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문자가 생겨나고 사람들의 관계가 늘어나면서 '문제'와 '위기'는 역사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쟁의 참상을 만들어 내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역사 이래 수많은 문제와 위기가 민중의 힘으로 극복되고 발전되었다고는 하지만, 소위 '현자'라는 엘리트 집단, 특히 정치가들은 그때마다 대안과 방안을 제시하고 권력을 민중들에게서 자기들에게 집중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때로는 어처구니없게 전쟁을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이용한 정치가가 있어 온 나라, 온 국민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하는가 하면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정책을 내세워 국민들을 헐벗게 만든 정치가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켈름'이라는 도시를 처음으로 지배한 황소 그로남 1세와 현자 위원회도 빵이 부족하고 헐벗고 감기가 심한 사람들을 위해 이레 낮밤을 고민한다. 그리고 각자 대안을 내 놓는다. 첫 번째 현자는 '위기'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금지시키자고 한다. 또 다른 현자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여 빵 부족을 해결하자고 한다. 또 다른 현자는 장화, 의류들에 높은 세금을 부과해 부자들만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한다. 그러나 장화와 옷이 비싸면 가난한 사람이 헐벗어 감기가 걸리고 빵과 옷을 생산하는데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우왕좌왕. 이레 밤낮의 고민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회의 연기를 하려는 찰라. 현자 중의 현자. 황소 그로남이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다. 그 해결책은 옆에 사는 부족들과 전쟁!
익살스럽고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는 동화 '바보들의 나라, 겔름'이라는 고전동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기도 한 아이작 싱어의 유쾌한 고전 동화. 두레아이들에서 번역되어 나온 동화책을 읽으며 내 아이는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할까 궁금해진다. 어리석은 '현자'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우리 정치인들과 어찌 그리 꼭 닮았을까 하는 아빠의 상상력, 내 아이와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황소 그로남이 전쟁을 하는 이유는 이웃 부족이 자기들에게 바보라고 불렀기 때문. 옆 마을에서 장가온 사람을 길잡이로 만들고, 도둑으로 감방에 있는 자를 성문을 열고자 앞세우고 마을에 솥과 냄비로 무기를 만들어 진격. 그러나 길잡이는 애초 다른 길로 접어들어 전쟁을 하고자 하는 부족과 상관없는 부족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항소 그로남의 그 부족도 우리를 '바보'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전쟁을 시작한다. 그리고 결과는 대패. 투구에 뿔 하나를 잃어버리고 왼쪽 눈이 퉁퉁 부은 채 도망친 그로남은 부인에게마저 구정물 세례를 받는다.
전쟁의 이유를 물어 혁명당 당수가 권력을 장악한다. 그러나 혁명당 당수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 돈이 위기의 근원이라고 말하면서 돈을 전부 없애 버린다. 그러나 오히려 대혼란. 시장은 마비되고 혼란의 틈을 타 도둑 파이텔이 정권을 장악한다. 파이텔은 집권하자마자 절도를 합법화하고 옆 부족 침탈을 일삼는다. 그러나 도둑이 창궐하고 전쟁에 삶은 피폐해진다. 옆 부족들의 연합군에 파이텔 정권은 무너진다. 켈름이라는 도시는 이제 전쟁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다. 열심히 일해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다. 황소 그로남의 부인인 옌텐 페샤가 여성당을 창당하여 권력도 여성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남자들은 집안 설거지. 청소를 도맡게 된다. 켈름이라는 도시는 희망을 예견하며 이야기 끝을 맺는다.
'바보들의 나라, 켈름',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곳곳에 생각해야 할 것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익살과 해학의 행간 속에 감추어진 독설을 발견해낼 때 짜릿한 여운은 어른들도 한번쯤 읽어 볼만한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어린 왕자'라는 동화 속 어린왕자와 장미꽃의 간단한 대화에서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읽을 수 있었을 때의 설레임, 그 맛이 이 동화에서도 느껴진다. 또 주인공과 현자라고 이야기하는 군상들은 비록 어리꽝스럽고 동화 특유와 과장이 있긴 하지만, 곰곰이 되새겨 읽는 사람이라면 현실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 정치 현실이 이 동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너는 우리를 바보라고 하니까 적이고 전쟁도 불사해야 된다는 이야기는 꼬여 있는 남북 관계를 푸는 우리네 정권의 방식과 닮아 있다. 궁정 시인으로 등장하는 제켈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 길고 더 많은 헌시를 지어 바침으로 명예를 구가하는 것 또한 나팔수 언론들의 형태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도둑 파이텔은 정권을 잡은 뒤 자기 치부를 감추기 위해 절도를 합법화하고 전쟁을 하고 온갖 공포정치를 펼치지만 끝내 무너지고 만다. 대안 없는 혁신당의 실패. 여성당 정권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켈름이라는 도시가 지속적으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는 독자가 풀어야 할 몫으로 남긴 것 같다.
초등학교 4.5.6학년용으로 번역된 책이라고 한다. 4학년 딸아이에게 책을 넘겨줬다. "민주야 한번 읽어 봐. 나중에 아빠한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이야기 해줘" 방학이라 무료하던 아이가 좋단다. 책을 건너 주면서 아빠같이 너무 현실과 대비시켜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보 같은 현자(정치인)들의 바보 같은 짓거리을 보고 웃으며 켈름이라는 도시의 행복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한번쯤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답답한 현실에 청량제 같은 느낌의 책이랄까... 그래서 읽고 권한다. 주말, 아이를 앞세워 서점에서 한번쯤 펼쳐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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