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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사퇴 후 새 후보자를 지명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검찰총장은 어떤 사람인지, 검찰총장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일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인지, 검찰총장은 어떻게 뽑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신임 검찰총장 인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이와 관련해 세 사람의 글을 연속해서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는 2007년 대선 전 부장검사직을 버리고 나온 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경진 전 부장검사의 글입니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사퇴하고, 현재 후임 검찰총장 후보가 아직 지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참여연대로부터 전직이 검사였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이 지녀야할 품성이나 덕목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검찰총장은 검찰청법에 의하면 전국 검찰청의 총 지휘자다. 즉, 범죄 수사 및 형 집행에 관한 최고 최종 의사결정권자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검찰총장은 어떤 자질과 품성을 갖춘 사람이어야 할까? 우선 검찰총장 이전에 검사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자질과 덕목을 먼저 알아보자. 검찰총장은 최소한 검사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모두 갖추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이다. 횡행하는 거짓과 증거조작, 일방적인 관점에 의한 사건의 재구성, 자신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조작되는 처절한 변명 속에서 사건의 객관적 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에 합당한 결론(내지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국민들은 "노력하는 검사", "열정적인 검사"보다는 사건 처리를 정확하게 잘하는 "능력 있는 검사"를 필요로 한다. 물론 노력하는 검사가 일처리를 정확히 잘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그러나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각설하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 요구되는 수단적 능력 중 가장 중요한 자질은 사건 관계자의 말을 잘 듣는 '경청능력(傾聽能力)'이다. 검사는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므로 여러 관계자들의 얘기를 유심히 잘 듣고, 잘 살펴보고 생각해 보는 것이 사건 본질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반면 조금만 듣고 쉽게 자기 머릿속으로 소설구성 내지 보편적 추론을 잘 하는 검사라면 본인과 국민 모두를 위해서 신속한 전직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업무가 과중해 '경청'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검사라는 직위 자체의 명예와 권한을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촌음을 아껴 경청을 해야 한다. 

 

신임 검찰총장에게 반드시 필요한 몇 가지 덕목

 

판단을 정의로운 방향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 인간을 포용할 수 있는 포용력도 그중 하나다. 검사는 범죄를 저지른 인간 그 자체와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신이나 천사가 아닌, 한계적 존재인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된 이기심 내지 욕심과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검사는 단지 사람 마음속 이기심의 병을 제거하는 의사일 뿐, 사람 자체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검사들이 수사과정에서 범죄가 아닌 사람 그 자체를 미워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살인이나 강도, 강간과 같은 생래적 범죄를 제외하고(이 조차도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과 교육을 받았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항변하는 범죄자도 많다), 행정질서법 위반의 경우 그저 우리 사회가 선택한 한 방식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범죄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때도 많다. 네덜란드와 같은 국가에서는 마약이나 매춘도 합법화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근원적 사랑을 잃지 않아야만 적절한 양형(量刑)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적절한 양형능력이야 말로 판사 검사와 같은 재조법조인들의 핵심 업무역량인 것이다. 

 

다음으로 검사들에게 필요한 자질은 겸손함이다. 한밤중까지 일하다가 퇴근하는 대다수의 형사부 검사들은 누군가가 '검사는 권력자다'라는 말을 하면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10여 건씩 쏟아지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자조 섞인 푸념을 한다.

 

그러나 검사들이여 잊지 마시라. 매일 10여건씩 쏟아져 처리되는 사건들의 사건 관계인들은 그 사건을 검사가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따라 재산을 얻기도, 잃기고 하고, 명예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들에게는 단순히 의무적으로 처리해야할 수많은 사건 중 한 건에 불과하지만, 판단을 당하는 민원인의 입장에서는 사람일생의 일정기간 동안 상당히 많은 것들이 검사의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입장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그와 같은 이유로 검사는 분명히 우리 사회의 강한 권력자다. 그런데 대부분 평범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권력을 취하기를 갈구함과 더불어 취할 수 없을 경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에 대한 강력한 질투 내지 증오의 심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를 수용하여 국민들의, 아니 최소한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진정한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겸손함이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리고 겸손함이 있어야만 앞서 말한 진정한 경청(傾聽)도 가능해 질 것이다.

 

사랑, 겸손함, 투명성, 용기, 사람 보는 눈

 

 

다음으로 검사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업무처리의 투명성과 용기다. 자신의 의견과 판단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애매한 태도를 취하다가 상사(上司)나 힘과 세력을 가진 사람들의 뜻에 영합하여 결정을 하는 심성이나 자질을 가진 검사가 존재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전국 모든 검사들을 상대로 지휘권을 가지는 검찰총장에게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능력 내지 덕목은 무엇일까.

 

첫째, 조직 자체의 한계와 문제점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세상의 모든 조직은 그 당시의 조직 속성이 있다. 일정한 특징 그 자체가 장점의 속성과 단점의 속성을 동시에 함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검찰조직 수장은 현재 검찰조직의 구조적 속성과 그에 따른 구조적 오류가 무엇인지를 항상 면밀히 지켜보고, 극복·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젊은 검사들이 '거악척결'에 목숨을 걸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구조적 문제점은 없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참고로 이번 박연차 사건 수사는 여러 가지 교훈적 메시지를 검찰에 제시한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포괄적 뇌물죄의 문제와 의식의 성숙의 문제다. 즉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의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정치인의 스폰서는 포괄적 뇌물죄나 정치자금법위반이고, 검사의 스폰서(대검찰청 소속 검사장, 전직 지검장, 전직 고검검사)는 단순히 징계사유에 불과한 것인지. 총장 후보로 지명된 검사장에게 흠이 발견돼 분명 징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곧바로 사직서가 수리됐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괄적 뇌물죄'를 확대적용하자는 의견은 아니다. 오히려 범위를 최소화 시켜 적용하거나 아니면 법을 개정하여 포괄적 뇌물죄의 개념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치인, 특히 세력을 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 '거악척결'이란 명분으로 달려든 것과 자기 스스로에 대한 단죄문제에 대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 것 등에 대해선 검찰 내부에서도 자기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검찰총장은 이런 흐름 속에서 조직자체의 문제점을 항상 발굴하고 장기적 해결책을 강구할 의지와 역량이 있어야 한다. 

 

둘째, 검찰총장은 좋은 사람을 선발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물론 검사에 대한 인사권은 법무부장관과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실제로 검찰총장에게는 직간접(표창, 서훈)으로 좋은 사람을 선발할 일정한 권한이 있다. 모든 일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검찰총장은 최적의 사람을 뽑아 최적의 일을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일의 속성과 사람의 역량을 한눈에 간파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탁월한 안목이 있어야 하겠다.

 

신임검찰 총장, '자리'에 욕심 없어야

 

 

그 다음으로 정권에 대해 당당함을 잃지 않고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강단이 필요하다. 검찰총장 내지 검사장이 선거를 통해 직접 선출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직접 선출된 정치인 출신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통제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통제가 헌법원칙에 어긋나거나, 특정 정파의 이익에 부합하는 수사를 요구당할 때에는 결연히 'NO'라고 말할 수 있는 강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부 검사가 특정사건의 수사와 관련하여 법무부장관 또는 청와대와 긴밀한 의사연락을 할 경우 이를 단호히 제지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법무부 장관 내지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이 전직 검찰 고위직 출신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검찰총장을 끝으로 더 이상 공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텅 빈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심이 없어야 한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 개개인이 영속적으로 번성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사심이 없기란 쉽지가 않다. 만약 차기 검찰총장에 자리에 대한 사심이 없는 사람이 임명될 수만 있다면 검찰은 그나마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넷째로, 검찰총장은 미래의 사회의 흐름을 읽고 거기에 맞추어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최근 30년의 변화가 과거 2만년의 변화보다 훨씬 더 많고 복잡다단하다. 검찰총장은 변화하는 미래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10년 후 대한민국 검찰총장은 단지 동북아 한반도 지역의 일개 검찰책임자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만큼 급속히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의 세계화가 정치의 세계화뿐만 아니라 범죄의 세계화를 이끌어 가고 있다. 미국인, 중국인, 스페인 사람을 대한민국 검사로 임명해야 하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다.

 

세계화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고도화의 흐름에 빨리 파악하고, 과학기술범죄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지 못하면 검찰은 그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변화에 대비한 조직의 구성, 행동양식, 의식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어야 한다.

 

검찰은 우리사회의 백혈구이다. 너무 강하지도, 무력하지도 않는 최적의 기능을 할 수 있는 훌륭한 검찰총장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김경진 기자는 현직 변호사이자 전직 부장검사입니다. 


태그:#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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