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진 이듬해인 고종 20년(1883년), 54명의 개척단이 태하동에 첫발을 디뎠다고 한다. 그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식량을 마련하고 열심히 일을 했지만 겨울이 되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육지로 되돌아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때 개척자들의 목숨을 이어준 것이 바로 '명이'라는 나물이었다 한다. 기나긴 겨울을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모두가 산에 올라가 눈을 헤치며 솟아난 명이를 캐다가 삶아먹고 '명'을 이었다 해서 '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란다.
한 마디로 '명이'란 '명'을 이어준다는 뜻이다. 명이는 산나물과에 속하는 나물로 울릉도의 '효자나물'로 불리기도 한다. 화산이 두 번 폭발하여 형성된 울릉도를 보면 평지가 귀하다. 평지가 거의 없는 땅에서 논농사가 될 리가 없고 양식 때문에 고생했을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울릉도 개척민들의 명을 이어주었던 명이나물이 지금도 울릉도의 효자나물로서 톡톡히 한 몫하고 있다. 겨울철, 눈 속에서 자라난 명이 나물은 봄철 입맛을 돋우는 나물로 향이 독특하고 비타민이 풍부하여 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춘곤증과 식욕부진을 이기는 데 효과가 있어 봄 식탁의 단골메뉴로 사랑받기도 한단다.
잎이 금방 피어버리는 명이 나물을 오래 두고 먹으려면 새콤달콤하게 장아찌를 만들어 두면 일년 내내 맛있는 명이 나물을 먹을 수 있는데, 명이(일명 산 마늘)는 5월이면 채취가 끝나고 잎이 하얗게 세어버리는 6월로 접어들면 못 먹게 된다고 한다.
보통 명이나물 장아찌는 4월 초나 중순에 담가야 연하고 부드럽다. 얼마 전 울릉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명이나물 장아찌를 얻어왔다. 울릉도 여행에서 우연히 머물렀던 나리분지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나리교회'는 5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였다.
이곳에 처음으로 교회를 세운 사람은 목회자가 아니라 일반 전도자가 전도하여 교회를 세워서 지금의 교회가 있게 된 것이라 하였다. 나리교회에서 며칠 동안 지내면서 낮에는 곳곳을 여행하느라 많은 이야기는 나누진 못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사모님이 해 주시는 정성어린 소박한 식사, 식탁에 올라온 반찬 중에 '명이'라는 것이 있었고 우린 그때 생전 처음으로 '명이나물 장아찌'를 먹어보았고 또 명이를 알게 되었다. 맛이 깔끔하면서도 독특한 향과 맛이 입맛을 자극했다. 사모님이 명이 나물은 울릉도에서만 자생한다는 것과 명이나물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도 해 주셔서 좀 알게 되었다.
판매하는 명이나물 장아찌엔 조미료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집에서 사모님이 직접 담근 장아찌는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이 미묘한 맛이 무슨 맛인지 정확히 몰라 궁금했는데 독특한 그 맛이 바로 마늘 맛이 섞여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장아찌를 담갔으니 더 복합적이고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우리가 명이 나물을 잘 먹는 것을 보고서 사모님은 울릉도에서 나올 때 '명이나물'을 좀 싸 주셨다. 다시 명이 나물을 채취해 장아찌를 만들려면 봄이 다시 와야 가능할 터인데도 조금만 주신다면서도 꽤 많이 주셨다. '고기랑 싸 먹으면 맛있다'고 덧붙였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식탁에 올린 명이나물 장아찌, 역시 맛있었다. 명이나물이 식탁에 올라오는 동안 모든 반찬은 빛을 잃었고 인기를 잃을 정도였다. 명이나물만 편애했다. 우린 명이나물 장아찌를 먹으면서도 입 안에 느껴지는 맛과 향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궁금했다.
새콤한 것 같으면서도 쌉쓰레 하게 느껴지는 이 미묘한 특유의 맛과 향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먹으면서 음미해 보곤 했으나 정확한 맛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양파 맛이 약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새콤달콤한 맛 속에 쏘는 듯한 쓴 맛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 궁리 끝에 명이나물에 대해 검색해보니 명이나물이 '산 마늘'이라는 것과 모양은 마늘과 다르지만 마늘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처음 먹어본 명이나물,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명이 나물을 한 번 맛보고 나면 모두들 단박에 반해 버린다는 것도 알았다.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이 나물은 점점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고 구하게 되면서 밭에 심어 재배를 한단다. 또한 울릉도를 대표하는 상품 중의 하나다. 명이 나물은 그야말로 울릉도의 효자나물이다.
울릉도에 가면 명이나물 들고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라 하니 명이나물의 폭발적인 인기는 오히려 울릉도 오징어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명이 나물을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울릉도에선 명이나물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뉴스가 얼마 전에 보도되기도 했다.
무분별한 채취로 인한 갈등이었다. 어쨌든 이 명이 나물은 우리 집 식탁에 며칠 동안 빠지지 않고 올라와 우리의 입맛을 돋우어 주었고 더 즐거운 식사시간이 되어 주었다. 명이 나물은 그냥 한 잎씩 밥 위에 얹어 싸서 먹어도 맛있지만 고기와 함께 먹어도 금상첨화다.
막장이나 다른 양념을 넣지 않고도 고기를 싸서 먹으면 아주 독특한 명이나물의 맛과 향의 깊은 맛이 고기와 함께 어우러져 환상적이었다. 안 먹어보면 그 맛의 비밀을 알 수 없다. 먹어봐야 맛을 안다. 한 겨울 눈 속에서 피어나 봄에 채취하는 명이나물은 초무침을 해 먹기도 하고 오래 저장하고 먹기 위해 장아찌를 담기도 한다.
매 끼니마다 식탁에 올린 명이나물 장아찌는 며칠 동안 우리 식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보니 금방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어느새 동이 나버렸다. 우리는 점점 줄어들다가 동이 나버린 명이나물 장아찌를 보면서 다른 건 몰라도 명이나물 때문에라도 울릉도에 다시 한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울릉도의 명이나물에 그만 반해 버렸다.
동쪽 외딴 섬 울릉도, 섬에 들어가 풍랑이 일면 발이 묶여 꼼짝 못하는 섬, 외딴섬 울릉도에 눈이 녹기시작하면 피어지천인 명이나물...봄이 오면 명이나물 따러 울릉도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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