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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 동안 거제도 부모님 집에 다녀왔다. 도시 사람들이야 여름휴가다 뭐다 해서 바다로 산으로 여행을 떠나는 계절이지만,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은 이 작열하는 한 여름이 바쁜 철이다. 하여튼 겨울 한 철 조용할까, 봄, 여름, 가을...가을걷이가 다 끝나고 손을 탁탁 털며 온돌방 따뜻한 구들장 밑에 엉덩이 느긋하게 깔고 앉고 눕기까지는 제일 바쁜 계절을 보낸다.

 

이번 여름 역시 남편과 나는 부모님도 뵙고, 고향 마을 바다도 보고 싶고, 또 한 끼 식사라도 내 손으로 따뜻하게 차려드리고 싶어 거제도로 향했다. 시간이 행여 나기라도 하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싶어서 한 권의 책과 노트 등을 가방 속에 넣었다.

 

거제도에 갈 때면, 산을 좋아하는 남편은 꼭 산 한 곳을 등반하고 가길 원했다. 다도해 조망이 가장 좋은 곳, 거제도 망산에 올랐고 해안도로를 끼고 바다를 조망하며 한 바퀴 빙 둘러서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거제대교에서 해안도로를 끼고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빙빙 에둘러 먼 길을 둘러서 가니 정말 멀기도 멀었다. 가는 길에 망산 등반, 그리고 해안을 끼고 달리다가 학동 몽돌해수욕장에 잠시 머물렀고 이래저래 길이 더 멀어 시간이 지체되었다.

 

남편은 거제도 부모님 집에서 며칠 동안 푹 쉬었다 가자면서 '거제도 팬션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글쎄요~했다. 여름에 부모님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불 보듯 빤히 알기에 쉬어간다기보다는 덩달아 바쁘게 있다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도착하니 이미 저녁 7시가 조금 넘었다. 문을 열고 짐을 내려놓자 곧 부모님이 들어오셨다. 우리는 준비해 온 고기를 굽고 상추를 씻고 김 냉국을 만들고, 저녁상을 차렸다. 토, 일 빼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엄마와 아버지 막내 남동생, 모두들 바쁘게 보낸다.

 

일찍 일을 마친 아버지와 어머니는 또 들에 나가 농약을 치고, 콩대에 조롱조롱 익은 콩을 딴다. 붉게 익은 고추를 따서 깨끗이 씻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리고 가위로 길게 잘라줘서 잘 마르게 한다. 말린 콩을 도리깨 대신 방망이로 먼지 풀썩이면서 두들겨 콩을 까고 후후 불어서 콩을 거둬들인다.

 

매일 바쁜 일상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곤해서 깊이 잠에 빠져 주무시고 또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고단한 일상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님처럼은 못하겠다. 모처럼 딸이 차려주는 밥을 드시면서 부모님은 연신 좋아하신다. 이런 모습을 보면 또 여기 있는 동안에라도 따뜻하게 밥이라도 차려드려야겠다 싶어진다.

 

저녁을 먹고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놓은 포도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면서 밤이 익어갔다. 밤이 늦도록 이야기 익어가는 밤...농사 이야기 하다가 멧돼지 이야기가 나왔다. 동네 사람들 고구마 밭은 멧돼지가 들어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뒤부터 거의가 다 고구마 농사를 하려 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밭은 울타리를 높이 만들어 놓아서 안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이번엔 멧돼지가 고구마 밭을 침입해 곳곳마다 파헤쳐 놨다'고 했다.

 

"우찌 그리 잘 아는지 영리한 놈이다. 울타리에 구멍을 내고 들어와서 파박고구마 든 곳을 잘도 알고 줄줄이 다 파헤쳤더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멧돼지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의논했다. 우리 밭 한쪽에 있는 세 마리의 개를 풀어 울타리에 띄엄띄엄 묶어놓고 정찰을 보게 할까. 혹시 개도 다치진 않을까 싶어 개를 풀어놓을 것을 미루었다. 임시방편으로 편편한 나무 판자대기에다 못을 몇 개 박아서 울타리에 놓고 왔다고 했다.

 

엄마는 또 "그걸 안 보이게 살짝 덮어놔야지, 못이 보이게 해 놓으면 어떡하냐?!"고 "얼마나 그게 영리한데~"하며 아쉬워했고, 아버진 "괜찮다"고 했다. 생각난 김에 "엄마 옥수수는? 옥수수 먹고 싶은데, 이번엔 많이 달렸어요?!" 하고 물었더니 웬걸,

 

"야야~옥수수는 무슨, 멧돼지가 싹쓸이하고 하나도 없다. 작년에도 그래서 못 먹었다. 그게 어찌나 영리한지, 잘 익은 옥수수만 따 먹었더라. 내가 한 발 늦었다. 훈이가 어머니 옥수수 안 익었느냐고 옥수수 먹고 싶다기에, 아직 덜 익었다 며칠만 더 기다려보라고 했는데 며칠 뒤에 익었겠다 싶어 갔더니 글쎄, 내보다 먼저 멧돼지가 다 훑어버리고 없더라. 내가 한 발 늦었다."

 

아까워라, 딸아이도 얼마 전에 전화를 해서는 '엄마, 옥수수 먹고 싶어요! 외할머니 댁에 옥수수 익을 때 됐을 텐데!' 하기에 이번에 옥수수를 좀 가지고 가야겠다, 생각했건만 멧돼지가 먼저 선수를 쳐버렸으니 이번에도 찰옥수수 먹긴 다 글렀다. 남동생은 또 '멧돼지가 고구마랑 옥수수랑 다 먹어치우니 노루는 먹을 게 없어서 매운 고추를 씹고 있더라'며 흉내를 내서 한 바탕 웃었다.

 

"우찌 멧돼지를 잡겠노?!" 하는 엄마에게 동생은 "멧돼지 못 잡습니다. 사람 안 다치고 안 마주치는 것 만해도 다행으로 아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한 번 돌진하면 뒤로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는 불도저보다 더 무서운 멧돼지, 그 힘은 또 얼마나 센지, 산에 가끔 보면 묘지까지 샅샅이 다 파헤쳐서 평지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기도 했단다.

 

하기야 가끔 등산을 하면서 멧돼지의 흔적을 종종 발견하고서 움찔했던 기억이 났다. 다음날 이른 아침, 아버지는 밭에 다녀오셨다. '멧돼지가 왔다 갔더라'고, 이번엔 덩치가 더 큰 놈을 데리고 온 듯 하더라고 했다. 이어서 하시는 말, "울타리를 뚫고 들어오려다가 못 판을 밟고 도망간 듯 하더라."

 

들은 바에 의하면 멧돼지는 사람이 사냥총으로 멧돼지의 머리나 눈을 쏴도 끝까지 공격하는 상대를 공격한단다. 죽어가면서도 죽여 놓고 눕는다는 멧돼지. 멧돼지에 대해 검색해 보니 여러 가지 멧돼지의 특성에 대해 나와 있었다.

 

멧돼지는 '몸길이 1.1~1.8m에 어깨높이 55~110cm, 몸무게 50~280kg이다.

 

유라시아 멧돼지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산저(山猪), 야저(野猪)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서쪽의 개체보다 동쪽의 개체가 크며, 섬의 것보다 대륙의 것이 크다. 몸은 굵고 길며, 네 다리는 비교적 짧아서 몸통과의 구별이 확실하지 않다. 주둥이는 매우 길며 원통형이다. 눈은 비교적 작고 귓바퀴는 삼각형이다. 머리 위에서부터 어깨와 등 면에 걸쳐서 긴 털이 많이 나 있다.

 

성숙한 개체의 털 빛깔은 갈색 또는 검은색, 늙을수록 희끗희끗한 색을 띤 거은 색 또는 갈색으로 퇴색되는 것처럼 보인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어서 부상을 당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반격하는데, 송곳니는 질긴 나무 뿌리를 자르거나 싸울 때 큰 무기가 된다. 늙을수록 윗송곳니가 주둥이 밖으로 12cm나 나와 있다.

 

깊은 산, 특히 활엽수가 우거진 곳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본래는 초식 동물이었지만 토끼, 들쥐 등 작은 짐승부터 어류와 곤충에 이르기까지 아무것이나 먹는 잡식성 동물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번식기는 12~1월이며, 이 시기에는 수컷 여러 마리에서 12~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단다.

 

새끼는 눈을 뜨고 있으며 곧 걸어 다닐 수 있으나 며칠에서 1주일간은 보금자리에서 나오지 않는데 새끼의 몸에는 노란빛을 띤 흰색의 세로줄 무늬가 몇 줄 있는데 이것이 보호색이 된단다. 이 줄무늬는 5개월 이후에는 없어지기 시작하여 가을에는 털의 질도 어미와 같이 굳은 털로 변한단다.

 

유라시아의 중부, 남부의 삼림에서 서식하지만, 뉴기니섬,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북아메리카 등에도 이입되었다. 일본에는 일본 멧돼지, 오카니와섬과 아마미섬에는 소형의 류쿠멧돼지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는 대륙 멧돼지와 멧돼지가 있고 산지에 따라서 크기가 다르다고 한다.(두산백과사전 참조)

 

농사의 천적 멧돼지를 어떻게 막을까. 이런저런 궁리와 의견이 오갔지만 모두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엄마는 아버지 보고 개를 풀어 보자고도 했지만 아버진 개가 물려 죽을 수 있다며 망설였고 엄마는 또 '사람 머리카락 냄새를 싫어한다고 하니,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좀 얻어 와서 망에 넣어 놓아보자'고도 했다.

 

고구마, 옥수수...멧돼지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밤마다 내려온 흔적이 있어 여간 걱정이 아니다. 고구마 밭고랑을 파 헤쳐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이제 막 들기 시작한 고구마를 파먹고 간 흔적들과 이제 막 익은 옥수수 대에 달린 옥수수를 훑어 먹고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간 흔적들...그야말로 멧돼지를 위한 농사다.

 

다음 날 낮에 밭에 올라가보니 멧돼지가 왔다 간 생생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콩 밭 가에 쭉 심어놓은 옥수수를 모두 파헤치고 다 따먹고 들쑤셔놓아 옥수수대가 꺾어져 아무렇게나 넘어져 있고, 고구마 밭 군데군데마다 울타리를 뚫고 들어와 파헤친 흔적들이 드러나 있었다.

 

멧돼지도 한 마리가 온 것도 아니고 몇 놈의 동무들을 데리고 왔다 간 듯 하다. 울타리에 설치해 놓은 못을 밟고 들어오다가 도로 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나 있었다. 그나마 울타리를 만들어놓고 있으니까 이만큼이라도 보호되는 농작물들이다. 밤이면 내려오는 것 같았다.

 

가끔,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고 개들 밥을 주러 다시 밭에 가야할 때면 아버진 오토바이를 타고 엄마와 함께 가신다. 어두워오는 저녁 무렵, 껌껌해오는 텅 빈 넓은 밭에 홀로 가기가 무서우신 게다. 잠시 왔다가 우린 또 돌아가지만 저녁 무렵까지 밭에 나가 계신 부모님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멧돼지가 농작물을 망쳐놓거나 또한 멧돼지로부터 습격당해 다치거나 죽은 사례 등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애써 가꾼 농작물을 파헤쳐 망쳐놓아 농민들이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친다는 것도 뉴스를 통해 여러 번 보도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멧돼지와의 한판 승부를 다룬 영화 '차우'가 나오기까지 했을까. 어떻게든 대책마련이 시급한 문제다. 농작물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래서 농민들이 농사지을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도 문제지만, 행여 인명피해라도 생긴다면 큰 일이 아닌가. 달리 하는 일도 없건만 3박 4일 동안 책 한번 들춰보지 못하고 지냈다.

 

집에 돌아와서도 멧돼지 때문에 은근히 걱정 된다. 지금 시골엔 멧돼지와의 전쟁이다. 멧돼지가 아니더라도 논농사든 밭농사든 농부들은 병충해와 싸워야 하고, 태풍과 장마, 가뭄 등 곡식이 익어 올곧게 자라기까지 온갖 것들과 몇 번의 전쟁을 치루고서야 가을에 튼실한 열매를 맺는데 멧돼지의 대책없는 출몰은 그야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도 태풍 한번 몰아치면 익어가던 곡식도 열매도 다 떨어지는, 참으로 예민한 것이 농사인데 불도저 같고 대책 없는 멧돼지의 출몰로 인해 농작물은 피해를 입고 있다. 멧돼지로부터 농작물을 어떻게 사수할까. 그것이 문제로다.


태그:#농사, #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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