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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열외인종 잔혹사〉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열외인종 잔혹사〉 ⓒ 한겨레출판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으며, 기다릴 만큼 기다려왔다.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 몇 십 년 뒤에 과연 이곳은 얼마나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줄 것이며, 단 한 줌의 희망의 지푸라기라도 제공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기는 한 것인가? (본문 178쪽)

강남 코엑스몰에 난데없이 양머리 탈을 쓴 무리가 들이닥칩니다. 대뜸 건물 내 모든 전기를 차단하더니 사람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기 시작하지요. 그러더니 남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중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혁명의 서(書)'라는 글을 낭독합니다.

건물 내에는 정규직을 꿈꾸는 20대 비정규직(윤마리아)이 있고, 군복을 항상 입고 다니며 사회질서와 빨갱이 처단에 힘쓰는 어르신(장영달)도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온 종일 PC 온라인 게임에만 몰두하는 17세 소년(기무)이나 거리와 지하철을 떠돌아다니며 남이 먹다 버린 음식을 주워 먹는 노숙자(김중혁)도 있고요. 코엑스몰은 온통 핏빛 풍경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여기에 모였을까요. 그리고 양머리를 뒤집어 쓴 이 단체의 정체는 무엇일지.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주원규 장편소설 <열외인종 잔혹사>는 위에 소개한 네 인물(윤마리아, 장영달, 기무, 김중혁)을 중심으로 이른바 '열외인간'들이 벌이는 분노의 축제를 그려냅니다. 시종일관 궁금증을 유발시키면서 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몰아가며 극적인 상황을 연출해 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장소는 다름 아닌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 그리고 그 중에서도 뜨거운 욕망이 분출되는 휘황찬란한 빛깔의 '코엑스몰'입니다. 존 카펜터의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생각하지 말고 그저 소비하라'는 암묵적 명령이 꼭 들릴 것 같은 그 곳 말입니다.

곳곳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소시민들은 언제 그 흉기가 자신의 목을 벨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분노를 침묵 속에 애써 쟁여놓지요. <열외인종 잔혹사>는 바로 그 터질 것 같은 분노와 불안 충동을 전면에 드러낸 작품입니다. 책표지에 보이는 양머리 무리가 그들인데요. 단정하고 세련된 연미복에 양머리 탈을 썼기 때문에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독특한 행사가 벌어진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런 그들이 총을 들고 무차별 살육, 폭력을 저지르면서 상황은 급반전됩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분명한 건 그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 무리는 아니라는 겁니다.

열외인간들이 코엑스몰 폭동에 휘말린 사연은?

소설에는 양머리 무리에 대항하는 네 명의 인물이 나오는데요. 장영달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뼛속까지 보수'라고 한다면, 윤마리아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정규직을 꿈꾸는 20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목표는 오로지 생존입니다. 이 때문에 코엑스몰의 극적인 상황에서 때때로 살아남기 위해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생존이 달린 상황임을 감안해야겠지요. 그녀 또한 열외인간 중 하나니까요. 기무는 게임 속 이벤트 상황을 실제 폭동과 혼동하면서 살육에 매달리는데요. 작가가 폭력과 살인에 무감각해지는 젊은 10대를 풍자하기 위해 만든 인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김중혁이 있습니다. 극중 노숙자에 변변치 못한 이 인물을 따로 떼놓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그의 처지와 파국으로 치닫는 애달픈 운명이 마치 현실 세상 속 누군가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머리 무리가 장악한 혼돈의 코엑스몰 내부로 파고듭니다.

실제로 그 건물 전기기사로 일한 적 있던 중혁은 결국 시꺼먼 어둠으로 휩싸여 있던 건물에 다시 환한 불빛을 되돌려 놓는데 성공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 작가 역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고백하더군요. 부엉이 바위에서 생을 마감했던, 분노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고인이 된 어느 사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김중혁이 그런 대단한 명분이나 민첩함으로 이러한 행동을 자행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참으로 말할 수 없이 뒤틀린 심리에서 기인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다시없을 특수한 상황을 이용하여 일상의 세계에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기계의 톱니처럼 치밀하게 맞물린 시스템을 해체하고 조롱하는 일. 김중혁은 바로 그 일을 몸소 실행에 옮기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는 중이다. (본문 253쪽)

따지고 보면 그 역시 비주류 출신의 열외인간이었지요. 남과는 다른 길을 걸었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옳은 길을 가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고요. 김중혁이 누군가에 의해 어이없이 생을 마감하듯, 그 또한 그러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자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니까요. 천민자본주의의 막장에서 그 무엇엔가 험악하게 분노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죽어야 했던 '열외 인간들의 대표선수'가 바로 김중혁이라는 한겨레의 지적은 그런 점에서 일리가 있습니다.

시종일관 종말론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은 항상 밝고 화려한 모습으로 웃으라고 강요하는 지금 이 곳과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덮는다고 해결될 수 없는 일이 있겠지요. 왜 양머리 무리들이 웃을 수 없었는지, 왜 그들이 폭발해야만 했는지는 아마도 그 원인을 제공한 세상이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가식적인 웃음으로 치장한 섣부른 희망보다는 씁쓸한 블랙 유머를 던지는 <열외인종 잔혹사>의 폭발이 비단 작품에서만 가능한 것일까요.

이미 현실 세계에서도 열외인간들의 분노는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 쪽에서는 너무 뜨겁고, 반면 다른 한 쪽은 너무 차갑습니다. 바깥세상은 너무나 평온하지요. 세상은 열외인간의 폭동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소설에서 '언론과 방송이 그들에게 그토록 무심'한 것처럼, 현 정부는 길 막아놓고 소통 불가능한 일방통행만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력서의 특기를 적는 곳에 '내쫓는 일'이라고 적어놓을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알고 있어야 할 겁니다. 앙다문 입술이 열리고, 꽉 쥔 주먹을 높이 들어 올릴 때. 그 때는 이미 늦다는 사실을. 물론 그 전에 잘 해결되길 바라지만.  


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한겨레출판(2009)


#열외인종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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