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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일요일 밤에> 한 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
 <일요일 일요일 밤에> 한 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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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四面楚歌). 고립무원(孤立無援). 진퇴양난(進退兩難).

모두 MBC 일요일 오후를 책임지는 간판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의 현재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끝을 모르고 떨어지는 시청률, 한 달에 한 번 꼴로 생겼다 폐지되기를 반복하는 코너들, 코너들 간의 잦은 순서 교체 등등…. 현재 <일밤>은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일 방영된 <일밤>의 1, 2부 시청률은 각각 4.9%(TNS미디어코리아)와 5.0%(이하 동일 기준)로 가히 애국가 시청률 수준이었다. 경쟁작 SBS <일요일이 좋다>와 KBS <해피선데이>가 14~15%대의 시청률을 올리는 것에 비교하면 참담한 지경이다. 지난 20여 년 간 주말 안방극장을 책임지며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러브하우스> 등 수많은 히트코너를 만들었던 <일밤>의 옛 위용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크게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일밤>의 간판 코너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에 있다. <일밤> 제작진이 이 '우결 프레임'에 갇혀 지난 1년간 이도저도 못하는 동안 시청자들은 다 떨어져 나갔다. 2007년 추석 파일럿 방송이 나간 뒤 2008년 정규 코너로 자리 잡은 '우결'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타 방송사의 경쟁 코너인 KBS '1박2일'과 SBS '패밀리가 떴다'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화제성은 그들보다 한참 위였다. 남녀 연예인 두 명이 가상 결혼생활을 한다? 신선한 발상이었다. 여덟 청춘 남녀, 네 커플이 각자의 공간에서 벌이는 달콤한 신혼 이야기에 시청자, 특히 젊은 여성 시청자들은 빠져 들었다. 2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은 인기와 화제성에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전리품 같은 것이었다. '우결'의 기세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우결' 에피소드 반복이 <일밤> 시청률 하락 불러

그러나 인기는 길지 않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식상하다'는 의견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시청률이 조금씩 떨어졌고, 이내 '우결 위기론'까지 등장했다. 실제로 '우결'은 갈수록 식상해져갔다. 가상 커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의외로 많지 않았다. 몇 번의 데이트, 몇 번의 이벤트, 작위적인 갈등과 화해. 이런 일들이 몇 차례 반복되고 나니 소스는 점점 고갈되고, 뭘 해도 비슷비슷, 재미가 없었다.

그러자 제작진에서는 기수제를 도입했다. 최초에 인기를 끌었던 커플들을 하차시키고, 새로운 얼굴을 투입시켜 식상함을 반전시키려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효과적인 타개책이 되지 못했다. 최초의 1기 커플들은 그나마 '캐릭터'라도 뚜렷했다. 신상녀 서인영, 힙합남 크라운J, 로맨티스트 알렉스, 진상남 정형돈, 솔직녀 솔비 등등, 개성 있고 뚜렷한 캐릭터를 갖췄던 1기 커플들에 비해 새로운 2기 커플들은 캐릭터도 구축하지 못했다.

이휘재·조여정 커플과 최진영·이현지 커플은 채 캐릭터를 구축하기도 전에 하차했고, 환희·화요비 커플과 손담비·마르코 커플 역시 이미 선배 기수들이 다 한 번씩 해봤던 '커플 놀이'를 반복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1기 말미에 등장하여 '쌍추커플'이란 별명으로 활약했던 김현중·황보 커플 정도가 캐릭터 구축에 성공한 케이스였다. '우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단행됐던 새 얼굴 전략은 철저하게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제작진은 '우결'을 포기하지 않았다. 2기 커플들을 하차시키고 이내 3기 커플들을 내세웠다. 소녀시대의 태연과 슈퍼주니어의 강인을 캐스팅해 아이돌 그룹의 팬덤 효과를 노렸다. 원년멤버 정형돈을 내치기 어려웠던 제작진은 이미 한 차례 커플 경험이 있었던 그를 태연과 짝지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3기 커플 체제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이미 그동안 수차례 반복되어온 에피소드의 반복에 더 이상 시청자들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3기 커플 체제의 막을 내린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것은 바로 정형돈의 열애설이었다. 이는 '우결'이 시작하기 전 제작진이 내걸었던 '실제로 연애를 진행 중인 연예인은 섭외하지 않겠다'는 공약과 상반되는 것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페이크 연애담'을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보이게 하려 했던 '우결'이란 프로그램이 갖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실제 커플 투입' 극약 처방에도 '시청률 혼수상태'

<일요일 일요일 밤에> 한 코너인 '좋은몸 나쁜몸 이상한몸'
 <일요일 일요일 밤에> 한 코너인 '좋은몸 나쁜몸 이상한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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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같이 정해진 형식이 없는 프로가 아닌 다음에야 모든 예능은 그 형식을 벗어날 수 없다.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이 인기 있는 프로도 매주 장소만 바뀔 뿐, 등장 인물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비슷비슷하다. 그런데 왜 유독 '우결'만 식상하단 지적이 많았던 걸까? 등장인물들의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렉스가 신애를 향해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주고 발을 씻겨줘도 그게 연출된 것이란 걸 시청자들은 알기 때문이다.

'우결'의 본질은 가짜 사랑 이야기다. 그들의 신혼집은 세트고, 두 남녀는 그 세트 안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다. 그들은 부끄러운 얼굴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지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방송이 끝날 때까지 서로의 연락처도 몰랐다고 말한다. 시청자들은 이미 이걸 다 알고 있는 상황. 예능이라기보다는 시트콤에 가깝다. 그런데 그 시트콤이 주연배우만 바뀌어서 주기마다 똑같은 에피소드를 반복한다면? 빤한 내용을 누가 계속해서 보겠는가?

여기서 끝냈다면 좋았을 테지만 제작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올리며 남부러울 게 없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가상 커플이 아닌 실제 커플을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하던 것에서 벗어나, 아예 진짜들을 데려와 제대로 찍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섭외부터가 쉽지 않았다.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 커플들은 사생활 노출 등을 이유로 출연을 꺼렸다.

결국 유일하게 섭외된 김용준·황정음 커플만을 데리고 방송 분량을 채워야 했다. 실제 커플이 등장하여 보다 진지하게 사랑과 연애, 결혼을 논하고, 그들의 크고 작은 갈등과 화해 등을 다루는 모습은 처음 '우결'이 등장했을 때처럼 신선했다. 그러나 한 번 이탈한 시청자들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실제 커플 투입이라는 초강수를 뒀음에도 '우결'의 시청률은 반등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밤>의 위기는 계속됐다.

4개월 사이 5개 코너가 생겼다 사라진 <일밤>

<일밤>의 한 쪽에서 <우결> 프레임에 갇힌 제작진이 차마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소모적인 출연진 교체만 단행할 동안, 다른 한 쪽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중장년 시청자 층으로부터 인기가 좋았던 <세상을 바꾸는 퀴즈>(이하 <세바퀴>)가 지난 3월 독립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토요일 저녁 시간대로 빠져나간 뒤, 그 공백을 메울 마땅한 대체 코너가 없었기 때문.

톱MC들을 대거 기용했던 <MC생태보고서 대망>(이하 <대망>)과 <퀴즈프린스>는 각각 방송 5회와 6회 만에 막을 내렸다.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를 전면에 내세웠던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이하 <공영소>)와 <소녀시대의 힘내라 힘!>(이하 <힘내라 힘!>) 역시 각각 방송 6회와 2회 만에 폐지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새로 시작한 <좋은 몸 나쁜 몸 이상한 몸>(이하 <몸몸몸>) 역시 방송 한 달 만에 폐지가 결정됐다.

불과 네 달 사이에 5개의 코너가 새로 생겼다 사라졌다. 평균 방송 기간이 채 한 달이 안 되고 <힘내라 힘!>의 경우 고작 2회 방영 이후 폐지됐다. 아무리 재미없는 프로그램, 코너일지라도 일단 시작했으면 개편기간 때까지는 기회를 줬던 방송가의 관례를 비추어 볼 때 이는 파격에 가깝다. <일밤> 제작진이 이런 파격을 단행한 까닭은? 물어볼 것도 없이 시청률 때문이다.

경쟁작 <해피선데이>는 '1박2일'이 중심을 잡고 새 코너 '남자의 자격'이 빠르게 안정되어 가고 있고, <일요일이 좋다> 역시 '패밀리가 떴다'와 '골드미스가 간다' 체제로 안정세에 오른 지 오래인데 유독 <일밤>만 저조한 시청률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조급증이 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청률이 안 나오는 메인 코너 <우결>을 받쳐줄 만한 서브 코너의 부재는 <일밤> 제작진을 실험대 위로 올려놓았다.

제작진의 무성의함과 안일함이 문제의 원인

네 달 사이 선보였던 5개의 신설 코너들이 모두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졌던 이유는 단순하다. 제작진의 무성의함, 안일함이 그대로 코너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대망>은 최초 '제작진 VS 출연진'의 다소 독특한 콘셉트로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큰 호응이 없자 이후 우리 사회의 작은 영웅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코너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콘셉트 역시 시청자에게 외면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퀴즈프린스>는 지금까지 지겹게 반복되어 온 '퀴즈' 형식의 코너. 게다가 이 코너의 본질은 MC들의 입담과시였다. 신동엽, 김용만, 김구라, 이혁재 등 이름 있는 MC들을 한데 불러 모아 그들의 입담에 소위 '빵 터지는' 개그가 나오길 바랐던, 지극히 안일한 발상에 기댄 코너였다. 소녀시대를 앞세운 <공영소>와 <힘내라 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돌 그룹의 팬덤 효과에 기댄 무성의한 기획에 시청자들은 주목하지 않았다.

최근 폐지가 결정된 <몸몸몸>은 전문가로부터 질병 정보와 건강 상식을 배운다는 콘셉트로 이는 한 때 높은 인기를 누렸던 <건강보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온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주말 저녁 시간대에 여자 모델이 수영복을 입고 보기 민망한 자태를 뽐내며 시청률 상승에 일조하려 했던 <몸몸몸>은 결국 시청자들에게 제시카 고메즈의 완벽한 8등신 몸매만 기억시킨 채 막을 내리게 됐다.

'모험'을 하지 않으면, 시청자 마음 얻기 힘들어

<일요일 일요일 밤에> 한 코너인 '오빠밴드'
 <일요일 일요일 밤에> 한 코너인 '오빠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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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편될 예정인 <일밤>에서 그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오빠밴드>는 개중 그나마 나아 보인다. 주말 저녁 버라이어티에서는 신선한 '밴드'라는 소재와 신동엽, 유영석, 탁재훈, 김구라, 성민, 정모, 서인영으로 이뤄진 멤버들의 신구 조합도 안정적이다. 예능은 초보이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엄격한 유영석은 '유마에'가 되고, 베이스 기타만 잡으면 진지해서 웃음을 잃는 신동엽은 진지남이 되는 등, 빠른 캐릭터 구축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명색이 밴드를 소재로 하는 버라이어티 쇼라면 음악적으로 뭔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비록 서툴고 어색하더라도 회를 거듭할수록 실력이 나아지는 모습, 진정성이 엿보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오빠밴드>에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실력 향상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구태의연한 몰래카메라를 퉁해 멤버들 골탕 먹이기로 웃음을 주려 한다면 이 역시 시청자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경규가 간다> <느낌표!> 등의 공익 버라이어티로 유명한 김영희 PD는 얼마 전 <무릎팍도사>에 나와 <이경규가 간다>의 탄생 비화를 들려준 적 있다. <일밤>이 경쟁 프로에 심하게 뒤지고 있던 그 시절, 새 코너에 대해 모두가 내놓는 아이디어라고는 기존의 인기 있던 코너들을 살짝 바꾼 것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 것으로는 시청자들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고민했고, 끝내 <이경규가 간다>라는 명코너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전혀 새로운 것이든, 아니면 예전에 인기 있었던 코너에 변화를 줘 다시 만든 것이든, 중요한 것은 시청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일밤>에는 그것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다. '과거에 인기가 있었으니까 비슷하게 다시 만들어도 봐주겠지', '입담 좋은 MC들한테 맡겨놓으면 알아서 잘 하겠지', '인기 절정의 아이돌 그룹이 출연하니까 시청률 나오겠지'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면, 위기의 <일밤>에 미래는 없다.


태그:#일요일일요일밤에, #우리결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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