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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드라마 속 인물들 중에서 악인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시청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거나,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최근 몇 해 전부터 악인으로 등장하더라도 캐릭터 면에서 설득력을 얻거나, 연기력이 뒷받침된다면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악인들을 칭찬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다만, '그럴 수도 있다'라는 인정과 연기력에 대한 칭찬 정도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통용되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시간이 흘러 악인에게도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시대에 구시대적 캐릭터를 띠고 막무가내 식으로 드라마 속에서 악의 축 역할을 하는 이들이 말이다.

그래서 인정받는 악인과 그렇지 못한 악인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드라마를 보는데 있어 쏠쏠하다. 우선 요즘 들어서 여성 연기자들이 악녀로 분하는 사례가 많은데 얼마 전 종영된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는 전자 쪽에 해당하는 캐릭터이다.

악녀라고 해서 다 같은 악녀가 아니란다!

 세 명의 악녀의 공통점은 어느 정도의 설득력으로 시청자들에게 미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얻고 있는 악녀라는 점이다.
세 명의 악녀의 공통점은 어느 정도의 설득력으로 시청자들에게 미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얻고 있는 악녀라는 점이다. ⓒ sbs,IMBC
백성희(김미숙 분). 엄마라는 이름 아래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찬란한 유산>의 갈등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남편이 죽자 보험금을 가로 채고 엄마라 부르는 자폐아 은호(연준석 분)와 은성(한효주 분)을 거리로 내몬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승미(문채원 분)를 위해서였다고 항변하는 그녀이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핏줄인 승미에게만 엄마 노릇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맞다. 그러한 악행은 자신의 딸 승미의 행복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자신의 물질만능주의가 한몫을 하기도 했다. 그러한 악행은 결국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 비뚤어진 모성애에서 기인했다.

여기에 그녀의 불행한 첫 번째 결혼이 작용했다. 돈을 벌지 않고 술만 먹으며 자신과 딸을 학대하던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안정적인 가정에서 적당한 경제력을 누리고 싶었던 백성희였다. 그래서 그러한 엄청난 갈등을 일으키며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악행을 감추기 위해서 또 다른 악행을 서슴없이 감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백성희는 <찬란한 유산>에서 진정한 악녀로 통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행동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그녀가 행한 행태는 잘못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심정이 어떤 것임을 아는 시청자들은 그녀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여기에 그의 딸 승미도 <찬란한 유산>에서 제2의 악녀로 등장했는데, 그녀의 캐릭터의 경우 처음부터 악녀는 아니었다. 오히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악행이 용서까지 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녀는 선우환(이승기 분)를 좋아하는 마음에, 그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서 엄마의 악행을 눈감아주고 동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수년 동안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면서도 그대로 옆에 둔 선우환이였기에 그를 놓지 못하는 집착으로 인해 악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또한 후반부에서 선우환을 잡을 수 없음을 깨닫자 엄마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자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그래서 승미의 경우는 악녀라고 단정 짓기에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이러한 캐릭터 덕분에 승미에게 시청자들은 비난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포현하였다.

이러한 악녀는 사극에도 있다. 바로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분)이 그러하다. 물론 그녀의 악행은 백성희와 승미를 뛰어 넘는다. 황후가 되기 위해 권모술수를 모두 동원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

자신을 믿었던 진흥왕(이순재 분)을 독살하려 했으며, 진지왕(임호 분)을 이용해 황후가 되고자 했으며, 허수아비 진평왕(조민기 분)을 왕으로 추대해 권력의 힘을 이용한다. 그러한 악행은 분명 용서받기 힘들지만 그녀의 과거를 보여줌으로써 권력에 왜 집착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시청자들을 설득했다.

이처럼 세 악녀는 비난과 동시에 연민 혹은 동정을 느끼게끔 함으로써 과거 무조건 비난받는 악녀와는 확연히 다른 위치에 서있다. 물론 세 명 배우 모두 훌륭한 연기를 펼쳐 악녀 캐릭터 이미지를 좀 더 희석시킨 공이 크지만 분명한 것은 단편적인 악녀의 모습에서 좀 더 다각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입체적인 악녀를 탄생시킨 제작진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차화진은 분명 악녀로 등장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녀를 싸이코로 생각한다.
차화진은 분명 악녀로 등장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녀를 싸이코로 생각한다. ⓒ IMBC

이건 악녀가 아니라 사이코야!

반면 평면적 악녀로서 모든 시청자들의 미움을 한몸에 받고 있는 여성이 있다. 바로 <밥줘>의 차화진(최수린 분)이다. 그녀의 악행은 이미 내연녀라는 신분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고 있는데, 이는 그녀의 연기력보다는 캐릭터의 문제이다.

오히려 그녀는 너무나도 뻔뻔한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 미움을 더 사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영란(하희라 분)의 남편 선우의 첫사랑이다. 첫사랑이었던 그녀는 유부남이 된 선우와 불륜을 저지르고 부인이 알게 되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도 당당하다. 영란에게 찾아가 "당신은 대외용이고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선우가 이혼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자신은 책임 같은 건 맡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영란이 외도를 하자 꽃뱀을 선언하면서까지 선우의 이혼을 막으려 한다.

그리고 아주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사랑을 즐기고 싶을 뿐이라고!" 이러한 화진의 행동에 시청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이미 초반부터 그녀의 몰염치는 극에 달해 영란의 자매 영심, 영미가 차례로 찾아가 폭력을 행사해도 아무런 비난의 목소리가 일지 않았을 정도다. 그야말로 '매를 버는' 여자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그래서 화진은 시청자들로부터 동정을 얻기보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높다. 그런데 이러한 비난의 목소리 핵심은 화진이란 인물이 정상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개 내연녀들이 처음부터 이혼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연애 상대로 만족하지만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커지면서 당연하게 이혼을 요구하는데, 화진은 그러한 인물과는 다르다.

이러한 점은 불륜이 식상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꾀를 낸 것인데, 그 꾀가 화진을 점점 사이코로 만들어가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화진은 내연녀로서 악녀로서 본색이 강하기보다는 오히려 '사이코' 본색이 강하다.

머리를 다치고 기억상실증에 걸려 회복했지만 그것을 숨기고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기도 하고, 영란이 부잣집 남자와 사랑에 빠질 것으로 보이자 불쾌한 마음에 꽃뱀 선언을 하고, 선우와는 로맨스를 즐기려는 비상식적인 캐릭터가 되어 그녀를 바라보는 시청자들로부터 사이코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결국 평면적인 악녀의 캐릭터와 사이코적인 기질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화진이란 인물은 일말의 동정심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악을 지르고, 악행을 서슴치 않는 다른 악녀들보다 더 시청자들에게 욕을 듣고 있다.

사실상 이러한 캐릭터가 많아질수록 드라마의 질은 떨어진다. 좀 더 악인이 악인다운 모습이어야 하는데 단지 주인공과의 상대적인 수단으로 사용되기 위한 캐릭터는 분명 시청자들로 하여금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당분간 화진은 더 많은 욕을 먹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악녀 `#드라마 속 캐릭터 #화진 #백성희 #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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