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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기자가 쌍용차 사건과 관련하여 전화를 했다. 외국에서 보기에 쌍용차 사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노동자 투쟁의 폭력성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용산 재개발 참사, 국회 미디어법 통과 장면 등과 더불어 외신에 보도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인상은 폭력이 난무하는 무질서 그 자체라는 것이다. 도대체 왜 쌍용차 노동자들은 격렬한 투쟁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을까?

<대단한 유혹>과 사회 안전망

영화 <대단한 유혹>. 작은 섬에 살고 있는 120명의 실직자들은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의사 모시기에 공을 들인다.
 영화 <대단한 유혹>. 작은 섬에 살고 있는 120명의 실직자들은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의사 모시기에 공을 들인다.
ⓒ 필름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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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 영화 이야기를 열 번쯤은 한 것 같다. <대단한 유혹>이라는 캐나다 영화가 있다.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120명의 실직자와 가족들이 살아가는 작은 섬에 공장을 하나 지으려고 했더니, 의사가 한 사람 이상 거주해야만 공장 설립 허가가 난다는 것이다.

의사가 없어 노동자들의 건강관리가 불가능한 지역에는 함부로 공장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의사 한 사람이 그 섬에 와서 한 달 동안 살게 되는데, 한 달이 지난 뒤 섬을 떠나려고 하는 의사에게 마을의 '이장'쯤 되는 이가 다음과 같이 호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8년 동안 매달 복지수표나 바라며 줄을 서왔어. 자네는 복지수표를 받기 위해 줄 서 본 적이 있나? 자네는 돈도 벌어야겠지만 부끄러움도 벌어봐야 해. '의사가 없으면 마을도 아니다.' 그거지. 우리가 의사 한 사람 구해보자고 이러는 게 아니네. 마을 사람 120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라구."

의사가 결국 그 말에 감복해 주민으로 남았고, 공장이 하나 지어져 실직자들이 모두 노동자로 취업해 행복하게 살았다더라 하는 그런 내용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회와 우리 사회의 다른 점이 무엇일까? 한 마을의 주민 120명과 가족들이 아무 직업도 없이 8년 동안이나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쟁력을 갖춘 사회 구성원-노동자로 다시 취업할 때까지 8년 동안이나 국가가 실직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존권을 지켜줬다는 것이다. 자녀 교육에 지장을 받거나 전기, 수도, 가스 공급이 끊기거나 주택에서 쫓겨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유럽 사민주의 나라가 아니라 미국 바로 옆에 있는 캐나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실직자와 그 가족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중요한 재원의 바탕은 물론 부자들로부터 거둔 세금이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의 부자들은 세금을 너무 적게 내고 있다. 박지성 선수도 영국에서 자기 연봉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한국의 부자들로 하여금 세금을 조금 더 많이 내게 하려다가,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고 그것이 중요한 이유가 돼 정권이 바꿨다. 문제는 서민과 노동자들 중에 보수 언론과 보수 정당의 '세금 폭탄'이라는 공격에 동조한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강남의 부자들은 계급의식이 있는데, 서민과 노동자들은 계급의식이 없다. 자신들에게 유익한 정책을 반대한다"고 꼬집은 이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 "부자 감세로 빈 곳간을 빈자 증세로 메우는" 정책을 자신 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끝내 포기하지 않은 '자녀 학자금'

6일 저녁 7시 쌍용자동차 노사 합의가 이뤄진 후 농성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도장공장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한상균 지부장이 77일간 함께 농성을 벌인 조합원들과 일일이 악수한 후 떠나는 조합원과 포옹을 하고 있다.
 6일 저녁 7시 쌍용자동차 노사 합의가 이뤄진 후 농성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도장공장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한상균 지부장이 77일간 함께 농성을 벌인 조합원들과 일일이 악수한 후 떠나는 조합원과 포옹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 <노동과 세계> 이명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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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동자들이 교섭에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바로 자녀 학자금이었다. "자녀 학자금을 제외한 복지후생의 중단"이라는 타결 내용 보도를 보며 '자녀 교육이 얼마나 걱정됐으면 그렇게 했을까?' 싶은 생각에 목이 메었다. 자녀 교육에 걱정이 없도록 무상교육이나 무상의료가 절반쯤이라도 실현된 사회였다면 쌍용차 노동자들이 그렇게 격렬하게 싸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에서 '실직'은 곧 '교육'을 의미한다. 노동자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국가의 책임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노동 능력을 갖출 때까지 국가가 생계비를 지원하며 교육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쌍용차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 실직 노동자와 가족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쌍용차 사건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노동부 통계로 지난해 노사분규 건수는 100여 건 내외다. 전체 노동조합 수를 5천여 개로 잡았을 때, 한국 노동조합의 98% 정도는 단 하루의 파업도 없이 임금 인상 교섭을 마무리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처럼 노동조합들이 온건한 나라도 없다.

더 중요한 통계는 10% 내외의 조직률이다. 한국 노동자들 중에서 90% 정도는 노동조합의 임금 교섭도 없이 회사가 주는 대로 받고 있다는 뜻이다. 노사협의회가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보면, 한국처럼 노동자들이 고분고분한 나라도 없다.

더욱이 전체 노동조합들 중에 거의 절반 정도는 활동이 별로 없는 조직들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해 자신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말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노동자는 전체 직장인들 중 겨우 5% 정도라는 뜻이니, 결국 이 5%의 투쟁이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대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이 5%에게 가해지는 정부와 기업의 대응은 총자본의 이해를 거의 전폭적으로 반영한다. 기업 관리직, 용역경비, 공권력이 사건 초기부터 진압, 그 이후 처리 과정에서 한 몸을 이루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소수의 노동자들이 거대한 권력과 맞서는 투쟁은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격렬한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겨우 5%의 노동자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

5일 오전 8시 10분 조립 3,4팀 옥상 점거에 성공한 경찰특공대가 쓰러진 조합원을 삼단봉과 곤봉으로 집단구타하고 있다(사진제공: 노동과세계 이명익)
 5일 오전 8시 10분 조립 3,4팀 옥상 점거에 성공한 경찰특공대가 쓰러진 조합원을 삼단봉과 곤봉으로 집단구타하고 있다(사진제공: 노동과세계 이명익)
ⓒ 노동과세계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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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동자들이 고립무원의 섬에 갇혀 목숨을 건 투쟁을 하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차원의 의사소통 구조는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다. 국회에서도, 정부에서도 말 한마디 없이 팔짱만 끼고 구경하는 형국이었다. 노동부 장관은 거의 직무유기에 가까웠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진보 세력이라는 사람들이 쌍용차 정문 앞에 가서 농성하는 모습밖에 보여 줄 것이 없느냐?"고 힐난하는 운동평론가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강성노조가 존재하는 기업에 누가 투자하겠느냐?"는 관리인의 말이 어쩌면 쌍용차 사태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던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강성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세력과 노동운동 세력에게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그러한 결말이 앞으로 가져올 파장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시간을 끌수록 '폭력적 투쟁을 일삼는 민주노총'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만 높아질 뿐이므로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 정치적으로는 손해를 볼 일이 없었다. 공권력 투입으로 자칫 용산 참사보다 더 큰 비극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일단 타결한 뒤 노조 간부 대량 구속으로 노조를 무력화시킨다는 구상을 하지는 않았을까? 앞으로 두고 보면 알 일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오롯이 수백 명 농성 노동자들만의 힘으로 '정리해고 52%, 무급휴직 48%'라는 눈물겨운 합의를 이끌어냈다.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의사소통 구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소수 노동자들의 투쟁은 앞으로도 한 동안 격렬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 정리해고' 과연 합리적일까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77일간 점거농성을 벌였던 노동자들 중에서 귀가조치된 노동자들이 6일 밤 경찰버스에 태워져 평택역 광장에 내리자 동료들이 부둥켜 안고 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77일간 점거농성을 벌였던 노동자들 중에서 귀가조치된 노동자들이 6일 밤 경찰버스에 태워져 평택역 광장에 내리자 동료들이 부둥켜 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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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정리해고 대상자 974명에게 집중돼 있는 부담을 전체 직원들에게 골고루 분산시키는 결정만 했더라면 조합원들의 농성은 빨리 끝났을 것이다.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직원들이 농성 노동자들에게 "나가라!"고 요구하지 않고 "우리가 모두 그 고통을 골고루 나누자"고 끌어안았다면 점거 농성은 바로 풀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공적자금 투입과 국유화 타당성에 대한 논쟁은 그 한참 너머의 이야기다.

정리해고함으로써 줄일 수 있는 노동비용 만큼 절약할 수 있도록 전체 조합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노조의 방안에 대해 회사는 그 이후 계속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대책이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리해고 외에 필요하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노조가 향후 그 책임을 마다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교섭 결렬을 선언하면서 회사 측은 "회사 회생을 위해 재무·인력 구조조정이 시급한데도 노조가 '총고용 보장' 원칙을 고수하며 구조조정을 수용할 수 없다고 고집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 말 속에 이미 '구조조정'에 대한 경영진들의 오해가 깃들어있다. 구조조정을 곧 정리해고와 등치시키는 것이다. 노조가 주장하는 무급휴직, 유급·순환 휴직도 일종의 구조조정이다. 정리해고는 오히려 현행 노동법상 구조조정 방식의 마지막 선택이어야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해고 회피 노력'의 취지가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회사 경영이 어려워져도 한 명도 감원하지 않는다"는 유한킴벌리의 '뉴 패러다임' 경영 방식이 쌍용차라고 해서 특별히 불가능할 이유는 없었다. 기업 경영자들이 구조조정을 곧 정리해고로 인식하는 단편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 방식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이러한 많은 문제점들을 덮어둔 채,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일부 과격한 세력의 선동 탓으로 돌리는 것은 촛불 집회의 '배후'를 강조했던 것만큼이나 올바르지 않은 시각이다. 쌍용차 노조가 그동안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안에서 '강성노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구속을 각오하고 싸우는 노동자들은 소수 과격한 활동가들의 선동에 좌지우지될 만큼 어리석지 않다.

더불어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이렇게 노동자 인권을 훼손하는 경영 방식이 기업 경쟁력과 나라 경제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또 태산이다.

덧붙이는 글 | 하종강 기자는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입니다.



태그:#쌍용차 , #민주노총,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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