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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평택역, 이정희 의원 "쌍용차 투쟁은 '함께 살자'는 원칙으로 이기주의를 깬 투쟁이다"

 

드디어 비가 내렸다. 3주 가까이 목마름과 더위에 시달렸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그들을 지켜보는 가족과 시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비였다.

 

석 달여간 지속되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이 어제 일단락되었다. 가족과 시민들이 노동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평택역에 모였다. 가족대책위 박미희씨는 "협상안이 많이 미흡해요. 그래도 일단 나온다니까 좋아요. 두 달을 못 봤으니까요. 며칠 사이 그저 남편이 다치지 않기만 바랐어요. 일단 전화로는 안 다쳤다고 하는데, 다쳤다고 해도 숨길 사람이니까... 아직도 너무 걱정돼요"라며 안도와 걱정을 동시에 내비쳤다.

 

 

이정희 의원은 " 쌍용차 투쟁은 '나만 살 수 있으면 된다'는 현장의 이기주의를 우리가 아파하면서 이겨낸 투쟁' 이다.

이 투쟁이 이후 '새로운 시기'를 열 것이다"라며 가족과 시민들을 격려했다.

 

처음엔 공장에서 1차 조사를 받은 후 평택역으로 모인다고 했으나, 시간이 늦도록 그들은 오지 않았다. 한상균 지부장을 포함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간부들은 먼저 평택경찰서로 이송되었다. 나머지 조합원들은 수원, 안산 등 여러 경찰서로 나뉘어 이송되었다고 했다.

 

가대위 회원들과 함께 평택서로 향했다. 석 달을, 그 중에서 요즘 며칠간을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엄마들은 초조해 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들어가기 전에 봐야 하는데... 어제 꿈에도 남편이 나와서 먼저 기다리고 있더라고. 진짜 꿈이 맞네."

"엄마, 구치소가 뭐야?"

"경찰이 사람을 잡으면 데려다 놓는 데야." 

그 말을 듣자 아이는 "무서워, 안 갈래!"하며 떼를 쓴다. 석 달간 수없이 봐 왔던 경찰은 아이에게 무서운 기억인가 보다. 그래도 "그럼 아빠 못 보는데?" 하는 말에 금세 잠잠해진다. 그리움이 무서움을 이겼다.

 

이정아 가족대책위 대표에게 심경을 물었다. "그저 크게 안 다치고 나온다니까, 그것만으로 너무 기뻐요.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저희도 (사측으로부터) 손해배상이 걸려 있긴 해요. 일단 조사받은 후에 민사, 형사상 고소고발 문제는 또 사측과 협의하고 그런다니까(법정관리 이후에 상황이 잘 되면 무마해준다고 했다) 일단은 이후에 생각해야죠."

 

협상안에 대해서는 "아쉽죠... 80여일이 넘도록 물도 약품도 음식도 없이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면서 버틴 건데... 결국 사측 주장이 크게 반영되는 식이라... 우리는 정부를 상대로 싸운 건데, 정부는 지금까지도 책임 안 지고 방관하고 있잖아요. 사측도 회사가 엉망이 된 건 다 노조 탓이라고 하면서 (사측에 유리한 협상안을) 마치 대단한 선처를 베푼 양 말하는 게 억울하기도 해요"라고 했다.

 

9:10 평택경찰서, 가족들의 웃음과 눈물

"여보, 나오면 꼭 안아줄게. 당신이 자랑스러워"

 

평택서에 도착했다. 호송차에서 조합원들이 내렸다. 구호를 외치며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에게 가족들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경찰에 막혀 손도 못 잡아보는 것이 가슴 아팠던지 한 부인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 어깨를 다른 부인이 감싸안았다.

"여기서 더 강해져야 해."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곽정숙 의원 등이 찾아왔다. 가족들의 면회를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협의 끝에 의원단과 가족 몇몇은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면회 후 강 대표는 "협의 내용이 많이 부족합니다. 노조가 합의한 건 예외적입니다. 그러나 큰 참사가 우려될 수 있는 사안이기에 노조가 큰 결단을 내린 거라고 봅니다. 참사를 바라지 않는 국민의 염원, 가족의 염원을 들은 것입니다"고 말했다. 덧붙여 "조합원 분들의 건강상태는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단, 정신적인 고통이 큰 것 같습니다. 먼저 정서적 안정을 취한 후에 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협의중입니다"고 했다.

 

남편을 보고 온 정아씨의 얼굴은 환했다. "일단 다들 건강해요. 지금 빵이랑 김밥이랑 먹고 있어요." 당장 함께 집에 가진 못하더라도, 남편이 제대로 밥을 먹는 모습만으로도 기쁜 듯 했다.

 

그러나 굴뚝에서 농성했던 서맹섭씨는 가슴 통증과 정서불안 등으로 식사를 못 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부인 김지완씨가 잠든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눈물이 터져나왔다. 맹섭씨는 비정규지부의 부지부장이었다. 굴뚝에 오른 그의 절박함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가족의 마음도 타들어갔으리라.

"만나면... 만나면... 일단 꼭 끌어안아주고 싶어요. 푹 쉬게 해 주고 싶어요. 지금 잘 걷지도 못한다고 하던데... 정당한 투쟁을 한 건데 어찌 사람을 이렇게 취급할 수 있는지..."

 

 

한상균 지부장의 부인 장영희씨도 도착했다. 의원단의 도움으로 면회를 마치고 나온 영희씨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눈은 붉었다. "12월부터 쭉 못 봤었는데... 자기는 건강하니까 면회 너무 자주 오지 말라네요..."

 

남편을 보지 못한 한 부인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취재 카메라에 대신 마음을 전했다.

"여보, 사랑해. 나오면 꼭 안아줄게! 당신이 자랑스러워."

 

 

11:20 평택역, 조합원들 "합의 결과는 착잡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남았다.

일단 가족을 끌어안고 싶어"

 

밤 11시 경, 평택역 앞에서는 풀려난 쌍용차 조합원들이 모여 보고대회를 가졌다. 침낭과 버너, 랜턴이 놓여 있었다. 가끔 밤마다 세상을 향해 '우리 아직 살아 있다'고 깜박이던 그 랜턴들이었다.

 

경찰서에 있는 조합원들의 상황을 공유한 후, 그들은 힘차게 <철의 노동자>를 불렀다. 지친 모습이지만 기운이 넘쳤다.

 

조합원 중 최고령자인 박문점씨가 '대표 발언'을 하고, 강 대표를 비롯하여 동지들과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나 합의 결과에 대해서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퇴직을 16개월 앞둔 문점씨는 5월 20일부터 집에 한 번도 안 들어가고 투쟁해 왔다. 후배들이 있을 곳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쉬움이 많아요. 전쟁에서는 2등이 없는데, 2등을 한 기분입니다. 투쟁 중간에 못 이기고 나간 사람들이 아쉬워요. 어제(5일) 오전까지만 버텼으면 이겼을텐데..."

 

조합원 이아무개씨의 손가락을 보았다. 살점 한 부분이 완전히 떨어져나갔다는 상처에 오랫동안 갈지 못한 더러운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래도 이건 '다친 축'에도 못 든단다. 이씨는 "가장 먼저 마누라를 꽉 끌어안고 싶어요. 가족대책위 하면서 고생 많았고. 많이 눈물나게 했으니까 안아주고 싶어요. 요 며칠간은 휴대폰도 꺼놨었어요. 전투중이라 전화받을 여유도 없고 괜히 걱정만 시킬까봐..."라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보였다.

 

그 역시 합의 결과에 대해서는 "착잡하다"고 했다. " 착잡하죠.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으니까. 합의하고 나서, 사측이 오늘 12시까지 공장을 비워달라고 해서 급하게 정리해서 나와야 했어요. 집행부에서 합의 도장 찍고 이것저것 뒷마무리 할 기회마저 없었죠. 이것마저 사측과 정부의 꼼수 같아서 찜찜합니다. 또, 열심히 싸운 동지들 중 상당수가 회사에 정이 떨어졌어요. 어제 나간 분들 대부분이 희망퇴직 신청했습니다."

 

 

그래도 '동지들 때문에' 도망치지 않았다는 이씨. 그 옆에 선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피로함보다 함께 살아남았다는 '짠'한 마음이 배어 있었다. 쌍용차 투쟁은 2등의 상처와 함께 1등의 동지들을 남겼다.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은 bluepicture.tistory.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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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쌍용자동차, #쌍용차 사태, #파업, #정리해고,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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