려운 기록이었을 수도 있다.
예전에 한 할 일없는 문사(文士)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 우리나라 젊은이들 중국소설인 삼국지연의에 대해선 훤히 꿰뚫어보면서 정작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어 큰일이다 '라고. 허나 외람되이 말하자면 그 문사의 글은 기우(杞憂)다. 오히려 요즘 인터넷 블로그를 검색하거나 사극 관련 홈페이지를 가보면 전문가 뺨치는 우리나라 역사 마니아, 블로거가 가면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극이 역사왜곡 논란에 시달리는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현상일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고대사의 경우 사료가 빈약한 어쩔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해 있는 경우엔 그 시대를 다룰때 제작진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방송사 초창기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장희빈이란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던 시절인데, 장희빈이 워낙 악역으로 나오다보니 심지어 어떤 육군장교가 총을 들고 장희빈을 죽여버리겠다며 직접 방송사까지 찾아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가령 선덕여왕의 경우 악역인 미실이 주인공인 덕만보다 더 사랑과 박수를 받아 오히려 선덕여왕을 맡은 이요원씨가 조연으로 밀려난 느낌마저 준다. 그만큼 세월도 많이 변했고 시청자들의 인식도 많이 성숙했다.
결국 지금의 현실에서 나올 수 있는 대안은 방송사 제작진은 달라지고 높아진 시청자들의 의식수준과 눈높이에 맞는 사극을 만들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고민을 해야할 것이며, 역사마니아들도 무조건적인 대안없는 비판보다 좀 더 따뜻한 애정의 눈빛으로 우리나라 사극의 발전을 기원해보는건 어떨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