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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들(Epistolai) 13편의 플라톤의 편지글에 담긴 플라톤의 사상과 삶
편지들(Epistolai)13편의 플라톤의 편지글에 담긴 플라톤의 사상과 삶 ⓒ 이제이북스
지혜롭고 현명한 철인이 통치하는 공화정을 꿈꾸던 플라톤은  대화편 43편에 자신의 이름은 거의  화자로 거론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플라톤의 면모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것이 13편의 편지들이다. 13편의 편지글 중에는 플라톤이 직접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있는 반면, 위작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여러 편 있다. 그러나 <편지들>이 진작이든 위작이든  플라톤이 살던 시대적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플라톤의 편지글들은  플라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철학적 사고 등이 담긴 글이다. 대상은  그의 후원자였던 디온과 그 주변 사람들, 시칠리아의 참주였던 디오뉘시오스 2세, 다른 철학자나 정치가들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여성과 무관했던 그답게 13번째 편지에  잠시 등장하는 질녀의 딸에 결혼 지참금에 대한 이야기를 빼면  12편 모두 여성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건조한 글이다.

그래도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긴 하다. 그 한 가지는 바로 플라톤이 늘 편지의 첫 인사를 '안녕하시길(chairein)'이 아닌, 잘 지내시길( eu prattein)'이라는 말로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플라톤 철학이 함축되어 있는 말인데,  삶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영어나 프랑스어가  '행복하세요( Be happy. Soyez heureux)에 개인의 능동적 의지가 담긴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과 비슷하다고 할까.

여하간 그는 일상적 용어에서조차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도덕적 신념과 철학적 사고를 지니고 살아야만 하는가'를 늘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망각한 현대 지도자와 교육자들의 망언이나  사고, 개인의 욕망에 경도된 삶과 너무나 비교되는 대목이다.  인간 본질적 삶의 자세를 묻는 철학적  인문학적 사유의 바탕위에 정치, 경제, 교육이 뿌리를 내려야 이상적인 발전을 할 수 있기에  먼길을 돌아오더라도 결국 인문학적 사유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도덕과 철학적 신념으로 한평생을 살다간 플라톤의 생은 결코 실패의 삶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플라톤이 남긴 서간문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일곱 번째 편지는 개인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살아냈던 플라톤의 생애 전반적 삶이 잘 드러나 있다. 일곱 번째 편지는 플라톤 지지자 디온 사후 내전에 휩싸인 시라쿠사에 남았던 디온의 추종자들에게 정치적인 조언을 하기위해 작성되었다. 플라톤이 추구하는 삶은 '최선의 법에 따르는 자유인'이었다. 최선의 법은 도덕적으로 높은 이상을 추구하고 그 이상을 현실의 삶에서 실현하려 하는 철인이 통치하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시칠리아에서 자신의 철인정치의 꿈을 펼치려했던 플라톤은 20여 년 간 세 번에 걸쳐 시칠리아를 여행하게 된다. 자신의 철학에 경도되었던 디온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강력하게 권해서 시작된 여행에서 플라톤은 원하던 성과를 이루기는커녕  감금상태가 되기도 하고, 참주에 대한 실망을 가득 안고 구사일생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당시 나의 시칠리아 방문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고 말하는 뜻은 무엇일까요? 나는 당시 젊은이였던 디온과 교제하면서 사람들에게 최선의 것으로 내가 생각한 것을 말로써 알게 하여 그가 그것을 실행에 옮기도록 조언했는데, 나 자신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장차 참주정의 붕괴를 기도하는 것이었음을 난 몰랐던 것 같습니다.

 사실 디온은 그 밖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당시 내가 행한 논의에 대해서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고, 내가 만난 젊은이들 중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명민함과 열성으로 그것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남아 있는 생을 대다수 이탈리아인과 시칠리아인보다는 좀 특별하게 살고 싶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쾌락 및 여타의 방종보다 덕을 훨씬 더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 때문에 참주정하의 법률에 묻혀 사는 사람들에게 그는 더욱 거북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마침내 디오뉘소스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일곱째 편지 중-

자신의 신념과 철학으로 참주를 변화시켜 세상을 바꿔보려던 소망을 품고 간 시칠리아행에서 플라톤은 실망과 좌절을 맛 본 채 돌아온다. 그 후 정치적 야망을 버리고  아카데미를 설립한  플라톤은 후학들을 양성하며 '대화'편을 저술하는 것으로 남은 생애를 보낸다. 시칠리아에서의 실패를 되돌아보며 참주 한 명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교육을 통해 많은 이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말년에 궁핍과 외로움 속에 살다간 플라톤의 무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멸하는 자들 중 절제와 품성에서 뛰어난 자.
비로 여기에 신적인 아리스토클레스가 눕다.
누군가가 모든 이로부터 지혜에 대한 위대한 명성을 얻는다면,
이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얻을 것이고 질투는 뒤따르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8번째 역서인 <편지들>은 강철웅 김주일 이정호 교수가 옮겨 이제이 북스에서 출간하였습니다.



편지들

플라톤 지음, 강철웅 외 옮김, 이제이북스(2009)


#정암학당 플라톤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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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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