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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정도 되는 바세코(Baseco) 지역은, 1970년대부터 수도권에서 무허가로 살던 사람들이 해당지역이 철거된 후 이주해 살면서 형성된 빈민지역이다. 바다와 파식강 인근에 빽빽하게 판자 집을 짓고 1만 가구 이상이 살고 있다. 이 빈민지역은 최근 잇단 대형화재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재활의지가 꺽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 필리핀 빈민촌 '바세코' 주민이 직접 재개발(한겨레신문 2005, 12. 25) -

 

배우 권상우, 송지효, 한효주씨는 봉사활동을 위해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의 바세코라는 지역을 찾은 경험이 있다. 바세코는 그들을 특별한 존재라기보단, 자신들의 친구라고 기억하고 있다.

 

마닐라 항구와 가깝고, 마닐라 시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 6만여 명의 주민들이 너도나도 모이기 시작해 조성된 마을, 마닐라 도시 빈민들의 둥지인 이곳을 우리는 흔히 '빈민촌'이라 부른다.

 

'바세코', 그 곳은 위험하다?

 

뉴욕 할렘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떨까? 특별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위험하고, 더럽고, 접근해서 이로울 것이 없는 곳. 이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라고 추측해본다.

 

바세코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을 받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이곳은 아주 위험한 곳이에요. 특히 밤에는 들어가면 큰일 날수도 있는데 손님은 왜 들어가시나요?"

 

바세코로 가는 길에 택시를 잡아타면 운전기사들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양 이런 말을 건넨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큰 불로 많은 인명피해가 났고, 우기 때나 태풍이 올 때면 마을이 잠기곤 하는 바세코, 거기에 여러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후미진 곳이다 보니 그들 입장에선 그곳을 찾는 외국인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할 만도 하다.

 

거기에 MBC의 국제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 'W'에서는 지난 2006년 바세코에서 인간장기 밀매가 성행하고 있다는 사연을 방영했다. 지독한 생활고가 이들의 장기밀매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쉽사리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바세코가 평범한 곳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바세코는 위험한 곳일까?

 

 

바세코를 주름잡는 '갈리' 아주머니와의 만남

 

7월이 끝나가는 어귀쯤, 난 바세코에서 하루 잘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빚을 내서라도 손님을 후하게 대접한다'는 필리핀 문화 탓에, 빈민촌의 집에 가서 하루 신세를 진다는 게 잠시나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들을 위해 준비한 3㎏짜리 쌀(그들이 절대 돈을 받지 않아 생각해낸 고육지책)을 보면서 위안을 삼으려 노력했다.

 

나는 그 쌀을 들고 '1)카발리캇' 사무실을 나서서 '갈리' 아주머니의 뒤를 쫒았다. 입가에 항상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갈리' 아주머니는 내가 바세코에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게 자기집을 허락해준 분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제멋대로 생긴 미로 같은 길은 질퍽질퍽했고, 각종 쓰레기와 악취가 동네를 감싸고 있었다. 바다 건너 반대편은 항구를 밝히는 야간 조명으로 환했지만, 내가 걷는 바세코는 불그스름한 저녁놀에 의지한 채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찾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집에 도착할 때쯤, 신발 한쪽은 진흙 범벅이 되어 있었고, 다른 한쪽은 동물의 변을 밟아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나무가 여기저기 이어붙어 있고, 슬레이트가 하늘을 가리는 집, 다름아닌 아주머니의 집이었다. 할머니가 돌아오자마자 손자손녀는 뛰어나와 그녀의 품에 안겼다. 아주머니의 남편, '라멀'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너털웃음을 지으며 소리쳤다.

 

"반갑네, 친구!"

 

전쟁 폐허를 방불케하는 바세코, 도대체 왜 그럴까?

 

아주머니의 집은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아늑하고 공간이 꽤 넓은 편이었다. 나무판이 깔린 바닥은 얼마나 닦았는지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였다. 값비싼 장식품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집안 구석구석엔 식구들이 집에 들인 정성을 고스란히 알 수 있는 아기자기함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갈리' 아주머니는 넉넉지 않은 생활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공간이 넓다고 하나, 6남매와 함께 사는 아주머니의 가족이 쓰기엔 빡빡한 집, 생활고에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주머니는 집안의 한 공간을 카발리캇 공부방 프로그램에 귀중한 교실로 내주고 있었다.

 

옆에 있는 '라멀' 아저씨는 또 다시 너털웃음을 지으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이들은 배우고, 또 배워야 하니까!"

 

식구들과 필리핀 식 삼계탕을 저녁으로 먹은 뒤, '라멀' 아저씨의 늦둥이 '빌'과 함께 동네의 몇 몇 집을 놀러가게 됐다. 이들 집 역시 유복해 보이진 않지만, 집 안에 쏟는 정성이 고스란히 눈에 보였다. 집밖을 나서기 무섭게 전쟁 폐허를 방불케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것과는 너무도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돌아오는 길, 주머니가 없는 바지를 입은 탓에 휴지를 들고 걷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빌'은 내 손에 있는 휴지를 뺏더니 길가에 휙 던져버렸다. 주변 몇 몇 사람들을 살펴보니 모두들 손에 든 쓰레기든, 담배꽁초든 휙휙 길가를 던지는 것을 쉽게 살펴볼 수 있었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공공재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곳에서 이들의 공공의식은 희미할 대로 희미해져 있는 상태였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바랑가이홀(우리나라의 동사무소), 소방차와 구급차가 한 대씩 서 있었지만, 도로는커녕 인도조차 없는 이곳에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배수관이 없어 만성적인 홍수에 골머리를 썩어야 하고, 전기선이 안전하게 설치되리라고는 애시당초 기대할 수가 없는 곳이 바로 바세코였다.

 

이런 바세코에서 곧 다가오는 대선에 출마할 계획인 상원의원 말 로하스(Mar Roxas)의 지지는 꽤 높은 편이었다.

 

"그는 일단 자기 발로 찾아와서 우리가 사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어. 건물도 세워주고, 우리들을 돕겠다며 주민들과 함께 회의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의 삶을 함께 고민한다고 약속했어."

 

'라멀' 아저씨는 말 로하스에 대한 소견을 이렇게 밝혔다. 말 로하스의 할아버지 필리핀 초대 대통령인 '로하스', 그 자신은 필리핀 유력가문에 막대한 재력을 자랑하는 사람이기에 사실 그의 진정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고 있는 처지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제까지 방치된 바세코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그들이 스스로 조직한 주민조직이나 외국의 NGO 정도였는데, 자국의 상원의원이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준 것 자체가 그들에겐 희망이었고 커다란 변화였던 것은 분명했다. 바세코 어디를 살펴봐도 정부의 손길이 미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데, 한 정치인의 행보가 그들에게 적잖은 감동을 준 것은 분명했다.

 

 

바세코는 왜 존재할까?

 

필리핀 경제의 중심지 마카티(Makati). 상주인구는 50만명 정도이지만, 낮이 되면 100만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일, 쇼핑, 각종 업무들을 보는 곳 - '마카티'를 설명하는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중 -

 

'갈리' 아주머니의 집은 바세코에서 여느 집 못지 않게 안정되고 부유한 축에 속했다. 마닐라 시청 청원경찰로 일하는 '라멀' 아저씨와 마닐라 항구의 선적회사 직원인 사위가 고정된 수입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가족 역시 바세코에서 벗어나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6남매의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도시로 들어가는 순간, 비싼 집값과 물가 탓에 발붙일 공간조차 구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순기능을 향유하는 사람은 일부고, 그 순기능을 작동하게 하는 일용직 근로자, 청소부, 일반 사무직원 등은 점점 도시 밖으로 밀려나거나 빈민촌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마카티의 유동인구 50만을 설명하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그나마 도시 접근성이 보장되는 빈민촌을 메트로 마닐라는 도시 외곽에 위치한 집단 이주촌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무슨 문제점이 있을까?

 

"난 고향이 민다나오 섬이야.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지만, 직업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거든. 그래서 마닐라가 고향인 남편을 우연찮게 만나게 되었고, 생계를 위해 이곳에 올 결심을 하게 됐어. 바세코에서 우리 집은 그럭저럭 살만하지만, 다른 곳으로 간다면 우린 당장 직업을 잃고 희망이 사라질 거야."

 

'갈리' 아주머니의 말이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메트로 마닐라의 힘든 삶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직업을 통한 생계보장에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로로 도시를 찾는 이들은 손에 쥔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고,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운명을 맡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주지역은 이런 희망조차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주지역으로 꼽히는 몬탈반(Montalban) 역시 메트로 마닐라의 주요 권역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지프니를 최소 한 시간은 타야 한다. 교통체증이 더해지면 출퇴근만 하는데 서너 시간이 우스운 게 메트로 마닐라의 교통상황이다. 다행스럽게도 몬탈반은 다른 지역에 비해 메트로 마닐라에 가까워 직업이라도 구할 수 있단 희망을 가지고 있다.

 

마카티의 철로변에 살던 도시 빈민들이 이주한 카부야오(Cabuyao) 사우스빌(Southvile), 메트로 마닐라에서 차로 세 시간여 걸리는 이 곳은 주변이 쓰레기장이고, 40%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실업률을 자랑한다. 희망이란 단어를 쉽사리 꺼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바세코엔 어렵게나마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고, 직업을 구하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용이하다고 한다. 생계를 이어갈 수 있기에, 그것이 희망이 되기에 바세코는 존재하는 것이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바세코에서!

 

내게 침대가 딸린 가장 좋은 방을 내준 가족들은 거실에 옹기종기 붙어서 하룻밤을 났다. 그러지 않겠노라 20여 분을 실랑이했지만 10명이 넘는 가족들을 난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난 미안한 마음을 안고 하룻밤을 편안하게 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갈리' 아주머니는 내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옴'과 '조엘', 이름만 들어선 필리피노라 착각할 수 있지만, 모두 '갈리' 아주머니 집에서 지낸 한국인들이었다. NGO 활동가로서 바세코를 둘러보기 위해 아주머니 집을 찾았던 이들에 대한 아주머니의 기억은 특별했다.

 

"한국 사람들이 매운 걸 좋아한단 소리를 들었거든. 그래서 '옴' 한테 매콤한 국수를 끓여준 적이 있었는데, 글쎄 '옴'은 매운 걸 잘 못 먹었던 거야.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한 그릇 다먹는데 그게 그렇게 고맙더라고."

 

'갈리' 아주머니는 '옴'의 사진을 보여주며 연신 그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라멀' 아저씨는 지난 달 배우 송지효씨와 함께 바세코를 찾았던 의료봉사단이 자신의 치아를 치료해줬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아주머니의 둘째 딸은 한국의 한 선교단체의 무상급식 프로그램이 바세코 사람들한텐 고마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라기보단 친근한 존재였다. 그래서 난 이들에게서 '우리는 친구'라는 단어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너만 괜찮다면 이번 크리스마스에 우리집에 오는 게 어때? 우리 파티는 제법 재미있는데!"

 

난 얼떨결에 난생 처음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빌'은 아침부터 자신의 친구들에게 외국인이 와서 우리집에 잤노라고 자랑하러 다니기 바빴고, 가족들은 내가 샴푸가 필요할 거라며 일회용 샴푸를 내게 내밀었다.

 

네 달 후,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질 때쯤 '갈리' 아주머니의 집을 다시 찾을 것이다. 만삭인 며느리가 출산을 했을 거고, '갈리' 아주머니의 손자손녀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있을 것이다. 아주머니의 골칫거리인 노처녀 딸에게 애인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귀중한 소식은 아이들이 좀더 안전한 식수를 제공받거나, 전기선이 정비되거나, 인도라도 설치되는 그런 일들이다. 그들만의 왕국 바세코, 과연 필리핀 정부가 몇 안 남은 메트로 마닐라의 빈민촌인 이 지역에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는 우리 모두 지켜볼 일이다.

 

ⓒ 고두환

 

1) 카발리캇 : 카발리캇(KABALIKAT)은 따갈로그어로 '어깨걸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2001년 바세코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스스로 구성한 조직이다. 카발리캇은 주거, 교육, 생계문제에 대해 회원들을 중심으로 함께 고민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사업, 바다소라를 이용한 수공예품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NGO 아시안브릿지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여러 일을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위 취재는 NGO 아시안브릿지가 진행하는 청소년 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세코, #도시빈민촌,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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