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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의 무송헌 종택에서 종손인 김광호 선생과 음료수를 한잔 하면서 선성 김씨 집안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원래의 종택이었으며, 작년에 복원된 '삼판서 고택'에 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삼판서 고택은 고려 말 형부상서 정운경, 정운경 사위였던 고려 말 공조전서 황유정, 황유정의 외손자였던 조선초 이조판서 김담, 이렇게 3명의 판서를 배출한 영주의 대표적 선비가로 이후 선성 김씨 후손들의 종택이 된 곳이다.

 

특히 정운경의 장남이며 조선 개국공신인 삼봉 정도전 선생이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내는 등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무송헌 종택과 이웃한 사당을 둘러본 다음, 해우당 고택으로 갔다. 그 사이 배가 고프다고 조르는 연우에게는 물과 삶은 옥수수를 조금 먹였다. 배고파도 음식을 사 먹을 곳이 없고, 목이 말라도 음료수를 찾을 길이 없는 무섬마을이다. 아이스크림을 찾는 연우에게 점심 먹으러 시내에 가면 사주겠다고 약조를 했다.

 

무섬에서 가장 큰 한옥인 '해우당 고택'은 현재 빈집이다. 종손과 종부가 돌아가시고, 외동딸도 시집을 갔으니 집이 비어 있는 것이다. 양자를 들였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는데, 아무튼 현재는 비어 있어 안타깝다.

 

바깥채는 둘러보는 것이 가능했지만, 안채는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인근 순흥면에 위치한 선비촌(http://www.sunbichon.net)에 복원된 해우당이 있어 여러 차례 둘러보았지만, 공부를 위해서 따라온 연우에게는 미안했다.

 

흥선대원군이 낭인으로 보내던 시절 한 달간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며 이곳에 두 개의 현판을 직접 써 주었다. 하여 해우당 집안에서는 대원군이 직접 써준 현판을 두고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몇 년 전 퇴직한 경향신문의 김지영 편집인이 '학창시절 방학 때면 고향에 내려와 큰 집인 해우당에서 먹고 자면서 공부했다'라고 자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고모부인 조동탁 선생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너무 더위 동탁 조지훈 선생의 처가 김뢰진 가옥을 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리 가족은 강으로 갔다. 모래사장을 걷기에는 힘이 들었지만, 수도교 아래에는 그늘이 있고, 피서 온 사람들과 아이들이 노는 물속은 즐거워 보인다.

              

 

연우도 목마르고 배고프다고 온갖 투정을 부리더니만, 신발을 벗고 물로 들어가서는 더 놀다 가겠다고 난리다. 나도 연우랑 같이 놀다가 배가 고파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무섬마을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가려 했지만, 지리를 잘 모르는 관계로 시내로 갔다. 어디로 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망동 성당 뒤편에 있는 '묵밥과 순두부를 잘하는 식당'으로 갔다.

 

대학을 다니던 20여 년 전부터 다니던 기억이 나는 오래된 식당으로 순두부가 특히 유명한 곳인데, 나와 집사람은 묵밥을 먹고 연우는 순두부를 시켜서 먹었다. 오후 1시 30분이 지난 시간임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밥을 먹고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슈퍼에 들러 연우에게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준 다음, 영주에 몇 군데 있는 전통된장공장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산면 지동리로 이동했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지은 흑석사를 지나 석포다리를 건너 다시 봉화군 방향으로 3km쯤 더 가면 지동리 마을회관 앞에 '무수촌 된장마을'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키 작은 입석과 두 장승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산면이라고는 해도 거의 봉화읍에 가까운 곳이다.

       

 

나란히 장승을 세워둔 공장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옹기들이 가득한 담장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작은 연못과 잘 가꾸어놓은 화단 등으로 꾸며져 있는 정원에서 이러 저리 둘러보던 우리 가족을 발견한 박인숙 촌장이 어디에서 왔냐며 인사를 건넨다.

 

겉은 옛 모습 그대로인지 몰라도 안은 요즘 유행하는 한옥 인테리어로 꾸민 듯이 깔끔하고 나무랄 데가 없다. 벽 쪽으로 붙여놓은 원목 테이블 위에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된장 제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박인숙 촌장이 도시 생활을 접고 이산면 지동리에 있는 남편의 옛집으로 들어온 것은 10년 전 쯤의 일이라고 한다. 옥천 전씨 종택과 나란히 있는 전통한옥과 공장이라 간혹 종가라는 착각을 받는다는 무수촌의 장 담그기는 지금도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계속되고 있단다.

 

전작으로 키운 지역의 우리 콩을 선별하여 가마솥에 담고 장작불로 불을 지펴 삶는다. 삶은 콩을 메주로 만들어 짚으로 동여매 황토방에서 말려 띄워서 된장을 담그고, 유약을 바르지 않은 천연 황토 옹기에 된장을 담는 것이다.

 

당일은 서울에서 친척 분들이 오신다고, 방안에 크고 성대하게 점심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 가족은 뽕잎차를 한찬 얻어 마시고는 식사하는 모습과 집 내 외부, 된장 공장의 전경을 촬영한 다음, 된장 1KG을 사들고 급히 나왔다.

 

서울에 돌아와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서 온 가족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된장 맛에 까다로운 연우도 좋다고 했다. 나도 맛있게 먹었다.

 

된장공장에서 나와 마을 입구에 위치한 전우영 선생의 '국화분재원'에 갔지만, 아무도 없어서 그냥 돌아 나왔다. 3대째 국화분재를 하고 있는 이곳은 국화모종과 분재로 아주 유명한 곳이라 꽃을 좋아하는 연우와 집사람에게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지만, 아무도 없어 어찌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이웃한 두월리에 소재한 괴헌고택(槐軒古宅)이다. 영주에서 유일하게 개인이 고택 민박을 하는 곳으로, 이미 기본계획고시가 끝난 영주댐이 2014년 완공되면 수몰되어 이주 복원이 불가피한 곳으로 두 번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방문하게 되었다.

    

 

가뭄과 홍수 등 풍수해가 거의 없고, 소백산의 맑은 1급 생명수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영주에 하류의 대도시 주민들에게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가는 댐을 만든다고 과연 영주사람들이 행복해질까?

 

모든 나라 일이 현지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되고 결정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소중한 국토는 분명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과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 후손들의 것이니까. 

 

괴헌고택 대문 앞의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주차장을 보면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고택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형광노란색이었건만 묘하게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판벽(板壁)과 잘 어울렸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의 첫 느낌도 정갈함에서 크게 멀어지지 않았다. 이제 막 세수를 한 것 같은 해맑은 얼굴로 고택은 이방인을 맞아주었다. 집 한 채가 더 들어서도 될 것 같은 넓은 바깥마당에는 안채로 향하는 길과 사당으로 통하는 두 길만이 깔끔하게 손질된 푹신한 잔디 위에 징검다리처럼 박석(礡石)을 놓아 연결시키고 있었다.


태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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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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