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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과 하늘과 구름
 돛과 하늘과 구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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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지방을 오르내리는 장맛비 영향을 받았는지 모처럼 서울하늘이 쨍하고 맑았다. 매연에 찌든 대도시의 하늘이 날마다 희부연 모습이었는데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까지.

우리네 사람들도 항상 저렇게 맑고 고우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29일(수요일) 아침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전날 밤이란다. 정다운 잉꼬부부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친구였다.

암 때문이었다. 친구부인은 이미 몇 달 전에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암을 발견했을 때는 소리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의 몸속에 너무 깊이 파고들어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그들 부부는 희망을 놓지 않고 안간 힘을 썼다.

아파트 위 하늘과 구름풍경
 아파트 위 하늘과 구름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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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너머 하늘과 구름
 풀밭 너머 하늘과 구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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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최선을 다해보자는 남편의 말에 따라 가진 노력을 기울였다. 삶의 끈을 쉽사리 놓아버리기엔 조금 억울한 나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뿌리 깊이 파고든 죽음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친구의 모습은 매우 초췌했다. 애써 눈물을 감추고 있었지만 그의 절절한 슬픔이 얼굴 가득 숨겨져 있었다. 함께한 친구들은 그를 어떻게 위로할 말이 없어 모두들 침묵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을 잡아 주고 나오자 고맙다며 희미하게 웃는 표정이 오히려 더욱 가슴 저리게 했다.

밤에 다시 찾기로 하고 밖으로 나오자 무더운 열기가 훅하고 전신을 휘감아든다. 전철을 타고 오다가 친구들을 보내고 뚝섬에서 내렸다. 모처럼 강가에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뚝섬에 새로 문을 연 수영장은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로 와글와글 했다.

바람아 구름아
 바람아 구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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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너무 동쪽 하늘과 구름
 광장 너무 동쪽 하늘과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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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고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삶이 항상 저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들 중에 나이든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강가 울타리 안쪽엔 따가운 태양빛에 선탠을 하는 젊은이들이 즐비하게 누워있었다. 문득 나 혼자만 외롭다는 느낌이 온몸과 마음을 엄습한다.

물가로 나가 불럭위에 걸터앉았다. 푸른 강물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나 흐르는 강물이야 슬픔에 빠진 한 초로(初老)남자의 아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초연히 떠난 한 여성의 죽음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세상이란, 삶이란 어차피 그렇게 홀로 가는 것인데,

강건너 잠실쪽 하늘풍경
 강건너 잠실쪽 하늘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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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풀밭 위로 구름은 피어오르고
 푸른 풀밭 위로 구름은 피어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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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위에 떠있는 큰 배는 투명한 돛을 올린 채 제자리에 붙잡혀 있고, 오리모양의 작은 배들도 출렁이는 물결에 흔들리고 있을 뿐 조용한 모습이다. 그러나 하늘은 슬픔처럼 더욱 푸르고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이 잊고 있던 그리움을 불러온다.

하늘은 온통 뭉게구름 천지였다. 휘휘 둘러보는 어느 방향 하늘에도 뭉게구름뿐이었다. 일어나 광장위로 오르자 동쪽 하늘 끝 산과 맞닿은 하늘에도 뭉게구름만 가득하다. 강 건너 하늘과 북쪽 아파트 하늘에도. 강변길과 물길이 맞닿은 하늘에도, 풀밭 위로 바라보이는 하늘 저 끝에도...

강줄기와 길 끝에 맞닿아 있는 하늘과 구름
 강줄기와 길 끝에 맞닿아 있는 하늘과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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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라보이는 산줄기 위에 피어오른 뭉게구름
 멀리 바라보이는 산줄기 위에 피어오른 뭉게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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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를 두고 진정 가셨나요.
멀리 떠나 버렸나
어루만져주던 그날 밤의
사랑 잊으셨나요
그대 떠난 빈자리에 그리움만 쌓여

하늘로 날아서 임에게 갈까
소리쳐 울면 돌아오실까
나는 천년학이 되었나
임을 어이 찾으리
바람아 구름아 나 데려 가거라

중략-
그대 떠난 빈 가슴 눈물이 고여
중략-
바람아 구름아 나 데려 가거라
그대가 당신 아니면 소용없어요.

최영준의 '천년학' 중에서

저 구름이 흘러가는 곳은?
 저 구름이 흘러가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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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에 떠오른 뭉게구름은 언제보아도 그리움이고 추억이다. 그러나 이날 모처럼 맑은 날씨에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은 그 느낌이 달랐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진 친구의 마음인 양, 절절한 서글픔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친구부인, #뭉게구름, #한강변, #바람아 구름아, #구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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