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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는 노동자들은 처음의 요구가 관철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조합원들 정서는 그동안 있었던 것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도부가 협상하면서 양보를 하겠지만, 어떤 안이든 한상균 지부장이 도장을 찍기 전에 조합원들과 소통하고 설득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함께 싸워온 만큼 조합원들도 지도부를 믿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현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직국장이 전하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내 농성장의 분위기다. 약 보름 전에 도장공장을 빠져나온 이 국장은 다른 노동자 30여 명과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갈 '개구멍'을 찾고 있다.

쌍용자동차 농성장을 먼저 나선 노동자들 10여 명은 31일 낮 12시 30분께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의 평화적 해결과 공권력 철수를 요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밖에서 발만 구르면서 안에 있는 동료들의 안전과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공장 밖에서 협상 타결을 기다리는 노동자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하루라도 협상이 빨리 끝나서 동료들이 힘든 농성 생활을 끝내기를 바라지만, 정리해고에 합의하는 협상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힘들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31일 오후, 쌍용차 평택공장 농성장에 있는 조합원이 먼저 공장을 나간 동료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31일 오후, 쌍용차 평택공장 농성장에 있는 조합원이 먼저 공장을 나간 동료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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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간부 부인의 자살사건 이후 아내의 우울증이 걱정되어 지난 26일 도장공장을 빠져나온 조합원 A씨는 "농성장 안 사람들도 구체적 교섭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끝까지 가자'는 쪽과 '이제 힘들다'는 정서가 반반인 것 같다"고 전하면서 "그래도 죽기를 각오했으니 요구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농성장을 이탈한 이들 조합원들도 협상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A씨는 교섭 쟁점인 무급휴직에 대해 "순환휴직이면 몰라도 무급휴직은 회사의 기존 입장에서 인원만 조금 늘렸을 뿐이다"고 말했고,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른다는 것인데 누굴 자르냐"면서 '당연히 반대'라는 의견을 밝혔다.

용역업체 직원 등과 대치 과정에서 뇌진탕·어깨 탈골 등의 부상을 하고 한 달 전에 공장을 나온 조합원 B씨도 완강했다. 그는 "사측은 우리 요구를 들어준 게 없다"고 잘라말했다. 사측이 주장하는 분사, 무급휴직, 영업직 전환 등에 대해 그는 "확실한 고용방안이 아니다, (이를 수용한) 노조도 많이 양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성장 내부와 소통하고 있는 노동계 인사들도 "여기까지 왔는데 양보할 수는 없다"와 "여기서 더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는 두 가지 의견이 모두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노조 지도부와 사측의 협상이 끝난 뒤에도 농성장 내부에서는 뜨거운 찬반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폭염... 인권위 긴급구제 조치에도 식수반입 무산

점거농성이 시작된 지 벌써 71일, 이날 낮 최고기온은 32℃까지 올랐고 일부 지역에는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농성장은 열흘 넘게 식수가 끊긴 상태다. 오후 4시 넘어 잠시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해갈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날 오후 2시 30분께 인권단체 활동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등 10명은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 모여 식수반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식수·음식물 반입을 허용하라고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조치를 방해하면 1년 이하 징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문을 당기고 그물막도 걷어냈다. 가족들도 합세해 문을 잡아당기며 "제발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거의 열릴 뻔한 공장 정문은 사측 직원 100여 명에 의해 다시 잠겼다. 이들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웃으며 "안에 물 많이 있다"고 대답했다.

31일 오후, 한 인권단체 활동가가 식수 반입을 요구하면서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을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31일 오후, 한 인권단체 활동가가 식수 반입을 요구하면서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을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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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식수 반입을 요구하면서 정문을 잡아당기고 있다.
 31일 오후,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식수 반입을 요구하면서 정문을 잡아당기고 있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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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회사 쪽 주장에 대해 "들여놓은 식수가 소진된 게 언제인데 그러냐"고 "제가 있던 일주일 전에도 물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씻지 못해 무좀 등 피부병에 걸리고 발가락이 갈라지고 진물과 피가 나와 서 있기도 힘든 사람이 태반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조합원들에 따르면, 현재 파업 노동자들은 밥을 지을 때 생기는 수증기를 모은 뒤 쇳내를 없애기 위해 보리차로 만들어 먹는다. 그나마 페트병 반 개 분량을 15~20명이 나눠 마시는 상황이다. 씻는 물은 유해물질이 섞여 있을지 모를 공업용수나 건물에 맺힌 새벽이슬로 해결한다. 한 노동자는 기자에게 "팬티 한 장 빨아입고 싶다, 물 원없이 마시고 싶다, 덥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여줬다.

미로 같은 농성장엔 층마다 기름통

공장 안은 정말 화약고일까? A씨는 "공권력이 투입되면 조합원이고 경찰이고 모두 죽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공장은 각 층마다 기름통이 배치되어 있고 도시가스도 연결되어 있다. 출구는 옥상 쪽과 건물 1층에 한 개씩을 빼놓고는 다 용접해 잠근 데다가 공장 내부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탈출이 어렵다. 환기구도 별로 없기 때문에 질식사 우려도 크다.

A씨는 "옥상에도 경찰특공대가 오면 불 지른다고 기름통을 가져다놓았고, 심지어 '공장 내 다이너마이트가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불법폭력 논란에 대해서는 억울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지부에서 같은 조합원들은 때리지 말고 참으라고 지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회사 측은 공장 정문 앞 컨테이너 벽에 파업 노동자들의 폭력행위 사진을 붙였는데, 그는 "당시 우리 조합원이 회사 작업복을 입은 용역 직원들에 끌려가 맞고 돌아왔다, 다시 (용역들이) 들어오는데 그래도 참고 위협용으로만 쇠파이프를 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쪽의 폭력이 더 심했든, '회사측 노동자'와 '노조측 노동자'는 그동안 서로 볼트 새총까지 쏘면서 맞서왔다. 노사간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노노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A씨는 "농성장 안에 있는 조합원들이 처음에는 '죽인다, 살린다' 하면서 (사측 노동자들에) 분노했는데, 지금은 '다 같이 끌어안고 가자'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31일 오후 쌍용차 농성자 가족들이 식수 반입을 요구하며 평택공장 앞 정문을 잡고 울부짖고 있다.
 31일 오후 쌍용차 농성자 가족들이 식수 반입을 요구하며 평택공장 앞 정문을 잡고 울부짖고 있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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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관제 데모' 하는 사람들은 사측 관리자이고, 생산직은 정리해고 대상이든 아니든 노조와 뜻을 함께한다"고 주장하면서 "농성장에서 저와 한 방을 쓰던 사람들은 절반이 '산 자(비해고자)'였다"고 전했다.

이날 회견에 나선 조합원들은 자신이 빠져나온 농성장 상황을 "생지옥"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들은 생지옥에 돌아가기 위해 공장 후문 인근 천막에서 밤새 대기 중이다.

A씨는 "나와보니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공황 상태가 됐다, 집에 있는 것보다 공장 쪽으로 나오면 마음이 편하다"고 현재 상태를 말했다.

그는 공장 바깥에서 계속 '구멍'을 찾다가 협상이 타결되면 공장 안으로 들어가 동료들을 만날 생각으로 교섭 상황에 귀를 세우고 있었다.


태그:#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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