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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노조원들이 점거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22일 새벽 공장내 식당에 노조원들이 먹을 주먹밥 수백개가 광주리에 담겨져 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노조원들이 점거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22일 새벽 공장내 식당에 노조원들이 먹을 주먹밥 수백개가 광주리에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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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도 음식도 의약품도 떨어져가는 쌍용차 평택공장의 식사 메뉴는 열흘째 단 하나 '주먹밥' 뿐이다. 농성 중인 김진수(가명)씨는 공장에서 이 주먹밥을 만들어 농성 노동자들의 밥줄을 책임지고 있다.

메뉴는 주먹밥 하나지만 김씨 등 '밥 짓는 노동자' 20여 명(처음엔 30여 명이었는데 식판 설거지가 없어지고 비상상황이 계속되면서 많이 줄었다)은 온종일 밥을 만들어야 한다. 가스가 끊긴 뒤, 노동자들의 소형 전기밥통을 모아서 밥을 짓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비상이 걸리니까 따로 식사시간도 없고 식당도 쉴 틈이 없다.

지금은 주먹밥이 '단일품목'이 됐지만, 농성 초기만 해도 그는 김치찌개나 된장국도 끓이고 마른반찬도 만들었다. 그때는 식판에 밥을 배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틈나는대로 주먹밥을 챙기고 먹으면서 싸워야 한다. 이 주먹밥만 해도 처음에는 통조림 참치도 들어가고 야채를 넣었는데, 지금은 3일째 소금과 김가루만으로 맛을 내고 있다.

제대로 씻지도 싸지도 못하는 공장 안... 배탈의 악순환

<오마이뉴스>가 전화인터뷰를 했던 28일은 김씨가 농성을 시작한 지 68일째 되는 날이었다. 엉뚱하게도 요리를 잘해서가 아니라 식당 기계를 만질 줄 알아서 밥 담당이 된 그는 "처음엔 걱정했는데 호응이 엄청 좋았다, '집밥보다 낫다'고 농담하는 조합원도 있었는데 제가 먹어도 맛있더라"면서 "안 해서 그렇지, 원래 남자들이 요리를 더 잘하지 않느냐"며 웃었다.

두 달 넘게 밥을 하다 보니 그는 주부가 다 됐다. "야채 주먹밥이 나왔을 때 조합원들이 엄청 좋아했다"며 "여름이라서 야채가 금방 쉬니까 바로 먹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이 주먹밥도 못 먹는 사람들이 있다. 두통과 복통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극심한데다가 화학물질이 많은 도장공장 내에서 살다 보니까 공장에는 환자들이 늘어간다. 김씨는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식당에서 생활하지만 자신도 늘 머리가 아프고 장이 안 좋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 정상적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2주일에 한 번씩 회사가 도장공장 노동자들에게 (유해물질 해독을 위해) 돼지고기를 먹이곤 했다"고 전했다.

정말 심각한 환자도 많다. 당뇨나 고혈압 등 지병이 있는 노동자들이다. 다행히 필수 의약품은 들어왔지만 의료진은 여전히 출입이 차단됐기 때문에 제대로 진료를 받은 지 오래다. 최루액을 맞아 살에 수포 등이 생기면 잘 아물지 않는 등 합병증 기미도 보인다.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농성중인 가운데 22일 오후 보건의료단체들이 식량, 식수, 의료진 차단 조치에 항의하며 물과 의약품을 농성중인 노조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가져왔지만 경찰의 저지로 반입되지 못한 채 공장밖에 놓여 있다.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농성중인 가운데 22일 오후 보건의료단체들이 식량, 식수, 의료진 차단 조치에 항의하며 물과 의약품을 농성중인 노조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가져왔지만 경찰의 저지로 반입되지 못한 채 공장밖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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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절실한 것은 물이다. 그는 물을 나눠주는 일도 맡고 있는데, 식수는 1인당 하루에 500㎖ 한 병씩 지급된다. 햇볕 뜨거운 옥상에 대기하는 노동자들 중에서는 "좀만 더 달라"는 경우도 있지만, 안타깝고 답답해도 어쩔 수 없다. 당장 내일 물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마침 인터뷰를 했던 28일,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에서는 민주당·민주노동당·시민사회단체들의 식수 반입 시도가 이어졌지만, 사측 비해고자 노동자에 가로막혀 결국 모두 무산됐다. 모두 3톤가량의 식수가 상자채 쌓여있는 광경을 김씨와 다른 농성자들은 도장공장 옥상에서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먹을 물도 귀한데 씻을 물은 사치다. 농성자들은 모두 씻지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았고 면도도 못했다. 옷도 빨아입지 못해 온갖 오물과 최루액이 묻어있다. "서로 마주앉아 이 잡아주자"는 농담이 나올 지경이다.

김씨는 "여기 들어와서 보면, 다들 서울역 앞 노숙자 같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단순히 미관상의 문제가 아니다. 씻지 못한 손으로 주먹밥을 먹다 보니 배탈은 더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공장 안 화장실을 폐쇄하고 만든 간이 화장실은 위생상태가 엉망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최대한 생리적 욕구를 참는다. 배탈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지난 27일 오후부터는 날씨가 서늘해졌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이 흐렸다.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은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식수는 해결하지 못해도 빗물을 받아서 세수도 하고 빨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8일 저녁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그나마 태양이 강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김씨는 공장 안을 '생체실험장'이라고 표현했다. 소금주먹밥과 생수 한 통만 주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게 하면서 언제까지 버티나 보는 생체실험이고, 소화전은 없고 인화성 물질은 가득한 공간에서의 물리적 충돌 상황으로 인간을 밀어넣어 보는 생체실험이라는 것이다.

이탈자 20여 명 선... "나갈 사람 다 나가고, 남은 사람은 마음 비웠다"

22일 새벽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농성중인 노조원이 경찰 투입에 대비해서 도장공장 진입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놓고 있다.
 22일 새벽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농성중인 노조원이 경찰 투입에 대비해서 도장공장 진입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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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 중심의 쌍용차 채권단은 이달 말까지 공장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파산을 신청하겠다고 밝혔고, 경찰도 모의진압훈련을 하면서 공권력 투입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 김씨는 "그나마 한 병씩 물을 마실 날도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사측이) 식당을 노리고 있는데 여기를 뺏기면 생쌀 씹고 초코파이 나눠먹으면서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차라리 빨리 들어와서 다 죽이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은 정도"로 공장 안에서의 압박감은 상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공권력이 투입될 상황을 우려했다. 그는 "지도부는 '극한상황에서도 생산설비 화재를 조심하라'고 오늘도 문자를 보냈는데 실제로 당장 죽겠다 싶으면 지침대로 따를 수 있겠느냐, 통제가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현재 쌍용차 농성 노동자들의 상황은 극한에 가까워보였다. 이들은 종일 옥상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햇빛 차단막 아래 그대로 잠을 잔다. 쓰러지는 사람들도 종종 생긴다. 김씨는 "나가는 사람은 안 잡는데, 정문으로 나가면 연행되고 다른 길로 나가다가는 사측 용역의 새총에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숫자는 농성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지만, 지난 10일 동안 쌍용차 농성대오를 이탈한 사람들은 대략 20여 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병이 있거나 집안사정 때문에 나간 경우를 감안하면 이탈자는 많지 않은 셈이다. 그는 "나갈 사람은 다 나갔고 남은 사람은 마음을 비웠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동료들과 함께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15년째 쌍용차에서 일한 그는 IMF 때 스스로 인건비를 줄이고 연월차까지 반납하면서 워크아웃 기업을 졸업시키고 흑자를 달성했다는 보람과 자부심이 강했다.

그는 사측의 정리해고 강행 주장에 대해 "몇명이라도 정리해고 하라고 하는데 같이 싸우던 사람들끼리 누구를 해고대상자로 정하냐"고 반문했다. 노조가 내놓은 '무급순환휴직' 제안에 대해서 그는 "돈도 안 받고 회사 정상화를 기다리겠다는데 이런 노조가 어디 있냐"고 강조하면서 "그게 마지막 카드다, 우린 더 양보할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회사측 대오에서 던져진 담배 두갑

20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점거농성을 벌이는 노조원을 상대로 법원의 강제집행이 시작된 가운데, 쌍용자동차 노조원 가족들이 정문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20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점거농성을 벌이는 노조원을 상대로 법원의 강제집행이 시작된 가운데, 쌍용자동차 노조원 가족들이 정문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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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투쟁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몸보다는 마음이고, 적보다는 내 편이다. 김씨는 공장 안에서 동료들과 맞서 싸워야할 때, 그리고 가족들을 생각할 때 가장 마음이 괴롭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측 강요로 공장에 투입된 동료 조합원들은 관리자가 안 볼 때는 새총을 쏘지 않는다고 한다. 몰래 담배 한 두 갑을 농성장에 던져주기도 하고, "오늘 들어가라는 지침을 받았다, 몸 조심해라" 같은 문자 메시지도 보낸다.

물론 농성 노동자들도 사측 대오 앞에 선 동료들에게는 쉽게 새총을 쏘지 못한다. 김씨는 "농성 초기에는 오해도 있었지만 이제 눈치껏 자제하면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힘든 것은 가족이다. 한 달 전만 해도 가족들이 공장 안에 찾아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전화통화만 가능하다. 그를 지지하던 아내는 이제 "그만하고 몸 다치기 전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세 남매 중 막내는 부쩍 커나갈 네살배기. 아빠 보고 싶다고 울면 어쩌나 싶어서 아이들과는 통화하기도 겁이 난다.

그는 얼마 전 문자메시지를 보내 큰딸에게는 "아빠답게 사람답게 사는 길, 아들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보여주겠다, 힘들어도 아빠를 믿고 동생들 잘 챙겨라"는 당부를, 아내에게는 "내가 없어도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 여기서 그동안 지난날도 많이 돌아보게 되더라, 앞으로 더 잘 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바깥으로 나가면 그는 다짐대로 아내에게 자신이 만든 요리를 해주고 싶다. 새로 해본 찌개나 반찬을 동료들에게만 먹인 것을 그는 영 미안해했다. 자신이 먹고 싶은 요리는? 자장면과 설렁탕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던 그는 "탕 종류를 좋아한다"면서 설렁탕을 꼽았다. 자장면이 탈락된 까닭은 가끔씩 부식으로 동료들끼리 인스턴트 자장라면을 끓여먹었기 때문이다.


태그:#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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