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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인 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 단풍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 말라버린 나뭇잎 꺽인 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 단풍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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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입추(立秋)란다.
실감이 나진 않지만, 자연의 시간을 따라 피고지는 가을꽃 피어나니 가을은 그렇게 어김없이 오는가 보다.

가을이 왔나 싶어 나무를 바라본다.
바람에 꺽인 나뭇가지에 달렸던 나뭇잎이 비썩말라 대롱대롱 달려있다.

처음 새싹을 피웠을 때 그들에게도 꿈이 있었으리라.
그 꿈 속에는 차마 이렇게 가을이 오기 전 말라버리는 꿈은 없었을 것이다.

잠시 쉬었다 가자고 거미줄이 붙잡았는지, 아니면 나뭇잎이 붙잡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떨어진 나뭇잎 잠시 쉬었다 가자고 거미줄이 붙잡았는지, 아니면 나뭇잎이 붙잡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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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말라비틀어지고, 떨어지다 거미줄에 걸려있는 나뭇잎을 보며 가을을 맞이한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네 신세와 다르지 않구나 생각하니 서글프다.

'워킹푸어(working poor)'라는 신조어, 영락없이 나의 이야기이다 보니 반갑지 않으면서도 절대적인 빈곤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는데 행복한 거지 위로를 받는다.

어렸을 적에 나는이렇게 배웠다.
열심히 땀흘리며 성실하게 살면 등따시고 배부르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갑부는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소박하게 살아가면 의식주 문제로 걱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어른이 되고, 이제 다른 일이라고는 할 수 없는, 오로지 지금 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고 보니 현실은 배운대로가 아니다. 너무 늦게 알았다.

안간힘을 쓰며 단풍을 들여보려고 하지만 뜨거운 햇살에 몸이 타들어갈 뿐이다.
▲ 떨어진 나뭇잎 안간힘을 쓰며 단풍을 들여보려고 하지만 뜨거운 햇살에 몸이 타들어갈 뿐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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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쩔 것인가?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예의도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원하지 않아도 일터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 때론 강제로 쫓겨나는 것도 모자라서 매맞으며 쫓겨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렇게 떨어져버린 나뭇잎도 있는데 '워킹푸어'든 뭐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나뭇잎이 좀 일찍 떨어졌다고 슬퍼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냥 그렇게 떨어지는 나뭇잎도 있는 것이고,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인데 나뭇잎 하나 떨어졌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지만, 오늘 가을을 타는지 슬프다.

이제 흙으로 돌아가 편히 쉬고 싶다, 돌아가기전 하늘을 호흡하고 싶다.
▲ 떨어진 나뭇잎 이제 흙으로 돌아가 편히 쉬고 싶다, 돌아가기전 하늘을 호흡하고 싶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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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처지가 슬픈 것이 아니라 새싹을 낼 때나 여름 햇살에 짙푸를 때나 떨어져 거미줄에 기대어 있을 때에나 흙으로 돌아갈 때나 그들은 한결같은데 왜 나는 그렇지 못한가 슬픈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슬피우는 것은 그 사람을 잃은 슬픔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 때문이라는 말도 있듯이, 떨어진 나뭇잎을 핑계삼아 울고 싶은 것이다.

가을, 사계절 중에서 나는 여전히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의 간격이 가장 적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만인에게 가장 평등한 계절, 그것이 가을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보니 이제 내 삶도 가을이었다.
이제 가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 좋은 계절 먹고사는 그 거룩한 일을 넘어서서 소유욕을 채우기 위한 삶을 산 것이 억울하기도 하다.

제 몸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벌레조차도 보듬고 있는 나뭇잎
▲ 벌레먹은 나뭇잎 제 몸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벌레조차도 보듬고 있는 나뭇잎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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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나뭇잎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벌레먹은 나뭇잎, 그래서 온전히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멋드러진 단풍일랑 꿈을 접어야할 나뭇잎도 있다.

제 몸 야금야금 갉아먹는 벌레조차도 보듬고 있어야 하는 그의 운명, 그가 있어 또 다른 생명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부모님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살아왔으며, 우리 또한 자식들의 먹이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따라가는 삶이다.

벌레들도 예의를 지켜 이 나뭇잎 저 나뭇잎 마구 갉아먹지 않는다.
나뭇잎 몇 개를 선별해서 그것만으로 충분히 배불리 먹으면서도 나무가 그 생명을 이어가는데 지장이 없게 하는 것이다. 모조리 다 빼앗아 파멸시키고 나서야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삶을 본다.

단풍도 들여보지 못하고 떨어져 버린 혹은 말라버린 나뭇잎, 우리의 신세 같구나 싶다가도 어쩌면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보다 훨씬 격조있음에 놀란다. 입추에.


태그:#입추, #가을, #낙엽, #워킹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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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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