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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김민선이 송사에 휘말렸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 및 유통하는 업체인 에이미트가 영화배우 김민선과 MBC <PD수첩> 제작진을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 

 

지난해 5월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을 때 그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긴 글이 화근이 됐다. 그가 미니홈피에 남겼던 글에서 화제가 됐던 부분은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 수입하느니,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낫겠다"였다.

 

에이미트 측에서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송의 당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연예인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김민선의 무책임한 발언 때문에 정부의 말보다 연예인의 말을 더 믿는 젊은 층의 미국산 쇠고기 구매율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로 인해 이후 약 1년 동안 에이미트는 15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김민선과 <PD수첩> 제작진이 자신들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더라면 소송까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도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는 지난 1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연예인의 한 마디, 사회적 책임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김민선의 당시 발언을 비판했다. 전 의원은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그들도 공인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연예인들은 늘 자신의 한 마디가 사실에 기초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에이미트는 김민선만 고발했을까

 

이 사건을 접하고 드는 의문은 크게 두 가지. 그 중 첫 번째는 '왜 소송의 대상 연예인이 김민선 혼자일까?'하는 것이었다. 당시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연예인은 김민선 혼자만이 아니었다. 배우 이동욱은 자신의 팬카페에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은 100% 안전이다, 광우병 걸릴 위험이 0.1%라도 있으면 수입 안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큰 화제가 됐었다.

 

배우 김지우도 자신의 미니홈피에 '다 미치셨군'이란 제목의 글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정면 비판했다. 독설로 유명한 개그맨 김구라는 방송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생 삼겹살을 씹겠다, 차라리 국교를 힌두교(쇠고기를 먹지 않는)로 바꾸는 게 어떻겠냐?"며 조롱했다. 힙합가수 디지는 아예 'Mad Bull(미친 소, 狂牛)'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다. 이 밖에도 김혜성, 김희철, 문소리 등 수많은 연예인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왜 유독 김민선만 고발대상이 되었을까? 바로 이 점에 이번 소송의 본의가 담겨져 있다. 에이미트 측에서는 김민선의 발언과 <PD수첩>의 방송으로 인해 15억 원 가량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손해배상청구액수는 그 1/5밖에 안 되는 3억 원에 불과하다. 에이미트가 정말 손해배상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면 소신 발언을 한 연예인들을 더 많이 고소하고 청구액수도 높였어야 정상이다. 그게 상식적이다.

 

즉, 이 소송의 본질은 에이미트 측이 김민선과 <PD수첩> 제작진으로부터 손해를 보상 받으려는 데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연예인을 비롯한 언론과 방송이 더 이상 제멋대로 떠들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는 것에 있다. 에이미트 측의 말마따나 연예인의 발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다. 그런 연예인들이 정치적 소신을 갖고 주장을 펴는 게 그와 반대되는 입장의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불쾌하고 못마땅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럴 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무엇일까? 바로 소송이다. 연예인은 포장된 이미지를 대중에 파는 존재. 당연히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이 이미지 손상이다. 소송은 그 어떤 일보다 더 크게 연예인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 그것이 못 받은 출연료를 돌려달라는 것이든, 전 소속사와의 계약 분쟁이든 간에 소송은 그 자체로 구설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일이고,  연예인이라면 당연히 피하고 싶은 일이 될 것이다.

 

김민선 때문에 판매율이 급락했다?

 

 

비단 이미지 손상 측면이 아니어도 소송은 충분히 두려운 존재다. 송사가 시작되면 법원에 가야하고 심리적인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생업이 있는 사람에게는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변호사도 선임해야 한다. 재판에서 패소하기라도 하면 큰 액수의 돈을 물어줘야 한다. 만만치 않은 액수의 돈과 상당한 시간이 들어가는 소송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소송의 위협은 자연스레 시민의 의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두 번째 의문. 정말 사람들은 김민선의 글을 보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을까? 연예인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에이미트 측의 주장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문제는 그 정도이다. 김민선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 수입하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털어 넣는 게 낫겠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 말만 보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을까? 그녀의 말이 그 정도로 절대적이었을까?

 

그들의 주장에는 이처럼 근거가 빈약하다. 만약 20대 일반인을 대상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김민선의 발언 때문에'라는 대답이 일정 비율 이상 나오기라도 했다면,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그런 조사는 없었다. 결국 그들의 "김민선의 발언 때문에 젊은 층의 미국산 쇠고기 판매율이 저조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연예인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 운운 정도에 불과하다.

 

사석에서라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이미트의 회식 자리에서 "김민선 때문에 판매율이 급락했다"며 김민선을 안줏거리로 씹을 수는 있겠다. 그런데 딱 술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를 공론화시켜 소송까지 했다. 얼마나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모르겠지만 김민선의 발언과 미국산 쇠고기의 저조한 판매율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변호사라면,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한 변호사일 것이다.

 

과연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얼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은 바로 대중에 대한 과소평가다. 만약 에이미트의 뒤에 어떤 배후세력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 배후세력은 대중을 '연예인의 말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수준'으로 봤을 것이다. 이는 지난해 여름 촛불시위의 배후세력을 찾고자 했던 정부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민들이 결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로 자발적인 행동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들(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촛불시위의 배후를 찾았던 정부와 에이미트의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배후세력을 뜻한다)은 누군가의 주도 하에 무지몽매한 시민들이 현혹되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을 현혹하는 배후세력, 주동자를 잡아 처벌하려 애쓴다. 그리고 똑똑하고 올바른 자신들이 시민들을, 대중을 계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민선은 그들에게 있어 처벌해야 할, 입을 닫게 해야 할 주동자인 셈이다.

 

부디 이번 사건으로 연예인들과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견해를 밝히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누군가'가 가장 바라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태그:#광우병, #김민선, #에이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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