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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살인진압 진상보고 및 피해자 증언대회'. 증언자로 나선 쌍용차 노조원들은 모두 가림막 뒤에 앉아있다.
 1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살인진압 진상보고 및 피해자 증언대회'. 증언자로 나선 쌍용차 노조원들은 모두 가림막 뒤에 앉아있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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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구사대에 맞고 도망치는 꿈을 꿨다. 어제도 그제도 같은 꿈을 꿨다. 동료들이 다 그렇게 시달린다. 그런데도 우리가 파괴자로 몰리고 있다. 지난 5일 사무실이 불에 탔는데 우리에게 새총 쏘던 용역 직원과 사측 관리자는 도망을 가고 우리는 남아서 소방대원과 함께 불을 껐다."

"오전 9시부터 해질 때까지 수시로 경찰헬기가 떠서 옥상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머리 위로 최루액 봉지를 떨어뜨렸다. 옥상에 올라가보니 경찰이 방패로 막고 사측은 어디를 쏠지 알려주고 용역이 새총으로 볼트를 쏘고 있었다. 17㎜·19㎜짜리 볼트를 서너 발씩 한꺼번에 쏘았다."

"골절을 당한 동료는 깁스도 못하고 붕대로만 상처를 감고 있었다. 눈물 핑 도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수건으로 몸 닦아준 게 전부였다. 최루액에 맞아 온 몸에 물집이 생겨도 약도 없고. 동료들은 코가 찢어지고 귀가 찢어지고 아직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식사하면 계속 설사를 한다. 77일 동안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쌍용차 사태 이후 '불법폭력 행위자'로 몰리고 있던 파업 노동자들이 경찰 진압 실태를 알리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13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증언대회에서다.

대타협으로 사태가 마무리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경찰력 투입에서 느꼈던 공포가 생생했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도 심각했다. 이상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은 "노동자들이 수면장애, 기억력·집중력 장애 등 전형적 급성 스트레스 장애 증세를 보인다"고 진단했다.

매일 구사대 꿈 꾸는 노동자, 악쓰고 소리지르는 아이

지난 3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도장 공장을 점거 중인 노조원들 위로 경찰헬기가 지나고 있다.
 지난 3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도장 공장을 점거 중인 노조원들 위로 경찰헬기가 지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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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의무실에서 사측이 쏜 볼트에 맞아 오른쪽 쇄골이 부러진 농성조합원이 인의협 소속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고 있다. 인의협 의사는 X-레이 촬영과 치료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 부러진 쇄골 희미한 촛불 4일 오후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의무실에서 사측이 쏜 볼트에 맞아 오른쪽 쇄골이 부러진 농성조합원이 인의협 소속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고 있다. 인의협 의사는 X-레이 촬영과 치료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 사진제공 <노동과세계>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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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족들과 외출을 했던 노동자 A씨는 멀리 떠있는 헬기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 손을 놓고 건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매일 저공비행으로 날면서 농성장 상황을 정찰하고 최루액을 뿌리던 경찰헬기 소리가 각인된 까닭이다. 당황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그는 '내가 죄인도 아닌데 왜 이래야 하나' 싶은 자괴감을 느꼈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심리적 상처를 겪는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가족들도 노동자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쌍용자동차 농성이 끝난 지난 6일 밤 경찰버스에 태워져 평택역 광장에 내린 뒤 아이를 안고 귀가하고 있다. 아이는 아빠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꼭 껴안고 있다.
 쌍용자동차 농성이 끝난 지난 6일 밤 경찰버스에 태워져 평택역 광장에 내린 뒤 아이를 안고 귀가하고 있다. 아이는 아빠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꼭 껴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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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대책위 소속 권지영씨는 "헬기 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자다가도 2시간 만에 깨는 남편을 보면서 괴로운 심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 사태에 모든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매도되는 상황이 억울하다"면서 "언제까지 이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할지 절망스럽다"고 호소했다.

기선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중학교 3학년인 한 아이는 소리를 크게 지르고 악을 쓰면서 울고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 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같은 지역 내 아이들의 왕따 경험 등 정신건강 침해는 더 광범위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도 공통적으로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피해자인 자신들이 도리어 폭도가 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증언 도중 감정에 북받쳐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사측 직원과 경찰이 공장에 불을 냈고, 농성장에 있던 조합원들은 마지막까지 생산라인을 지켰다는 주장이다.

B씨는 "우리는 집보다 공장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소중한 삶의 터전을 파괴할 수 있겠냐, 사측 관리자와 경찰이 생산라인을 망가뜨릴 때 분노가 컸다"고 말했다. A씨 역시 "단전 조치 이후 공장이 어두워서 침소까지 가는 길에 몇 번씩 넘어지지만 불평 없이 페인트가 굳지 않도록 생산라인을 돌렸다, 그런데도 우리가 폭도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성자들이 가장 큰 고통으로 꼽은 것은 식수와 음식물 반입 금지로 인한 고통이었다. 노동자 C씨는 "최루액을 맞고 온 몸에 물집 생기거나 경찰진압 과정에서 코나 귀가 찢어진 동료들이 정말 많았는데 약이 없어서 치료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D씨는 "같이 있던 동료는 녹내장 약을 먹지 않으면 실명 위험이 있는데 의약품을 들여올 수 없었다"고 전했다.

"공장 안에 식수와 식량이 충분했으며 노조 수뇌부가 포커와 화투를 쳤다"는 내용의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다. 한 노동자는 "남은 물과 식량으로 남아 있는 600여 명이 몇 끼나 먹을 수 있겠냐, 다른 사람이 열쇠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 없이는 아예 창고에 들어갈 수 없다, 간부들은 다들 창고 바깥에 있었다"고 말하면서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다.

증언자가 가림막 뒤로 숨어야 했던 까닭

3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쌍용차 가족대책위와 인권단체 회원들이 파업 노조원들에게 물과 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 공장 집입을 시도하고 있다.
 3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쌍용차 가족대책위와 인권단체 회원들이 파업 노조원들에게 물과 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 공장 집입을 시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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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날 증언대회를 주최한 야4당공동조사위원회, 민주노총,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의 단체들에 따르면, 쌍용차 사태와 관련된 노동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기자 등의 부상자도 290여 명에 달한다. 대부분 사측 직원이나 경찰의 구타로 피해를 입었다.

이날 집계된 피해 현황을 보면, 쌍용차 노조원들은 척추 및 다리 골절, 뇌진탕, 타박상 등의 부상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용역 직원들에게 대형 새총이나 쇠파이프 등으로 맞았거나 신무기로 무장한 경찰의 진압을 피해 도망가다가 다쳤다.

평택공장 바깥에서도 사측 직원들에게 각목, 쇠파이프 등으로 무차별적으로 맞은 피해가 속출했고 카메라나 방송장비, 차량 파손도 심각했다. 장우식 민주노동당 홍보부장은 사측 직원이 던진 물체에 맞고 머리가 찢어져 세 바늘을 꿰맸다. 그는 "피가 흐르는데도 직원들이 나를 짓밟고 마구 때린 뒤 카메라와 가방을 빼앗아갔다"고 전했다.

이같은 사측과 경찰의 행위는 모두 위법이다. 퇴로를 확보하지 않는 진압으로 상해를 입히는 것은 업무상 과실치상죄에 해당된다. 진압 과정에서 무장해제한 노동자를 구타하고, 전자충격기나 다목적발사기를 사용한 것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그러나 경찰은 쌍용차 파업 사태와 관련 노동자 등 64명을 구속한 반면 사측 직원 52명에 대해서는 구속을 하지는 않았다. 64 대 0의 압도적인 차이다.

쌍용자동차 노사협상이 타결된 7일 오후 77일간 농성을 벌였던 노조원들을 맞이하기 위해 가족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후문 부근에서 기다리던 중 사측직원들과 충돌이 벌어졌다. 사측직원들이 발길질을 하며 폭행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사협상이 타결된 7일 오후 77일간 농성을 벌였던 노조원들을 맞이하기 위해 가족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후문 부근에서 기다리던 중 사측직원들과 충돌이 벌어졌다. 사측직원들이 발길질을 하며 폭행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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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차원의 대응도 강경하다. 쌍용차 사측은 지난 8일 '산 자(비해고 신분)'로 농성에 동참한 조합원 94명에게도 휴업 발령을 냈다. 노조는 "노사 합의를 깨고 편가르기를 가속화하는 찬물 끼얹기"라고 비난하고 있다.

증언대회에 나선 이들도 신분상의 불이익이나 경찰수사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날 증언대회에 나선 노동자들 역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가림막 뒤에서 발언을 했다.

A씨는 "해고대상자와 끝까지 함께 했던 산 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면서 "회사가 합의한 내용에 대해 말바꾸기 하지 말고 빨리 실무협의를 해서 정상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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